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빠르면 2월 중순 이후부터 국내서도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정부는 우선접종 권장 대상자부터 접종을 한다는 계획이다.
면역력이 낮거나 전염 위험성이 높은 노인, 집단시설 거주자, 만성질환자 및 감염에 노출될 확률이 높은 보건의료인 등 3600만 명이 대상이다.
이번 발표에서 임신부는 제외됐다. 정부는 "임신부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자료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추후 임상시험 진행 상황을 관찰하면서 접종 가능성을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임신부이면서 현재 의료인이거나 만성질환을 지닌 이들에 대한 접종 여부다. 이들은 우선접종 권장 대상자에 해당한다.
또한 임신 계획을 갖고 있는 젊은 여성 및 가임기 여성들에 대한 지침도 없어 이 또한 풀어야 할 과제다.
하지만 정부가 임신부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안전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선뜻 백신을 맞는 데는 망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새로운 타입’ 코로나19 백신, 임신부에게 안전할지 장담 못해
기존 국내에서 사용되는 백신에는 두 종류가 있다. 사백신(바이러스를 죽이는)과 생백신(독성을 제거하는)의 경우 안정성과 유효성이 입증돼 국내 접종이 가능하다.
임신부의 경우 사백신은 안전하다는 것이 중론이지만 생백신은 위험성이 높다고 여겨진다. 죽은 바이러스를 이용해 만드는 사백신은 세포에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살아있는 바이러스의 독성을 약화해 몸에 넣어 항체 면역을 유도하는 생백신의 경우 태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코로나19 백신은 전혀 새로운 타입의 ‘mRNA(메신저리보핵산)’ 백신이다.
이 백신은 코로나19와 같은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정보를 전달하면 체내 면역세포가 여기에 대응할 항체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mRNA 백신은 코로나19를 유발하는 살아있는 바이러스가 포함되지 않는다. 화이자, 모더나 백신 모두 mRNA가 세포핵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사람의 DNA와 상호 작용하지도 않는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mRNA 백신이 임신을 한 사람들에게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
미국 모유수유학회(ABM)는 최근 "코로나19 백신이 임신부에게 위험을 가할 생물학적 근거는 거의 없다"며 "오히려 모유에 포함된 코로나19 바이러스 항체가 수유중인 아이를 보호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해외 기관 “기저질환자·보건의료 종사자 중 임신부는 접종 고려” 권고
임신부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안전성에 대해 위험성이 낮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해외 권위 있는 일부 기관에선 특정한 조건의 임신부에 대한 접종 권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도 했다.
미국 질병통제센터(CDC)는 지난달 “백신 접종이 권고되는 그룹에 속하는 임신부는 접종을 선택할 수 있다”면서 “정확한 판단을 위해선 의료서비스 제공자와 상담해야 한다”고 밝혔다.
백신 접종이 우선적으로 권고되는 그룹은 보건의료 종사자와 기저질환자다. ▲장기 이식 ▲중증 천식 등 호흡기 질환 ▲면역 억제 요법 ▲투석치료 대상 혹은 만성 신장질환 ▲선천성·후천성 신장 질환 ▲동형 접합 겸상 적혈구 질환 등이 해당한다.
미국산부인과의사회(ACOG) 또한 “의료 종사자와 장기 의료시설 거주자들의 상당수가 가임기 여성에 해당한다”며 백신 접종을 고려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놨다.
영국은 이 같은 해외 권고사항을 적용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다. 영국 정부는 초기 가이드라인에선 임신부와 모유 수유 중인 여성들에게 접종을 권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아스트라 제네카 백신의 사용을 승인하고 추가 개정안을 발표하며 “임상적으로 매우 취약하거나 최전방에서 환자를 살피는 종사자인 경우 임신부도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는 것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고 했다.
국내 학계 “임상시험 사례 매우 적어 신중, 선택은 개인의 몫”
물론 코로나19 백신의 구조적 이론과 기관 권고사항이 안전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임신부의 백신접종 필요성을 피력한 기관이나 연구 등은 모두 임상시험 사례가 부족하다는 한계를 전제로 두고 있다. 또 임신부의 백신접종을 지양하는 내용의 지침도 많다.
국내 학계는 기본적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이다.
이필량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는 “외국의 몇몇 연구나 가이드라인은 임신부에게 백신접종을 권고하고 있지만 안전성을 입증할만한 충분한 연구가 쌓이지 않았다는 것이 정론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과 영국 등에선 접종을 권고하지만 이 같은 국가들은 확진자가 수 만 명에 이르는 특수한 상황임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 또한 "세계보건기구(WHO) 백신 전략 자문 그룹인 SAGE에 따르면, 임신부는 임신하지 않은 여성보다 코로나19 감염 시 중증 악화 및 조산 위험이 높아질 수 있지만, 백신에 대한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아 현재로선 백신 접종이 권장되지 않고 있다"고 소개했다.
다만 임신부 가운데서도 중증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높은 기저질환자들이나 감염 위험이 큰 보건의료 종사자의 경우 접종을 고려할 수 있다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덧붙여졌다.
이필량 이사장은 “사실 개인적인 의견을 묻는다면 임신부에게는 백신 접종을 권하고 싶지 않다. 보건의료 종사자의 경우 임신부나 임신 가능성이 높은 여성을 위험한 업무에서 원천적으로 분리해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필양 이사장은 “다만 감염시 중대한 위험이 예상되는 중증·희귀질환자의 경우 백신 접종은 개인 선택의 영역이 될 수 있다”며 “코로나19 백신 위험성에 대한 충분한 안내를 한 뒤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재연 회장 또한 "임신 중이며 의료진 등 코로나19 백신 접종 권장 집단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백신 접종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며 "즉, 임신부의 백신 접종은 당사자가 선택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백신 접종 여부를 결정할 때, 임상의와 상담하면 의학적인 정보를 제공받아 선택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주요 고려사항으로 ▲COVID-19 유발 바이러스인 SARS-Co-2에 노출될 가능성 ▲COVID 19 위험성과 태아에게 미칠 잠재적 위험성 ▲백신에 대해 알려진 정보(면역 생성 효과, 부작용, 임신 관련 데이터 부족) 등을 꼽았다.
한정열 일산백병원 산부인과 교수(한국마더세이프상담센터 센터장)은 “임상시험 사례가 부족한 것은 맞지만 북미나 유럽 권위 있는 기관에서 고위험군(우선 접종 대상)에 해당하는 임신부를 대상으로 백신접종을 권고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고위험군 임신부의 경우 이 같은 해외 연구나 지침을 참고해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정부차원의 정보 전달이 미흡한 상황”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한 교수는 “중장기적으로는 임신부에 대한 백신접종 안전성을 확인할 수 있는 국내 임상시험 사례가 축적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정부의 적극적인 연구지원과 투자가 절실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