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일차의료, 혁신 아닌 '개선' 필요"
이충형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서울봄연합의원 원장)
2025.12.21 18:55 댓글쓰기

[특별기고] 우리나라는 전반적인 의료 수준이 매우 높고, 일차의료 수준 역시 상당하다.


최근 공개된 2025년 OECD health statistics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들은 의료비 대비 기대수명이 높고, 회피 가능 사망률도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의료서비스 접근성이나 만족도 역시 높은 편이다.


일차의료에 대한 지표들도 양호하다. 한국 일차의료는 높은 예방접종률과 암검진 수검율을 달성하고 있다. 


또한 고혈압과 당뇨 등 만성질환 치료율이 OECD 국가들 대비 높은 편이며, 당뇨 합병증으로 인한 하지 절단 수술 비율도 매우 낮다.


일차의료에서 적절한 관리로 예방 가능한 입원율도 점점 개선되고 있으며, 이제는 OECD 평균 이하로 낮아졌다.


국내 병상 수가 인구 대비 OECD 1등이어서 입원이 쉬운 나라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회피 가능한 입원율은 더 낮을 것으로 판단된다. 


OECD 다른 국가에서 전문의 진료를 보기 위해 최소 수개월의 대기시간이 걸리지만, 한국에서는 풍부한 경험이 있는 전문의 진료를 매우 빠르게 볼 수 있기도 하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많은 성과 낸 일차의료 인정해야


이런 좋은 성과지표에 기여한 것 중 하나는 일차의료 의사들이 많은 진료양과 높은 업무 강도를 감당하며 진료현장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 일차의료도 개선이 돼야 한다. 초고령화 사회라는 일차의료가 처한 상황 Context가 변하면서, 일차의료라는 Text가 Context에 맞게 새롭게 재해석될 필요가 있다. 


외래에서는 복합 만성질환을 갖고 있으며, 여러 기관을 이용하는 노인환자들의 질병, 약, 검사 등을 조정해 줄 수 있는 조정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도가 없다. 


거동이 불편해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없는 환자는 늘고 있으나 재택의료를 수행할 수 있도록 기존의료기관의 전환을 지원하는 체계도 갖춰져 있지 않다.


노쇠 증후군을 겪고 있는 노인환자에게 운동 중재/영양 중재를 하고 싶어도 이를 위한 수가 등은 전무한 상황이다. 


지역사회에 다양한 전문의원 등이 있지만 지역 내 수평적 환자의뢰 회송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체계도 갖춰져 있지 않다.

 

이 지점에서 ‘혁신’이라는 단어가 갖는 위험성 2가지를 말하고 싶다.


지난 10여 년 동안 의료계는 ‘혁신’을 추구하는 의료정책 아래 다양한 시범사업을 수행했고, 새로운 시범사업마다 새로운 플랫폼 및 행정 서식, 평가지표 등으로 행정 부담만 가중됐다.


정작 필요한 것은 환자와 의사가 더 깊이 대화하고 신뢰를 쌓고 치료 동반자가 되는 것인데, 정작 진료할 시간이 늘어나기 보다 서류 작업만 늘어나는 일을 겪었다. 

 

또한 의료계를 ‘개혁’ 또는 ‘혁신’ 대상으로 바라본다면 현장 전문가들인 의료계와의 소통 중요성이 간과될 우려가 있다.


위에서 설계된 정책이 현장에 충분히 수용되고 자리 잡으려면 정책을 설계하는 단계마다 현장 목소리를 듣고 정책 방향을 수정하는 섬세함이 필요하다. 


정부와 의료계가 대한민국 초고령 사회를 함께 준비하는 동반자가 되길 바라며, 의료계를 ‘개혁’ 대상이 아닌 좋은 일차의료를 함께 만들어 가는 주체로 바라봐 주길 바란다.


초고령사회, 일차의료 이용 충분한 유인책 제공 필요 


좋은 의사는 환자가 만든다. 오늘날 지역의료 문제의 절반은 환자가 지역에서 진료를 받도록 하는 유인책 및 제도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좋은 일차의료가 자리잡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의료기관 변화를 유도하는 정책과 사업도 진행돼야 하지만, 무엇보다 환자들이 스스로 일차의료 기관을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유인책을 제공하며, 불필요한 상급종합병원 이용을 규제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지금 국민들이 누리고 있는 상급종합병원 이용의 자유를 그대로 누리는 생태계 위에 질(質) 좋은 일차의료기관이 자리잡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일차의료 성장과 개선, 충분한 재정 투입 없으면 불가능


정부는 2025년 6월 지역 필수의료를 책임지는 포괄 2차 종합병원 사업을 위해 후 3년간 2조1000억원, 3년간 기관 당 120억원 가량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일차의료 개선을 위해서도 마중물이 필요하다. 정부는 일차의료 개선을 위한 적극적 재정 투입을 고려하길 바란다. 


일차의료 비용을 줄이는 게 목적이 아니라 일차의료 개선에 재정을 투입해 2차, 3차 병원의 고가 처치와 수술, 입원을 줄여야 한다.


요양원과 요양병원 등 시설 중심의 장기요양을 줄이는 게 목적이다. 정부 진정성은 구체적인 재정 계획에 있다. 


현재 대한민국 의료비에서 일차의료기관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줄고 있으며, 종합병원이 의료비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 의료비 과제는 종합병원에서 사용하는 의료비를 줄여 총의료비 증가 속도를 더디게 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오히려 적극적인 재정 투입을 통한 일차의료 강화 정책이 필요하다.


방문진료 수가 등 시범사업 살펴보면 너무 복잡성과 달성 쉽지 않아  


2019년 시작된 일차의료 방문진료 수가 시범사업은 6년이 지났지만 전체 의원 1%도 되지 않는 300여 개 의원만 참여하고 있으며, 방문진료 누적 환자수도 2만여 명 밖에 되지 않는다. 


2018년 시작된 장애인 주치의 시범사업에 참여한 장애인은 9211명이며, 참여 주치의는 698명 밖에 되지 않았다. 결과만 놓고 보면 둘 다 참여와 이용을 유도하지 못한 실패한 시범사업이다.


아무리 설계가 잘 돼도 이용자와 공급자에게 선택받지 못한다면 쓸모없는 제도가 된다. 이론적으로 완벽한 모형을 만들기보다 보편적으로 선택받을 수 있는 제도가 되는 것이다. 


국가 건강검진 결과 상담 및 추적 관리, 적절한 예방접종 시행, 필요시 재택의료 수행 등에 국한해 시작하고 향후 저변이 확대된 후 일부 기관을 고기능 의료기관을 만들어가는 게 바람직하다.


의료계는 앞으로 초고령화 사회 국민건강 지킴이로서 좋은 일차의료를 만드는 것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정부는 긴밀한 대화와 소통으로 의료계와 함께 좋은 제도를 만들어 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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