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의뢰서’ 발급 문제로 의원급인 1차 의료기관과 대학병원인 3차 의료기관 모두 곤혹을 겪고 있는 모습이다.
13일 병원 관계자들은 한 목소리로 “진료의뢰서 발급 문제는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 붕괴를 뜻하는 현상일 뿐”이라며 “의료전달체계 사안은 해묵은 과제임에도 근본적인 대책은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5일, 오른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서울 동작구 소재 C대학병원을 찾은 환자 A씨는 병원의 ‘가정의학과 진료의뢰서 발급 과정’에 대해 불만을 표하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날 A씨는 가정의학과 의사에게 진료를 받지 않고 간호사로부터 진료의뢰서를 발급받았던 것이다.
A씨는 “의사도 못 만났는데 진료의뢰서를 발급받는다는 이유로 1만3800원의 비용을 또 지급해야 하느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 상 대학병원 등 3차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1,2차 의료기관의 진료의뢰서가 필요하다. 대학병원 가정의학과에서도 진료의뢰서를 발급 받을 수 있으나 의사 진찰을 받아야 한다.
현재 응급 및 혈우병, 분만 등의 환자와 치과, 가정의학과, 재활의학과 진료의 경우 대학병원에 진료의뢰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이러한 환자의 문제제기에 대해 병원 측은 진료의뢰서 발급에 대한 환자들 불만과 요구가 다양하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문제 의식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환자의 다양한 목소리에 병원이 난처한 상황도 있다는 주장이다.
C대학병원 관계자는 “원칙적으로는 환자가 1,2차 의료기관에서 진료의뢰서를 받아야하고 대학병원 가정의학과 의사의 진찰을 받아야만 진료의뢰서가 발급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환자 A씨의 경우 가정의학과 의사를 만나지 못했다는 데 불만을 제기했으나, 오히려 반대로 가정의학과 진찰 과정을 빼고 진료의뢰서를 조속히 발급해 다른 과에서 진료를 볼 수 있도록 요구하는 환자들도 많다”고 말했다.
진료의뢰서 문제로 환자와 갈등을 겪는 일은 비단 대형병원에만 국한되는 사안이 아니다.
실제로 동네의원 등 1차 의료기관을 마치 대형병원 진료를 위한 진료의뢰서 발급기관으로 인식하는 환자들이 부지기수다.
진료 목적이 아닌 진료의뢰서 발급을 목적으로 온 환자는 ‘진료의뢰서만 빨리 발급해달라’며 의사가 환자에게 확인해야 할 기본적인 질문에도 불성실하게 답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상황이다.
유태욱 대한가정의학과의사회 회장은 “한달을 기준으로 봤을 때 환자 5명 당 1명 꼴로 진료의뢰서를 발급해달라고 요구한다”고 밝혔다.
유 회장은 “현재 1차 의료기관 의사가 환자에 대해 갖는 권한은 없다. 환자 요구를 거부할 수도 없으니 진료의뢰서를 발급해줄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만큼 환자 선택이 자유로운 나라도 없다. 어떠한 진료의뢰서를 갖고 가더라도 병원은 ‘프리패스(Free Pass)'”라고 비판했다
대한의원협회 송한승 부회장 역시 “진료의뢰서 발급 절차를 놓고 벌어지는 문제의 본질은 ‘의료전달체계 붕괴’”라고 꼬집었다.
그는 "1차 의료기관에 대한 신뢰 상실 및 게이트키퍼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 규모와 역할, 기능이 다름에도 1차와 3차 대형병원이 수익을 위한 경쟁을 하고 있는 구조 등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유 회장 역시 “의료전달체계가 재정립돼야 한다. 현재는 3차 의료기관이 블랙홀"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고혈압, 당뇨환자들도 3차 의료기관으로만 간다”며 "그 곳이 외래진료를 선별해서 보게 하는 대신 입원환자 수익이 많이 보존될 수 있도록 하는 등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대책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