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민식 기자] “십수년 전 내가 4학년 담임을 보던 시절이다. 갖은 회유와 협박 아닌 협박에도 끝까지 말을 듣지 않던 학생이 한 명 있었다.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전부 그렇다고 보면 된다.”
60세가 넘은 한 대학병원의 노(老)교수는 새삼스레 과거의 일을 상기했다. 분명 말 안 듣는 제자들 이야기임에도 그의 말에서는 왠지 모를 애정이 묻어났다.
의료계 젊은 피들의 기세가 무섭다. 정부가 업무개시 명령을 내리고 국시를 강행하겠다고 엄포를 놨지만 이들은 정책 철회·전면 재논의가 이뤄지기 전까지 물러서지 않겠다고 배수의 진을 치고 있다.
옳은 가치를 지키겠다며 소위 ‘말 안 듣는’ 제자들의 기세에 교수들도 짐짓 놀란 모습이다. 이제는 교수들도 제자들을 말리는 대신 힘을 실어주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 사직서 작성하는 젊은의사·국시거부 의지 확고 의대생
27일 기준 서울아산병원 전공의들의 사직서 작성률은 97%다.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전공의들도 이르면 오늘 중으로 사직서 취합을 마무리 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신촌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 전원은 사직서를 제출했고, 서울아산병원 전임의 10여 명도 같은 선택을 했다. 당장 오늘부터 나머지 병원들에서도 전공의, 전임의들의 사직서 제출이 줄을 이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6일 정부가 파업에 들어간 수도권 전공의·전임의들에게 업무개시 명령을 내렸지만 젊은 의사들의 투쟁 열기는 되레 고조되고 있다.
실제 27일 대전협에 따르면 자체 설문에 응답한 전공의 1만2000명 중 1만1890명(99.8%)이 파업에 참여하고 있다. 박지현 회장을 비롯한 319명의 전공의에게는 업무개시 명령이 내려진 상황이지만 대오는 쉽게 흐트러지지 않고 있다.
학생들도 국시거부는 ‘자유의지’에 따른 결정이라며 이를 말려보려 했던 교수들을 머쓱하게 만들고 있다. 9월1일부터 시작되는 실기시험이 코 앞으로 다가왔지만 정작 당사자인 의대생들보다 교수들이 더 애가 타는 모습이다.
국시원은 단체로 접수된 국시 취소 신청에 대해 본인 확인을 위해 일일이 연락을 돌리고 있지만, 의대생들은 해당 전화번호를 내부에 공유하고 전화를 받지 않는 방식으로 확고한 국시 거부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 만류 대신 제자들 힘 실어주는 교수들
이 같은 젊은 의사와 의대생들의 움직임에 A 의과대학 교수는 “(정부가 의협에게 제안했던 안에 대해) 대전협에서 그 정도로 반대표가 많이 나올 줄은 몰랐다. 우리 세대에서는 정부가 많이 물러났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요즘 세대들은 확실히 다른 느낌”이라고 말했다.
B 의과대학 학장은 “국시 응시를 설득하려고 해도 학생들은 그냥 1년 쉬어버리겠다는 입장”이라며 예전과 다른 ‘요즘 세대’들의 행보에 혀를 내둘렀다.
완고한 제자들의 입장에 결국 교수들은 두손 두발 다 들었다. 적당히 얻을 것을 얻고 돌아오라고 말리는 대신 제자들이 주장하는 ‘정책 철회’, ‘전면 재논의’에 힘을 싣기로 한 것이다.
실제 정부가 전공의와 의대생들을 상대로 강경 대응에 나서자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은 잇따라 성명서를 발표했다.
정부의 일방적 정책 추진을 비판하고 전면 재논의를 주장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제자들에게 불이익이 발생할 시 교수들이 나서겠다는 경고도 함께였다.
실제 한 대학병원 교수는 과 전공의들에게 보내는 글을 통해 제자들에게 피해가 생길 가능성이 보일 시 사직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현 상황에 대해 교수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전진하기 바란다”며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피해 상황이 생길 가능성이 보이면 교수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나도 사직서를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모두 마음을 굳게 먹고 이 나라의 의료 환경을, 미래를 개선하기 위해, 환자를 최선을 다해 도와줄 수 있기 위해 함께 바꿔 나가자. 끝까지 힘내자. 응원한다”라고 제자들과 함께할 것을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