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산모 '두목숨' 구하는 따뜻한 '신(神)의 손'
김암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교수
2015.04.09 16:48 댓글쓰기

분만은 언제나 응급상황이다. 산모의 진통이 언제, 어떤 상태로 진행될지 모르는 예측 불가 상황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여성들의 결혼적령기가 늦어짐에 따라 고령 산모들이 늘고 있어 분만 환경은 더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출산 현장은 언제나 생명 탄생의 경이로움이 상존한다. 최근 국내 최고령 산모의 나이가 만 57세로 경신됐다. 이 최고령 산모의 쌍둥이 제왕절개 수술을 집도한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김 암 교수는 언제 있을지 모를 응급상황 때문에 늘 수술복 차림이다. 예기치 않은 고령 산모의 난산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30여년 고위험 산모의 출산을 집도한 원로지만 생사를 넘나드는 산모와 아기, 두 목숨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24시간 콜에도 귀찮다거나 힘들다는 내색을 하지 않는 김 암 교수의 고민은 수가를 포함해 정책적·제도적 뒷받침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 분만 인프라와 산부인과 후배 및 제자들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걱정이다.

 

고령출산 늘면서 산모·태아건강 예측 불가 다반사


현재 우리나라 최고령 출산 기록은 쌍둥이를 낳은 만 57세 여성이다. 임신 36주차에 제왕절개 수술로 2.23㎏의 남아와 2.63㎏의 여아를 낳았다.


실제로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2014년 기준으로 35세 이상의 고령 산모 구성비가 21.6%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여성의 전반적 출산 건강이 악화됨에 따라 태아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커져 선천성이상과 저체중아 발생률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사회 변화를 반영한 것일까. 고령산모 대가로 꼽히는 김 암 교수를 찾는 환자 연령대도 30대 후반에서 40대가 주를 이룬다. 그 중에는 담도암 환자와 HELLP 증후군, 임신성 당뇨 등의 임신중독증을 가진 고위험 산모가 대부분이다.


HELLP 증후군으로 첫 아기를 900g에 출산한 산모가 둘째 아기를 갖고 다시 김 교수를 찾았다. 치솟는 간효소 수치 때문에 조마조마했던 산모와 김 암 교수. 간효소 수치가 230까지 오르자 37주만에 2250g의 태아를 출산했다.


수술이 시급한 담도암 산모도 있다. 당장 수술을 해야 하지만 아기를 잃을 수 있어 산모의 생명이 위태롭지 않은 선에서 34주가 넘기만을 고대하고 있다.


김 암 교수는 “임산부는 호르몬 때문에 없던 병도 생기고 몰랐던 병도 발견하게 되며 합병증도 천차만별이라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더 힘든 것은 산모와 아기 두 생명을 구했지만 그 비용을 병원이 부담해야 한다는 부당한 제도다.

 

산부인과 위험도는 높아지는데 전문의 급감 등 인력난 해결 암울


저수가에 대한 불만과 의료사고에 대한 위험성이 갈수록 커지면서 산부인과 의사들이 감소하고 있다. “고령 출산 자체도 위험하지만 산모들의 건강을 돌봐줄 산부인과 의사들이 계속 줄고 있는게 더 심각한 문제”라고 김 암 교수는 지적한다.


김 교수는 “투수(산모)는 훌륭한데 포수(분만의사)가 허술하면 안된다. 심지어 투수도 고령이라 포수라도 공을 열심히 받아야 하는데 요즘 아무도 힘든 포수를 하지 않으려 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정부는 분만 취약지역 살리기를 외치고 있으나 실제 시행되는 정책은 핵심을 비껴나가 변죽만 울리고 있는 형국”이라고 가슴을 쳤다.


김 암 교수는 “분만 인프라를 살려놓고 산모에게 혜택(바우처)을 줘야 하는데 분만인프라 개선에 대해서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가장 큰 문제는 열악한 분만수가다. 고위험 산모의 경우 의료진이 투자되는 시간과 노력, 비용은 몇 배가 더 들지만 그로인해 발생되는 추가비용을 병원이 부담해야 하는 부당한 제도 때문에 분만 인프라는 더 위축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김 암 교수는 “수가는 물론 일의 강도가 완화될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이 지원해야 하고 법적 융통성도 발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분만과정에서 발생되는 불가항력적 사고에 대한 의료진 책임이 부당하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다른 불가항력적인 사고에 대해서는 국가가 책임지면서 왜 유독 분만에 있어서는 의사에게 책임을 묻는 것인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그는 “수입은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분만에 발생되는 추가비용과 시설투자비는 병원이 부담해야 하는 구조에서 누가 산부인과를 지원하겠나. 실소마저 나오지 않는다”고 힐난했다.

 

“실효성 떨어지는 정책, 담당자 잦은 교체 문제”


실효성이 떨어지는 정책 중 하나가 분만의료 취약지 지원사업이다. 정부가 분만실이 없는 곳에 문을 여는 병원에 2억원이 넘는 예산을 지원하고 있지만, 지원받은 병원들 상당수가 적자를 기록했다.


급기야 1차 지원사업에 참여했던 병원이 더 이상 운영이 어렵다고 탈퇴를 선언했다. 이유는 재정난. 분만시설은 정부지원금으로 마련했다지만 병원 운영비가 바닥나 유지가 힘들기 때문이다.


김 암 교수는 “의사 한 명이 365일 당직을 설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전공의 주 80시간, 연속 36시간 근무해서는 안된다고 하는데 나이가 많은 전문의 또한 이 근무시간은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더욱이 분만장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의사 이외에도 많은 인력이 필요한데 그에 따른 인건비와 유지비용은 지원사업 지원금으로 충당할 수 없는 여건”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부조리한 정책을 바꾸기 위해 무단히 노력했지만 소득은 없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정책담당자의 잦은 인사이동을 꼽았다.


김 암 교수는 “전문성과 업무 연속성이 떨어진다”며 “정책담당자가 바뀌면 부조리한 정책과 개선돼야할 제도 등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면 다른 담당자가 또 배정돼 원위치 된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는 “1년 남짓 지나면 인사이동이 있고, 또 복지부 장관이 바뀌면 정책이나 방침도 달라지기 때문에 산부인과 주장은 매번 나 홀로 외침이 되고 만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산부인과, 사명감만으로 버티는데 한계 직면”


귀중한 두 생명을 다루는 산부인과 의사. 그러나 이젠 보기 드문 분만 전문의이기도 하다. 이들이 의술을 펼침에 있어 오로지 자부심과 사명감만으로 버틸 수 있는 한계는 지났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는 만큼 보상도 뒤따라야 하지만 의료계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좀 덜 힘들면서도 많은 수익을 올리는 ‘인기과’로 인재들이 몰리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김 암 교수는 “사실 응급상황과 예측불가능한 일들이 많은 산부인과에 인재들이 많이 지원해야 하지만 젊은 의사들에게 사명감만을 강요할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산부인과 의사 수 감소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출산할 수 있는 분만 인프라는 물론 그로 인한 산모 사망은 더 늘어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끝으로 김암 교수는 “그동안 많은 힘든 산모들을 봐왔지만 다행히 의료사고로 인한 소송 등은 없었다”며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후배들이나 다른 동료의사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아 산부인과 미래가 거의 절망적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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