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병의 ‘경제학’ 감염병의 ‘정치학’
코로나19가 우리 사회 던진 화두, 의료·제약·기기 '전대미문 상황' 초래
2020.04.13 10:39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한해진 기자/기획 2]올해 1월 20일 신종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첫 국내 확진자가 나온 후 약 두 달 동안 누적 환자 수는 9786명(3월 31일 기준)을 기록했다. 지금까지 출현했던 다양한 코로나 변종 바이러스와 비교했을 때 이번 코로나19는 낮은 치명도에도 불구하고 급속한 확산 양상으로 전 세계에 공포감을 주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3월 12일자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다. 우리나라 또한 지난 2월 18일 대구 신천지 교회 신도인 31번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폭증한 감염자로 인해 ‘마스크 대란’을 비롯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사회 현상들을 마주하고 있다.[편집자주]

코로나19 경제학
지난 3월 16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임시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연 0.75%로 인하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경기 위축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코로나발 주가폭락’에 국내 시장은 맥을 못 췄다. 주가지수와 원화가치가 10년 전 수준으로 회귀했고, 코스피와 코스닥지수가 6%넘게 급락 출발하면서 매매를 일시 정지하는 매도 사이드카가 개장 직후 발동되기도 했다. 사이드카는 올해 상반기에만 다섯 번 발동됐다.

국내 10대 그룹 총수의 주식 평가액은 첫 확진자가 발생한 1월20일 32조5650억원에서 40일 후인 2월 28일 27조9727억원으로 14.1%(4조5922억원) 줄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코로나19 추경을 넘어 ‘뉴딜’이 필요한 시기”라고 밝혔다. 추가경정예산 증액을 비롯해 정부가 재정 투입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차관 또한 “세계 경제의 일시적 충격 후 반등(V자 회복)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며 L자 경로(경기 침체 장기화)마저 우려된다”며 “필요하다면 추경예산을 비롯해 추가적인 대응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건강보험을 비롯한 사회보험료 감면 혹은 유예도 검토됐다. 보건복지부는 이미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된 대구·청도·경산·봉화 지역의 건강보험 가입자 절반을 대상으로 3·4·5월 건강보험료 50%를 감면을 추진하고 있다.

보험료 액수가 하위 50%에 속하는 가입자에 대해 3개월간 보험료 50%를 감면해준다. 이에 투입되는 예산은 380억5400만원이다. 이에 따라 지역 가입자 39만328세대 및 직장 가입자 22만5332명이 감면 혜택을 본다.

또한 보험료 액수가 하위 20%에 속하는 가입자도 3개월간 보험료 50%가 감면된다. 직장 가입자 323만734명, 지역 가입자 126만9252세대가 대상이다.

이와 함께 전체 가입자의 보험료 유예 및 감면이 실제로 추진되면 건보료를 납부하는 개인 및 기업이 혜택을 볼 수 있게 되지만 수조원에 달하는 재정 충당 방안이 문제다.

의료산업도 실물경제 타격으로 침체
메르스 사태로 인해 우리 사회 특유의 ‘병문안 문화’가 개선된 것처럼, 이번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움직임이 늘어났다.

코로나19 확진자 증가 이후 각 의료기관은 제약 및 의료기기업체 직원들의 방문을 전면 제한했다.

한국화이자제약과 사노피-아벤티스 코리아 한국MSD 등 다국적제약사를 비롯해 동아에스티, GC녹십자 등 국내 제약사들은 재택근무 체제로 전환했다.

대면영업이 제한되자 색다른 마케팅 방식이 등장했다. JW신약은 모션 그래픽을 삽입한 주요 제품 ‘스마트 e-카탈로그’를 개발해 활용하기로 했다.

JW신약 관계자는 “코로나19 이슈로 마케팅의 한계가 지적되는 상황에서 신개념 e-카탈로그 시스템이 현장에서 좋은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3월부터 시작되는 국내외 춘계학술대회 일정이 전면 취소되고 있는 상황을 타개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한의학회에 따르면 3월에 우리나라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국제학회는 모두 취소됐으며, 4월과 5월 개최도 장담하기 어렵다. 예년대로라면 춘계학술대회 시즌에는 매달 평균 50여개의 학회가 열린다.

해외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특히 주요 국제학회가 개최되는 미국과 유럽에서는 코로나19 전파시기가 국내보다 늦어 상황이 장기화될 전망이다.

실제로 미국알러지천식면역학회(AAAAI)를 비롯해 미국노인정신의학회(AAGP), 미국피부과학회(AAD), 미국내분비학회(ENDO), 미국심장학회(ACC) 등은 전면 취소됐고 유럽정신의학회(EPA)와 유럽부정맥학회(EHRA) 등도 무기한 연기됐다.

국내 최대 의료기기 전시회도 취소
의료기기업계의 경우 연중 가장 큰 행사인 국제의료기기·병원설비전시회(KIMES)도 취소됐다.

국내 확진자가 20명 내외이던 2월 초까지만 해도 행사 주최측은 3월에는 사태가 진정될 것이라는 예상 하에 개최를 강행했지만, 신천지 관련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결국 취소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매년 3월 코엑스에서 개최되는 KIMES는 국내 의료산업 관련 전시회 가운데 최대 규모로, 참가업체 관계자 및 방문객을 합하면 8만 명에 달하며 지난해에는 1400여개 기업이 부스를 냈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해외 업체며 바이어들도 전 세계에서 방문한다.

 이 때문에 이번 KIMES 개최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최근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다른 전시회와는 다르게 국내외의 의료인, 의료기사와 각종 병원 관계자들이 방문하는 전시회이기에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에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KIMES를 취소해야 한다는 국민청원이 등장하기도 했다.

KIMES 주최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이앤엑스 측은 “지역 확진자가 급증하기 전까지만 해도 개최하는 쪽으로 비중을 뒀었는데 현재 상황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했다”며 “코엑스뿐만 아니라 다른 컨벤션의 경우 4월 행사까지 취소된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한국이앤엑스 관계자는 “모든 업체에게 참가 비용 100% 환불 혹은 오는 10월 개최되는 부산KIMES나 내년 서울 KIMES로 지불액을 이월하는 방안 가운데 선택할 수 있다는 내용을 안내했다”고 설명했다.

영업 및 마케팅 활동의 주요 무대가 제한되고 있는 만큼 제약 및 의료기기업체의 1분기 실적 감소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그동안 상대적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체외진단업계가 급부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 초기부터 RT-PCR(유전자 증폭) 진단 키트를 생산하고 ‘드라이브 쓰루’ 검사를 통해 확진자를 빠르게 가려냈다. 이런 점이 알려지자 해외에서도 우리나라의 빠른 검사 시스템과 진단 키트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사실 코로나19 이전에도 체외진단기기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주목을 받았다. 우리나라는 영상장비 등을 활용한 기존 검사법 및 검진체계가 발달해 있기 때문이다. 진단키트는 의료시설이 부족한 국가의 결핵, 말라리아와 같은 전염병 예방에 주로 활용됐다.

그러나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고위험 신종 감염병 진단제품의 긴급사용승인제도를 마련했던 것이 이번 기회에 빛을 발했다.

긴급사용승인제도는 감염병 대유행이 우려돼 의료기기, 진단시약 등의 긴급한 사용이 필요한 경우 허가되지 않은 제품을 한시적으로 민간 의료기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제도다.

식약처에 따르면 현재 코젠바이오텍과 씨젠, 솔젠트, 에스디바이오센서, 바이오세움 등 5개 업체의 진단시약이 긴급사용승인을 받아 현장에서 쓰이게 된다. 승인 후에는 대한진단검사의학회가 진단 정확도를 모니터링한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측은 “최종 승인 과정에서 보여준 식약처의 심사 역량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며 “성장잠재력이 큰 산업, 우리나라가 잘할 수 있는 개발 품목이라는 평가를 이번에 입증한 셈”이라고 밝혔다.

확진자 급증에도 계속된 여야 공방…‘코로나19’ 정치학
‘신천지 사태’가 발생하기 전부터 서서히 증가한 확진자들로 인해 기존의 감염병 관리 체계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를 방문한 해외 입국자는 지난 2014년 3122만명에서 지난해 4788만명으로 증가한 반면 검역소 인원은 500명이 채 되지 않는 453명에 그치고 있다. 1인당 약 10만 5000명의 검역을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특히 가장 많은 입국자가 찾는 인천공항의 검역 인력은 165명에 불과하다. 정부는 인력 증원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을 2017년과 2018년에 요청했지만 2017년에는 전액 삭감, 2018년에는 야당의 합의로 인해 20명만 증원됐을 뿐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정춘숙(더불어민주당)의원에 따르면 질본은 특별전담검역인력까지 최대 739명의 검역 인력이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300명 가까이 부족한 셈이다.

권역별 감염병 전문병원 건립 또한 늦어지고 있다. 질본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후인 2016년 전국 5개 권역에 50병상 이상의 감염병 전문병원이 필요하다는 연구결과를 내놨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예산이 줄어 병원 규모가 축소됐다.

그나마 조선대병원이 감염병 전문병원으로 지정됐을 뿐 나머지 권역은 계획조차 없으며, 서울 서초구 원지동에 세워질 계획이었던 국립중앙의료원의 감염병 전문병원도 소식이 없다.

보건당국의 지속적인 요구가 그동안 국회 예산 논의 과정에서 번번이 퇴짜를 맞은 셈이다. 코로나19 확산 과정 속에서도 여야는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확진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던 2월 초까지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임시국회 의사일정 합의에 실패했다.

미래통합당은 코로나19를 ‘우한폐렴’으로 부를 것을 고집하는 한편 초기부터 중국인 입국 금지를 하지 않은 것을 문제삼았다.

임시국회 전(前) 심재철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정부가 섣부르게 낙관론을 꺼내 화를 불렀다”며 “중국인과 중국 방문 외국인에 대한 입국 금지 조치를 시행하지 않을 경우 법을 직접 개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초당적 협력’을 강조하며 야당이 본회의 일정 논의에 참여하지 않음을 비판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19대 국회는 183일 동안 총 836시간 본회의를 열었지만 20대 국회는 150일, 506시간에 불과하다”며 “민생입법 일괄처리를 위한 특단의 여야합의를 이뤄내자. 야당의 결단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결국 여야는 대구경북 지역 확진자가 급속도로 증가하던 시점인 2월 26일에야 감염병 예방·관리법, 검역법, 의료법 개정안 등 이른바 ‘코로나 3법’을 의결했다.

더불어 추가경정예산도 논의됐다. 보건복지위원회 추경안만 따지면 4조5879억 원 규모다. 의료기관 경영안정화 융자금이 5000억원, 의료기관·약국·격리시설 등 손실보상액은 4060억원으로 결정됐다.

총선 후에는 2차 추경 편성 가능성도 있다. 1차 추경 때 특별재난지역 등 우선적으로 긴급 지원이 필요한 곳부터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산업 전반과 가계 경제까지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추가적인 지원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런 가운데 흔들리지 않는 리더십으로 호평을 받고 있는 인물이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다. 정 본부장은 메르스 사태 때도 질병예방센터장으로 방역 일선에서 활약한 바 있다.

질본은 국내 확진자 발생 직후부터 하루 한 차례 이상 언론브리핑 및 국내 발생 현황 보고 갱신을 통해 코로나19 관련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다는 인상을 확실히 심어줬다. 신천지 관련 확진자 급증 및 수도권을 비롯한 지역사회 전파 현상이 나타났을 때도 집중대응 방침을 밝히며 신뢰감을 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은경 본부장은 “현재 일일 완치자 수가 확진자 수를 넘어 전체 코로나19 환자는 감소세를 보이고 있지만 단기간 소멸은 어려울 것”이라며 “장기전에 대비해 방역수칙을 준수하는 새로운 일상을 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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