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기획취재 상] 최근 우리나라 청년들이 주목하는 중요한 키워드는 단연 ‘공정’이다. 의료계 역시 젊은의사들 사이에서 '공정'이란 단어가 심심찮게 회자된다. 특히 조국 前 법무부 장관 자녀와 얼마 전 자진사퇴한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자녀 특혜 논란 역시 맥(脈)을 같이 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출발한 2030 젊은의사들 모임인 '공정한 사회를 바라는 의사들의 모임(이하 공의모)'은 최근 외국 의과대학으로 관심을 돌렸다. 이들은 지난 3월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헝가리 4개 의과대학 인정을 무효화 해야 한다는 취지의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헝가리 의과대학이 입학 시 현지 언어능력을 검증하지 않고 유학생 특별반을 운영하며, 입학정원에 제한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공정하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아울러 임상실습과 수업, 시험 등이 적절하게 진행되지 않아 제대로 된 의학교육이 이뤄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헝가리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인정받으며 세계의학교육연합회(WFME)에 가입된 헝가리 의과대학이 왜 국내에서 '자격 미달' 논란을 겪고 있는지 데일리메디가 직접 헝가리 데브레첸 의과대학에 방문해 자세히 살펴봤다. [편집자주]
“유학생 특별반?…교수·수업·시험 모두 동일”
공의모는 "헝가리 의과대학이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변칙적인 특별과정을 운영해 현지학생과 동등하지 않은 교과과정을 밟고 있다"며 인정기준 미달을 주장했다.
일단 데브레첸 의과대학은 헝가리 자국인 학생반과 유학생을 위한 ‘국제반(International)’으로 나뉘어 운영 중이었다. 연간 입학정원은 자국학생 260명, 유학생 280명 정도다.
국제반은 한국 학생을 비롯해 이스라엘, 독일, 일본, 중국, 베트남, 영국 등 세계 100여개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함께 공부한다. 한국 학생은 한 해 평균 20명 정도가 입학한다.
데브레첸 의과대학이 외국인 특별반을 개설한 역사는 무려 40년에 달한다. 지난 1983년 독일어 의학교육반을 처음 개설했으며, 1987년 헝가리 4개 의대 모두 영어로 수업하는 국제반을 열었다.
하지만 국제반은 자국인 학생반과 언어만 다를 뿐 그 외 모든 교과과정에서 동일하게 운영 중이다.
이들은 동일한 교수에게 같은 수업을 받고, 시험 역시 같은 날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에 교육 수준에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려웠다. 헝가리 학생도 본인이 희망하면 국제반에 입학이 가능하다.
글로벌 시대에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유학생 규모가 점점 증가하는데 모국어로 진행되는 수업이 이들에게 걸림돌으로 작용하자, 유럽 의과대학들은 이처럼 외국인 특별반을 개설하는 추세다.
데브레첸대학교 국제교육센터 아틸라 예나이(Attila Jenei) 교수는 “영국은 영어가 모국어이기 때문에 관계 없지만 독일 역시 유학생을 위한 별도 영어 교과과정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영어는 전 세계에서 공통언어일 뿐만 아니라 임상현장이나 세계학술대회에서도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영어수업은 유학생들에게 큰 장점이 된다”고 덧붙였다.
데브레첸 의과대학 라슬로 마티우스(Laszlo Matyus) 학장 역시 “영어 특별반 운영은 헝가리 학생들에게도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교류하며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본과 1년부터 임상실습…주변 국가 학생들도 교육 위해 방문
공의모의 또 다른 지적사항은 입학시험에 헝가리어가 포함되지 않아 유학생들이 헝가리어에 능숙하지 못하고 이는 환자와의 의사소통은 물론 정상적인 병원 실습이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실제 헝가리 의과대학 시험은 화학, 물리, 생물 등 3가지 과목으로 구성돼 헝가리어는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데브레첸 의대는 입학 전 2주 동안 헝가리어 수업 ‘Crash Course’를 의무적으로 수강해야 하며, 이를 이수하지 않을 경우 입학허가가 취소된다.
학생들이 환자와 의사소통이 불가능해 정상적인 임상 실습이 진행될 수 없다는 걱정도 기우였다.
외국인 유학생은 3학년(본과 1학년) 2학기까지 총 6학기 동안 헝가리어 관련 수업을 총 18학점 이상 이수해야 4학년(본과 2학년) 때 진행하는 임상실습에 참여할 수 있다.
의학적 상담은 물론 환자들과 기본적인 의사소통까지 가능한 수준으로 헝가리어를 습득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헝가리는 환자와 의료진 모두 학생들의 임상실습 참여에 수용적이라 오히려 한국보다 적극적인 학생 실습이 가능하다.
데브레첸 의과대학 학생들은 고학년부터 실습을 진행하는 우리나라보다 더 빠른 3학년(본과 1학년)부터 병원에서 직접 환자를 만나 임상실습에 임한다.
또한 강의실과 진료실이 별도 건물에 분리돼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진료과별로 한 건물을 사용해 환자 진료와 입원, 수술, 학생 교육까지 함께 이뤄지기 때문에 더욱 생생한 의학교육이 가능하다.
헝가리 의사 국가시험은 표준환자를 활용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실제 환자를 대면해 진행되기 때문에 실습을 매우 중요하게 교육한다.
데브레첸 의과대학은 실습 이전 충분한 교육을 위해 외과와 응급의학과, 마취과, 방사선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9개 전문과목 실습을 진행할 수 있는 별도 시뮬레이션 센터 3곳을 운영 중이다.
해당 센터에 구비된 장비값만 총 40억원 규모다.
시뮬레이션센터 노르베르트 네메스(Norbert Németh) 학과장은 “학생들은 실제 임상현장에서 활용되는 의료기기를 통해 초음파와 내시경, 삽관 등 다양한 술기를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뮬레이션 센터 인프라가 우수하기 때문에 스웨덴이나 이탈리아 등 주변 여러 국가가 실습을 위해 방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학생 정원 무제한” 주장 사실과 달라…헝가리 정부, 교육 인프라 기반 판단
공의모는 또 다른 문제로 헝가리 의과대학에 외국인 유학생 입학정원이 없어 무제한으로 입학할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하지만 데브레첸 의과대학 입학정원은 자국인 학생과 외국인 유학생 모두 정부가 관여해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헝가리 의과대학은 자국인 학생의 경우 정부에서 등록금이 지원돼 학비가 무료인 만큼 정부가 정원을 직접 제한한다.
반면 유학생 정원은 학교가 정부에게 교수 인원과 강의실 규모 등 교육환경에 대한 정보를 보고하면 정원을 정해주고 해당 범위 안에서 대학이 자율적으로 선발할 수 있는 구조다.
아틸라 예나이(Attila Jenei) 교수는 “세멜바이스 의대 무제한 선발 주장은 이를 잘못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며 “헝가리 의과대학 4곳 모두 정해진 범위 내에서 엄격한 시험을 통해 선발한다”라고 반박했다.
데브레첸 의대는 편/입학 관련 절차가 규정돼 있으며, 이는 5년마다 헝가리 고등교육 인증위원회(HAC, Hungarian Accreditation Commitee)에서 감사를 받는다.
헝가리 고등교육 인증위원회는 우리나라 한국의학교육평가원과 동일한 기관으로, 모두 세계의학교육연맹(WFME)에 가입돼 있다.
'진료 포기 각서' 어불성설…언제든 헝가리서 진료 가능
끝으로 공의모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의과대학을 졸업한 이후 ‘헝가리에서 의료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외국인 신고서에 서명해야 의사면허를 받을 수 있어 '불완전 면허'라고 주장했다.
실제 보건복지부는 외국학교 등 인정기준에 자국민 진료 권한을 부여하지 않으면서 학위장사 목적으로 졸업생을 배출하는 편법을 예방하기 위해 ‘해당 국가의 면허 취득’ 조건을 두고 있다.
우선 헝가리 의대를 졸업하면 현지 학생과 유학생 모두 ‘기초의사등록증(Basic Registry)’이 자동 발급된다.
해당 면허는 감독 하에만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효력이 제한되는 면허지만 직계 가족 등에게는 처방전도 쓸 수 있을 정도의 권한은 주어진다.
감독이 필요 없는 면허인 ‘운영등록증(Operational Registry)’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기초의사 등록증 취득 후 헝가리 의사협회에 가입하고 이를 국립병원총국에 신청해야 한다.
현지 학생들은 주로 해당 방법을 통해 운영등록증을 획득한다.
하지만 외국인 졸업생들은 헝가리 의사협회에 가입 없이 ‘외국인 신고서(Declarationn Form for Foreign Citizens)’를 작성하면 운영등록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즉, 헝가리 의사협회 등록을 외국인 신고서로 대체하는 것이다.
신고서 작성이 행정처리도 간단하고 의사협회에 연회비를 내거나 추가 서류를 제출할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어 많은 외국인 졸업생들이 해당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아래는 실제 유학생들이 서명하는 외국인 신고서 원문이다.
신고서는 ‘신고 당사자가 헝가리 내에서 의료행위를 하지 않겠으며, 헝가리에 돌아와 일하게 될 경우 의사협회에 등록해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의모는 이를 두고 ‘진료 포기 각서’라고 주장하며 면허 효력을 제한하는 단서가 있기 때문에 인정기준을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 뒤에 ‘만약 헝가리로 돌아와 의료행위를 하고 싶다면 헝가리 의사협회 가입이 요구됨을 인지하고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에 데브레첸 의과대학 한국인 대표학생은 “언제든지 헝가리로 돌아와 의사협회에 가입신청을 하고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의사협회 가입은 연회비를 제출하고 간단한 서류작업으로 끝나기 때문에 실제 선언문 작성 후 다시 헝가리로 돌아와 의사협회에 가입하고 의료행위를 하는 유학생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외국인 신고서는 2017년부터 행정절차 간소화를 위해 시행된 것”이라며 “자국민 진료 제한 또는 불완전 면허 등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예나이 교수도 “외국인 유학생 또한 원한다면 언제든지 헝가리로 돌아와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며 “앞으로 더 많은 외국인 의사가 헝가리에서 근무하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