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름·버림' 누가 젊은의사들을 욕하랴!
외과·비뇨기과 등 불확실한 미래로 기피…의학 중추 내과도 합류
2014.12.30 17:49 댓글쓰기

우려는 현실이 됐다. 처참한 결과를 접한 충격은 비단 그들 만의 몫이 아니었다. 의학의 핵심 진료과의 몰락은 내과를 넘어 의료계 전체에 충격을 던졌다.


필수 진료과 중 유일하게 건재함을 과시해 왔고, 워낙 넓은 진료분야와 전문의 수를 확보한 명실공히 최대 규모 진료과였기에 파장은 더욱 컸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곪을대로 곪은 종기가 터진 것’이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내과를 옥죄는 각종 의료정책이 쏟아졌고, 이는 곧 정책 민감도가 높은 전공의들의 발길을 돌렸다는 분석이다.


즉 이제 내과도 더 이상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는 진료과라는 정서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젊은의사들에게 사명감만을 강요하기에는 의료환경이 너무 척박하다. 2014년 겨울을 보내는 내과, 아니 의료계의 고민이 깊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예견된 내과 패닉


내과 몰락은 이미 예견된 사태였다. 2015년 전공의 모집을 앞두고 벌어진 일부 대학병원 내과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은 그 신호탄이었다.


이들의 봉기 이유는 전공의 미달에 대한 우려였다. 몇 해 전부터 전공의 발길이 줄어들면서 업무 부담이 가중됐고, 올해 역시 별다른 개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단체행동에 나선 것이다.


내과 전공의들 우려감은 비단 이들 병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다. 지방 대학병원들의 경우 이미 수 차례 미달 사태를 경험하며 비극을 예견했다.


대형병원 등에서 임의적 기준에 의해 전공의를 선발하는 Arrange에서도 내과는 늘 지원자가 넘쳤지만 수 년 전부터 판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실제 2012년 100%였던 내과 전공의 확보율은 2013년 99.3%, 2014년 98.7%로 점점 줄어들더니 급기야 2015년에는 지원율이 92.2%까지 떨어졌다.


이 같은 내과 전공의 수급 비상은 일련의 정부 정책과 맥을 같이 한다는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선택진료제 축소에 따른 보상기전이다. 정부는 선택진료비를 축소하는 대신 고도 중증환자 위주의 보상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 수가체계 개편이 외과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내과는 직격탄을 맞았다. 정부 역시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위기에 처한 외과를 육성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 방향이라는 논리였다.


정부가 추진 중인 원격진료 역시 궁극적으로는 내과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인식이 번졌고, 스텐트 시술과 관련한 급여기준 개선도 인턴들 발길을 돌리는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한 대학병원 교육수련부장은 “이제 내과도 기피과에 포함되는 양상”이라며 “건강보험체계 하에서 정부가 냉대하는 진료과를 선택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푸념했다.

 

편중 지속되면서 결국 왜곡되는 한국 의료


내과 사례에서 보듯 전공의들의 정책 민감도는 점차 높아지는 모습이다. 이들의 전공과 선택에 정책 방향이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전공의들 입장에서는 미래를 보장받지 못하는 진료과를 등지고 적성과 소신과는 무관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심각한 문제는 생명과 직결되는 진료과목 및 기초연구 과목의 전공의 지원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반면 위험도가 적고 개업이 용이한 진료과목에 인력이 모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 동안 전공의들이 열악한 근무환경을 견뎌냈던 것은 전문의라는 전문가적 권위를 얻는 것과 함께 이후에 따르는 경제적 보상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경제적 보상을 충족시켜 주지 못한 흉부외과, 비뇨기과 등을 중심으로 기피과가 생겨났고, 2000년 중반부터 필수진료과인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로 확대됐다.


실제 최근 5년 간 전문과목별 레지던트 확보 현황을 살펴보면 흉부외과는 2010년 47.4%, 2011년 36.8%, 2012년 41.7%, 2013년 46.7% 등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나마 위기감을 느낀 정부가 파격적인 수가인상과 육성책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2014년 60.8%까지 확보율이 올라갔지만 2015년에는 39.6%로 다시 추락했다.


2010년까지만 해도 82.6%로 나름 선전했던 비뇨기과의 경우 이후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며 ‘최악의 기피과’라는 오명을 얻어야 했다.


비뇨기과의 전공의 확보율은 2011년 54.9%, 2012년 47.0%, 2013년 44.8% 등 계속해서 떨어지더니 2014년에는 26.1%로 충격적 충원율을 기록했다.


반면 비급여 진료 등으로 수익이 높은 이른바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이나 대형병원과의 경쟁 부담이 적은 정·재·영(정신건강의학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 등은 여전히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 6개 진료과의 전공의 확보율은 최근 5년 연속 100%를 달성했고, 2015년 모집에서도 지원율 상위권을 모두 휩쓸었다.


성형외과 지원율은 142.9%, 피부과 138%, 정신건강의학과 133.8%, 영상의학과 130.6%, 재활의학과 128%, 안과 121.4% 등 정원 보다 지원자가 훨씬 초과됐다.

 

"진료과목 수급 불균형, 의학계만 아닌 국민건강 차원서 해결책 모색해야"

 

정부는 그 동안 진료과 간 전공의 수급 불균형 해소를 위해 수련보조수당 지급과 수가인상 등의 대책을 내놨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수련보조수당 지급 대상과목 전공의 확보율은 60% 정도로, 전체 전공의 평균 확보율 90%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물론 50만원씩 지급되는 수련보조수당 대상이 국공립기관 소속 전공의로 국한돼 있는 점이 한계로 지적되지만 정부는 수당의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 제도 폐지를 추진 중이다.


흉부외과 및 외과에 대한 파격적인 수가인상 조치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보건복지부는 2009년 흉부외과 100%, 외과 30% 수가인상이라는 특단 내렸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결국 당장의 보상이라는 근시안적 접근으로는 수급불균형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이 입증된 셈이다.


전공의들의 특정과목 기피현상이 개원이 어렵고, 업무 난이도와 의료사고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즉 불투명한 미래가 결정적인 원인이라는 얘기다.


실제 한 대형병원에서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결과 기피과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로 ‘불완전한 미래’가 꼽혔다. 기피과 문제 해결책을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안정적인 미래에 대한 보장’이었다.

주 100시간이 넘는 살인적인 근무환경 보다 당장 전공의를 마쳤을 때의 미래에 대한 막막함이 이들에게는 더 큰 걱정이다.


대학에 남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만큼 전문의 취득 후 봉직이나 개원을 고민해야 하지만 외부 상황은 결코 녹록치 않다.


실제 대형병원들의 환자쏠림이 점점 심화되면서 개원가는 한숨만 늘고 있는 상황이다.


건강보험주요통계에 따르면 병원급 이상 진료비 점유율은 2006년 37.2%에서 2013년 47.4%로 급증했다. 반면 의원급 의료기관은 26.0%에서 21.0%로 오히려 감소했다.


그나마 대형병원과의 경쟁을 피할 수 있는 정신건강의학과, 재활의학과는 물론 비급여 진료가 많은 성형외과나 피부과는 타격이 덜하지만 기피과일수록 상황은 심각해진다.


국내 개원의들의 평균 부채가 3억5000만원에 달하고, 심지어 최근에는 경영난을 비관해 목숨을 끊는 의사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봉직시장도 만만찮다. 의료환경 변화에 따라 진료과 간 전문의들의 연봉 격차도 커지는 모습이다. 물론 여기에도 기피과와 선호과의 명암이 갈린다.


정신건강의학과, 재활의학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등 전공의들이 선호하는 진료과 경우 연봉이 높은 반면 비뇨기과, 외과는 봉직시장에서도 찬밥 신세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현숙 의원은 “진료과목별 전공의 수급 불균형 문제는 의학계는 물론 국민보건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피과목 수가인상과 정원 조정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에 한계가 있는 만큼 기피과목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와 함께 사회적 인식 조성 마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송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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