
의대생이 공대와 자연대에서 인공지능(AI)과 생체계측을 배우고 공학 학위를 취득한다. 이공계 학생은 의대와 병원에서 인체 구조와 질병 원리를 공부하며 의료현장 문제를 탐구한다. 서울대학교가 2027년 1학기 도입할 ‘과학기술의학(HST, Health Sciences and Technology) 연합전공’의 청사진이다. 서울대는 두 개 학위 취득이 가능한 ‘의약학’과 ‘이공학’ 통합 교육체계인 HST 연합전공 출범을 알리고, 금년 9월 신규 학생 모집을 위한 설명회를 공지했다. 이번 HST 연합전공 설립을 주도한 김주한 서울대 연구부총장(서울의대 교수·사진)은 Harvard-MIT Div. of HST 프로그램에서 정보의학을 전공해 공학 학위를 취득한 의사과학자다. 김 연구부총장에게서 단과대학 장벽을 허무는 이번 교육혁신 모델 도입 배경과 비전 등을 들었다.[편집자주]
Q. 연세의대 등 의사과학자 양성 노력이 활발하다. 서울대 HST 차별점은
서울대학교가 던진 질문은 ‘의대생과 이공계 학생이 학부부터 상호 학문을 체계적이고 의미있는 수준으로 복수전공할 수 있는가’였다. 의대생에게는 과학기술과 공학 원리, 수학적 사고가 필요하고, 공대·자연대 학생에게도 인체와 질병을 이해할 교육이 필요하다. 서울대 HST는 이런 양방향 수요를 하나의 정규 전공으로 연결해 이공학을 이해하는 의학자와 의학을 이해하는 과학기술학자·공학자를 함께 키우고자 한다. 의대와 이공계 대학이 교육과 연구의 동등한 주체로 참여하는 것이 핵심이다.
Q. 내년 의대 학제(2+4년제→통 6년제) 바뀐다. 개편 시기에 맞춘 것인가
그렇다. 기존 의대 교육은 1주일 내내 한 과목만 수강하고 1학점을 받는 단기 ‘집중교육’이 많아 타 단과대 학생들 수강이 불가능했고, 의대생 역시 타 단과대 수업을 들을 수 없었다. 전문성 중심 의약학 계열과 학술 중심 이공학 계열 간 교육체계 차이는 융복합의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의약학과 이공학 교육의 체계적 연계는 고등교육 개혁의 마지막 ‘화룡점정’이다. 고등교육법 개정으로 통6년제로 전환되는 2027년이야말로 6년 전체 커리큘럼을 재설계할 마지막 기회다. 대학이 먼저 시간표와 이수체계를 연계해야 학문 경계를 허물 수 있다. 의학교육실과 협력해 교과과정 개편을 함께 논의했다.
Q. 복수학위 취득 요건은
원 소속 전공 졸업요건을 충족하면서 HST 연합전공 요건(전공필수 18학점, 전공선택 21학점 등 총 39학점)을 이수토록 한다. 학점 교차인정 과목을 포함해 학업 부담을 현실화했다. 의대생의 경우 의학사와 함께 HST 공학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이수 시나리오를 마련했다.
Q. 학생들이 배우는 학문 깊이는
스스로 과학기술·공학적 문제 해결 방식을 적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자료구조 및 알고리즘, AI, 생체계측, 재생의학, 의학물리, 세포조직공학 등 실제 이공계 전공과목이 포함된다. 기술 가능성과 한계를 직접 판단할 수 있는 의사를 키우는 것이 목표다. 반대로 이공계 학생에게는 ‘인체구조와 기능’, ‘질병 발생 이해와 약작용의 원리’ 같은 전용 교과목을 제공한다. 의료기기나 신약을 개발할 때 기술의 성능뿐 아니라 어떤 환자 문제를 해결할지, 실제 의료환경에 어떻게 적용될지 이해하도록 돕는다.
“과학기술의학 연합전공 도입, 학부 단계서 의학·이공학 배워 ‘공통 지적 기반’ 형성”
“기술 가능성과 한계를 직접 판단할 수 있는 의사 육성 목표”
“의사과학자 양성 위한 새로운 학문 축 ‘과기의학’ 제시”
Q. 하버드-MIT HST는 서울대 프로그램에 어떻게 반영됐나
미국 하버드-MIT HST는 1970년 설립돼 바이오 혁신 중심지인 켄달 스퀘어(Kendall Square)에서 리더십을 발휘해온 세계 최고 융합교육 모델이다. 하버드 의대생 약 20%, MIT 학생 다수가 참여한다. 나 역시 의학박사 취득 후 HST에서 공학 학위를 받고 하버드의대 조교수로 임용돼 의료 AI를 연구했다. 서울대는 이 교육철학을 학부 단계부터 구현한다. 의학과 이공학을 배워가는 초기 단계에서 공통의 지적 기반을 형성하는 것이다. 여러 단과대학을 갖춘 종합대학으로서 서울대가 가진 자원을 학부생 성장 경로 안에서 연결할 책임이 있다.
Q. 기초의학, 임상의학 외에 ‘과기의학’이란 개념도 제시했다
기초의학이 인체 원리를 탐구하고 임상의학이 환자 진단·치료를 발전시켰다면, 인공지능(AI)·데이터과학·로봇·센서·신소재 등 첨단 기술이 도입되며 그 사이에 ‘과기의학’이라는 새로운 축이 탄생했다. 과학기술의 원리를 건강 문제 해결과 연결하는 영역이다. 의학 질문이 기술을 부르고, 기술 발견이 또 다시 의학 질문을 바꾸는 선순환을 교육과 연구로 체계화하려는 것이다.
Q. 현장 연구 및 캡스톤 프로젝트 운영은
연구실 탐색 및 방학기간 전일제 인턴십, 학기 중 연구 참여를 연결한다. 그리고 캡스톤 프로젝트를 통해 연구 아이디어 제안부터 실험·분석, 지도교수 및 산업멘토 조언을 거쳐 논문 작성이나 특허·사업화로 발전시킨다. 정밀의료, AI 신약개발, 임상시험 설계 등 배운 지식을 실제 현장에 적용하는 능력을 평가할 예정이다.
Q. 학업 부담이 큰 의대생의 참여가 저조하지 않을까
모든 의대생이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의대 신입생 가운데 10~20%정도 이공계 학생을 포함해 연합전공 정원 50명을 목표로 한다. 통합 6년제 개편으로 5학년 한 학기를 통으로 비우는 ‘연구학기’ 역시 도입했다. 비전공자는 기초·임상의학 연구를, HST 전공자는 관악캠퍼스 연구실에 체류하며 필요한 이공계 전공과목을 수강할 수 있어 충분한 학점 취득과 깊이 있는 연구가 가능하다.
Q. 교육 혁신을 이끌었다. 향후 비전은
서울대에는 의학, 약학, 자연과학, 공학의 독보적인 자원이 모두 축적돼 있다. 학생들이 단과대학 장벽을 넘어 이런 자원들을 자유롭게 연결하고 융합할 수 있도록 대학이 판을 깔아주는 것이 이번 혁신의 본질이다.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치료법을 연구하는 의사과학자, 의료현장을 이해하는 공학자, 생명현상 발견을 건강 문제 해결로 연결하는 의학·과학·기술학·공학자를 함께 성장시키는 것이다. 의학과 과학기술 경계에서 새로운 질문을 만들고, 끝까지 답을 찾는 인재를 키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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