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기고] 전남 영광군 보건소에서 마주한 지역의료 현실은 예상보다 훨씬 엄중했다. 상급종합병원에서 마주하던 환자들과 달리 이 곳 환자들은 겉보기에 경증일지라도 여러 만성질환과 사회적 취약성이 얽혀 있어 진료 변수가 훨씬 많았다.
하지만 이들을 지탱하는 공공의료 역량은 노후화된 인프라와 취약한 배후 진료체계 속에 갇혀 있었고, 그 공백은 오롯이 공중보건의사(공보의)라는 젊은의사들 희생으로 메워지고 있었다.
이제 단언한다. 공보의 개인 사명감에 기대어서 지역의료를 유지하던 시대는 끝났다. 작금의 제도는 ‘임계점’을 넘어 붕괴를 향해 달리고 있다.
“현역병 복무 18개월 vs 공보의 복무 37개월”
정부와 국방부는 최근 의대생들 현역 입대 급증 현상을 의정갈등에 따른 일시적 일탈로 치부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체감하는 지표는 이미 ‘티핑포인트’를 넘었다.
18개월 현역 복무는 파행된 교육환경을 벗어나는 가장 확실한 탈출구가 된 반면, 사실상 37개월에 달하는 공보의 복무 기간은 제도 존립을 위협하는 거대한 장벽이 됐다.
특히 훈련기간을 복무기간에 산입하지 않아 5월에야 사회로 복귀하는 구조는 치명적이다. 매년 3월 시작되는 병원 수련 일정에 차질을 빚게 하고, 개인 수련 기회까지 박탈하는 이 불합리한 산정 방식이 유지되는 한 예비의료인들에게 공보의는 ‘피해야 할 선택지’가 될 수밖에 없다.
신규 수급 최저…관성적 행정이 초래한 인재(人災)
당장 올해 4월이면 전국에서 450명 의과 공보의가 복무를 마친다. 그러나 보건복지부가 요청한 신규 수급 규모는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200명 수준이며, 이마저도 국방부가 군의관 정원 600명을 고수하며 역종 분류 권한을 독점하고 있어 실제 배치 인원은 훨씬 적을 것으로 보인다.
나가는 인원은 450명인데 들어오는 인원은 ‘0명’이 될 수도 있는 유례없는 인력 대란이다. 이는 단순히 의사 숫자 문제가 아니라 지역 보건지소 운영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강력한 신호다.
지자체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민간 의원 인근에 관행적으로 유지되던 보건지소를 과감히 정리하고, 한정된 인력을 실질적인 의료취약지에 집중 배치하는 ‘선택과 집중’이 시급하다.
일각에서 제시하는 지역의사제나 공공의료사관학교는 본질을 흐리는 정책이다. 과도한 의무 복무 강제는 당사자에게 자부심이 아닌 ‘유배’라는 처벌적 심리를 심어줄 뿐이다.
또한 서영석 의원 법안에서 언급된 ‘보건진료 전문전담공무원’ 확대 역시 위험한 발상이다. 6개월 남짓한 추가 교육으로 전문 의료행위를 수행하겠다는 것은 국민 건강권을 담보로 한 행정 편의주의의 극치다.
의료는 국가 면허를 통해 엄격히 검증되는 영역이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전문영역 본질이 훼손돼서는 안 된다. 인력을 특정 지역에 강제로 가두기보다는, 환자 이동권을 보장하고 지역 거점 종합병원 역량을 키워 ‘주민들이 믿고 찾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지역의료 해결의 본질이다.
“추측 아닌 ‘데이터’로 정부 안이함 깨뜨릴 것”
제40대 대공협 집행부는 이제 시작된 붕괴 현실을 관리해야 하는 실무적 책임을 진다. 우리는 더 이상 정부 낙관론에 휘둘리지 않겠다.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와 긴밀히 공조해 예비 의료인들 진로 선택 실태 조사를 정례화하고, 인력 수급 대란이 일시적 현상이 아님을 객관적인 데이터로 증명하겠다.
복무기간 단축을 골자로 한 서영석 의원안(案) 관철은 그 시작이다. 정부가 현장 논리를 무시한 채 중앙의 수치에만 매몰된다면 지역의료 안전망 최후 보루는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
시장 논리가 닿지 않는 곳에 공공이 어떻게 효율적으로 개입할 것인지, 이제는 대한민국 보건의료 체계 전체의 방향성을 걸고 대답해야 할 때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정부와 국회는 현장의 비명 섞인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대공협이 단순한 항의단체를 넘어 정확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정책 파트너로서 지역의료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끝까지 책임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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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vs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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