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만리 '중국'에 둥지 트는 한국 병원들
中 2020년 의료시장 8조위안(한화 1400조) 규모…'합작 잘 활용해야 성공'
2015.01.12 12:14 댓글쓰기

 ‘만 리에 걸쳐 펼쳐진 잔혹한 정글.’ 작가 조정래 씨는 거대 시장 ‘중국’을 이렇게 비유했다.


자국 의료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른 선진국 병원들에게 13억5000만 인구의 중국은 매력적인 핵심 시장이다. 시가총액 기준 세계 둘째 규모를 자랑하는 말레이시아 기반 병원그룹 IHH헬스케어는 중국과 인도, 중동에 적극 진출하며 세를 키워가고 있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돼있는 의료기기 판매회사 친덱스(Chindex)는 의료규제가 점차 풀리자 일찌감치 중국 의학과학원과 합작으로 허무지아(和睦家)병원을 설립했고, 현재 베이징 10곳을  비롯해 중국 전역에 17개의 클리닉과 1 개의 대형병원을 운영 중이다. 이 병원은 평균 진료시간 20분 이상, 초진 1시간 이상의 정밀검사로 중국 부유층을 끌어들이고 있다.


일본도 중국 시장을 노리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지난해 8월 자신이 직접 본부장을 맡아 ‘건강·의료전략추진본부’를 설치하고, 본부 산하 8개 추진 기구 중 하나로 ‘의료국제화추진팀’을 만들어 중국을 포함한 신흥 시장 진출을 모색 중이다.


이에 최근 우리나라 병원들도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게임을 본격화했다. 중국 의료시장 활성화 분위기에 힘입어 국내 병원들은 중국에 투자하거나 진출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올해 의료 해외진출 지원사업 대상 14개 병원을 선정했고 이 중 7개 병원이 중국에 진출한다. 예송이비인후과, 연세의료원, 차병원, 하나로의료재단, 사과나무치과, S다인치과 및 여러 병원들을 모집해 나가는 민간기관 등이 포함됐다.


중국 내 심사기준을 통과한 외자 합자·합작 의료기관들은 베이징, 상하이, 광둥성 3개 지역에 가장 많이 진출해있다. 그 중 미국과 홍콩계 의료기관 비중이 약 68% 이상 차지하고 있다.

 

의료분야 키우는 중국…파트너 손잡고 진출


국내 병원들이 ‘중국’을 택한 이유는 뭘까. 중국의 병원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나 주요국 대비 여전히 부족한 수준이다. 중국 위생부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중국의 총 병원수는 2만4000개로 2009년 2만개 대비 약 19.4% 증가했다.


병원 등급별로는 3급 병원(500병상 이상)이 1721개, 2급 병원(300병상 이상)이 6676개, 1급병원(100병상 이상)이 6262개, 등급을 매기지 않은 병원이 9553개로 집계됐다.


특히, 최근 5년간 민영병원 수는 73% 증가한 반면 공립병원 수는 4% 감소했다. 이러한 추세는 중국의 민영화 추진 및 민영병원 활성화 정책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우리나라 의료 기술과 서비스가 아직까지는 비교우위에 있다는 점도 진출 요인 중 하나다.


중국 의대 졸업생 및 의학대학원 졸업생 수는 매년 크게 증가하고 있으나, 우리와 달리 중국은 의학과에 대한 선호도가 낮다. 그만큼 의료분야에 우수인재들의 진입이 적은 것이다.


실제로 중국 명문 칭화대의 경우 임상의학과의 입학점수가 건축학과, 전기공학과 보다 낮다.


최근 칭다오에 10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 설립 계약으로 주목받고 있는 세브란스병원 측은 중국 진출의 장점으로 국민 의료혜택 증대를 위한 ‘정부의 투자’를 꼽았다.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의료시장을 8조 위안(한화 약 1,400조원) 규모로 육성할 것을 발표한 바 있다.


또 낙후된 의료산업을 키운다는 취지 하에 대도시 의료시장을 외국인에게 개방하고 있다. 베이징과 톈진·상하이시·장쑤·푸젠·광둥·하이난성에서는 100% 외국 자본의 병원 설립이 가능해졌다.


세브란스병원 윤영설 국제처장은 “사실 중국은 이미 국내 의료기관들이 진출을 했다가 현지 적응 실패 및 당국의 방해 등으로 대다수 쓴 맛을 맛봤다”며 “이 때문에 진출을 망설이기도 했지만 지금이 아니면 현지에 진출하기 힘들다는 위기 의식이 있었다”고 말했다.


SPC(특수목적회사)형태로 설립된 디올에이치앤비는 최근 중국 원저우 경제개발특구 내 의료복합단지 '의락원' 건립을 위한 총괄 계약을 체결했다.


의락원은 중국 저장성 원저우 진하이위엔취의 약 6만 평방미터 대지에 종합병원, 미용·성형센터, 산후조리원, 요양·재활센터, 메디텔 등을 모은 대규모 의료복합단지다.


현재 국내에서는 경희대병원과 디올클리닉이 참여를 확정한 상태다. 경희대병원의 경우 20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 운영의 중심이 될 예정이며, 디올클리닉은 성형센터에 자리잡을 계획이다.


이번 계약을 체결한 문정일 대표는 “그간 사우디 진출 등 국내 병원의 수출은 단편적이고 수동적이었다”며 “기술력과 노하우를 가진 국내 병원이 주도적으로 이익을 생산해 중국과 공유할 수 있는 모델이 제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각 병원들이 개별적으로 맺어온 중국 파트너십도 작용했다. 보건산업진흥원 병원해외진출팀 구경미 연구원은 “이번에 선정된 기관 중에 독자적으로 중국에 진출하는 곳은 없다. 모두 합작 형태로 진출한다. 특히, 중국 파트너의 선(先) 제안으로 중국 진출을 결정한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글의 법칙…“합작 양날의 검”


국내 병원들의 중국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0년대 초·중반 기관 및 개인들은 중국에서 ‘쓴 맛’을 봤다. 2000년대 초 중국에 진출했던 A관절전문병원과 B성형외과는 2009년 문을 닫고 철수했다.


지난 2004년 SK그룹이 중국에 합작형태로 진출했지만 현지화 실패와 수익 악화로 인해 2009년 병원 지분을 전량 매각하고 철수한 바 있다. SK아이캉병원을 헐값에 인수한 중국업체는 현재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는 병원으로 탈바꿈시켰다.


이 밖에도 많은 중대형 병원들이 중국에 진출했지만 투자금을 고스란히 날리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중국 현지에 있는 E성형외과병원 관계자는 중국 의료시장 전망은 ‘진료과목’ 별로 상황이 다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성형외과를 제외한 타 과는 소위 ‘코리아 프리미엄’이 형성되지 않아 경쟁력이 낮고, 한국 성형에 대한 중국인의 선호가 타과로 파급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중국에 진출한 우리 의료기관 38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2013년 9월 기준), 소규모 병원 진출이 많아 규모가 영세하고 성형을 제외한 다른 진료과목들은 중국인보다는 한국 교민을 대상으로 운영돼 성장에 제약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중국에서의 생존뿐만 아니라 성공을 위해서도 철저한 전략과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중국 진출 의료기관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현지 시장정보 부족 ▲자본금 부족 ▲ 마케팅 경쟁력 열악 등으로 조사됐다. 진출초기에는 ▲현지 법률이해 ▲파트너 발굴 등이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꼽혔다.

 

2009년 전후 한중 합작 의료기관 모두 철수


 

일각에서는 ‘합작’이 실패를 초래하는 요인이 된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국내외 파트너 간 경영권 대립, 매출부진, 중국 정부의 단속 등으로 인해 경영이 악화되고 2009년을 전후해 모두 철수하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특히, 합작에 대한 안전장치가 많이 검토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프론티어 정신’으로 나간 게 큰 실패로 돌아왔다는 분석이다.


보건산업진흥원 병원해외진출팀 구경미 연구원은 “용감하게 나간 기관 가운데 선교 목적으로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며 “철저한 전략과 안전장치 마련 없이 진출한 기관들은 결국 경영권, 지분 등에 발목잡혀 의료기술 하나만 주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제 국내 의료기관들도 중국 진출 의료기관들도 ‘손해보는 장사는 안 한다’는 인식이 강해졌다.


구경미 연구원은 “과거 투자없이 의료기술을 전수한다는 개념으로 나갔다면, 이제는 무형의 기술에 대해 자산가치로서 충분한 법적 보장을 받으려고 최종 계약서를 준비한다”고 설명했다.


가령, 병원 차원의 파트너 관계일지라도 협상 및 계약에서는 법률 전문가가 협상에 참여해 계약을 이끌어내는 단계를 거친다.


전문가들은 중국 진출에 대해 ‘기대 반 우려 반’이라고 말한다. 우선 합작의 ‘질’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김성덕 연구원은 “합작은 분명 양날의 검이다. 하지만 ‘합작’ 자체가 실패 요인은 아니다. 오히려 합작을 잘 활용해야 중국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의 합작은 단지 중국의 ‘법령’ 때문에 맺어졌다면, 지금은 ‘꽌시’라고 하는 네트워크 파워의 측면에 더 가깝다”며 “중국은 의료행위, 의료기기 등에 관한 규제가 굉장히 까다롭고 이를 해결하려면 좋은 ‘현지 파트너’가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원활한 해외 진출을 지원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 방안도 필요하다. 가령, ‘관련 법제도 정비’ ‘중국 정부와의 긴밀한 협조관계 구축’ ‘해외 의료진출 지원기관의 통합운영 및 홍보지원’ 등이다.


현지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진료에 대해서는 해외 대형 보험사와 직불계약을 맺을 필요가 있다. 중국 내에서 성공적인 외국계 병원으로 평가받고 있는 미국계 UFH 병원은 Metlife, Allianz 등 40여개 다국적 보험회사와의 다수의 진료비 직불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김 연구원은 “과거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철저히 준비해서  중국에 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의 중국을 봤을 때 독자 형태로 진출하는 것은 여전히 위험하고 어렵다. 현지 파트너를 잘 알아보고 가는 게 중요하다. 좋은 파트너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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