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사명감으로 병상을 전부 내놨던 민간중소병원들이 엔데믹 전환 후 묵묵히 입을 열었다. 병상가동률은 폭락하고 연간 수 십억원의 적자가 발생 중이지만 여전히 '감염병 병원'이란 이미지를 벗지 못해 환자가 돌아오지 않는다. 코로나19 거점전담병원 12곳 기관장들은 2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신현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주최한 간담회에서 그간의 고충을 전하면서도 후회 없는 모습을 보였지만 '다음번'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했다. 이들은 추후 새로운 감염병 등 공중보건위기에 민간중소병원이 함께 활약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손실 회복기 지원, 의료전달체계 재정립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편집자주]
지난 2020년 12월 민간병원으로서 최초 전담병원으로 지정, 2년 3개월 동안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한 평택박애병원의 김병근 원장은 현재 전담병원들의 상황을 전했다.
그는 "주변의 만류에도 사명감으로 시작했다"며 "옳은 일을 했던 병원들이 지금 정말 어렵다. 매달 적자가 쌓이고 있고 내년 거점전담병원 앞날이 보이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들 전담병원이 처한 공통 문제는 ▲감염병 전담병원 이미지 잔류 ▲적자 누적 ▲일반진료를 위한 병원 개보수 ▲의료진 이탈 등이다.
'코로나 병원' 낙인···병원명 바꾸기 등 검토
시설을 개보수 중인 대전웰니스병원의 김철준 병원장은 "감염병 병원이라는 인식 개선을 위해 명칭 변경 얘기도 나온다"며 "환자 한명부터 시작하는 신장개업 병원이 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장진혁 남양주 한양병원 이사장도 "지금 리모델링을 하지 않고서는 환자를 받을 수 없겠다 싶어 리모델링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병관 혜민병원 병원장은 "연간 적자가 100억원 이상으로 예상되는데 민간병원이 이정도를 감당하기 어렵다. 한 1년 정도 버틸 수 있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약속과 달리 손실보상금이 끊겨 직격타를 맞았다"며 "당초 3개월이었던 손실보상 기간이 6개월로, 다시 1년으로 늘었지만 까다로운 기준으로 적자 보전이 어렵다"고 덧붙였다.
환자만 떠났나···거점병원 지정에 떠난 의사들
정부의 요구로 급하게 병상 소개를 결정할 때 병원 내부 반응은 대개 부정적이었다는 설명이다. 거점병원으로 지정되자마자 의사들이 떠나기 일쑤였다.
수지 전문병원인 인천 뉴성민병원 안병문 의무원장은 "병상을 다 내놓자 마자 의사 열명 이상이 나갔고, 깁스하고 있는 환자들을 내보내야만 했다"고 말했다.
양성범 용인 다보스병원 이사장은 "의료진이 끝나면 외면당할 게 뻔하다며 반발했지만 결국 병상을 내놨고 그 결과는 혹독했다"며 "의료진 1/3이 사직했다"고 회고했다.
김철준 병원장에 따르면 대전웰니스병원에서도 전담병원 지정 해제 후 감염환자를 보던 의사들이 퇴사했고, 신규 의료진을 채용 중이지만 난항을 겪고 있다.
의사 이탈은 보상금 삭감, 적자 누적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김철준 병원장은 "일반 진료과 전문의 채용 시 시간차로 회복기 보상금이 대폭 삭감됐다"고 토로했다.
의료전달체계 '허리' 없는 게 아니라 역할 못하게 한 것
이에 향후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해 새로운 감염병 위기에서 정부와 민간, 공공 의료기관이 협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즉 의료전달체계의 '허리'가 없다고 지적할 것이 아니라, 민간중소병원이 허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새 판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김병관 혜민병원 병원장은 "필수의료와 관련해 배후진료를 담당하는 중소병원이 살아남고 보호받아야 한다"며 "3차 종합병원과 1차 의원만으로는 의료체계를 유지할 수 없다"고 피력했다.
안병문 뉴성민병원 의무원장은 "모든 병원장들은 언제든 국가가 도움을 요청하면 할 의지가 있고, 의료전달체계 안에서 우리들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거시적으로 생각해달라"고 요구했다.
김철준 대전 웰니스병원 병원장은 "정부에 협조했다가 '바보' 소리 듣는 병원이 되지 않고 거점병원 명예를 걸고 정부와 파트너가 돼 좋은 일에 기여할 수 있다는 인식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요구들에 대해 박향 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팬데믹 후 일반 의료체계로 바뀌면서 전달체계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며 "중소병원의 의료전달체계 구심점 역할을 찾아보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