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사태 당시 이른바 ‘슈퍼전파자’라 불린 14번 환자 대처의 책임을 두고 벌어진 삼성서울병원과 보건복지부 간 소송에서 대법원은 병원 손을 들어줬다.
법조계에선 대법원이 의료기관 감염병 확산 책임과 정부 보상금 지급 책임을 구분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서도 정부가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손실보상금을 지급할 예정인 가운데, 이번 판단에 대해서도 의료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삼성서울병원을 운영하는 삼성생명공익재단이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낸 과징금부과처분 취소 청구 상고심의 심리불속행 기각을 지난 18일 확정했다.
심리불속행은 법 위반 등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본안 심리를 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다.
보건복지부는 앞서 지난 2015년 병원이 14번 환자의 밀접접촉자 명단을 신속하게 제출하지 않아 감염병이 확산됐다며 607억원의 손실보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와 함께 806만원의 과징금도 부과했다.
이에 병원은 ‘늑장 대응’에 고의성이 없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병원과 복지부는 약 5년간 기나긴 소송전을 벌였다.
법조계에선 이번 대법원 판단은 감염병 사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기관 과실과 정부의 손실보상금 지급 의무를 엄격히 구분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정확한 판단 내용은 대법원 판결문을 살펴봐야 알 수 있지만, 대법원은 2심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봤고, 2심 재판에선 병원이 감염병 확산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인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손실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감염병 확산 책임이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한 손실보상금 문제와는 별도로 다뤄져야 한다는 취지일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손실보상금 지급 문제...코로나19 사태에서도 불거질 가능성
메르스 사태를 경험한 후 대부분의 병원은 감염병 사태 대책을 세우고 사태 초기부터 철두철미하게 대처했다.
사태 초기부터 내원객을 대상으로 열체크를 하고 직원들의 증상을 확인하는 등 감염방지를 위해 총력을 기울였지만 원내 감염을 완전히 막을 순 없었다.
지난 2월 은평성모병원은 코로나19에 감염된 병원 소속 이송요원이 200명의 환자와 접촉했다는 사실이 알려
지면서 무려 44일간 폐쇄됐다.
3월 의정부성모병원에선 입원 중인 환자가 뒤늦게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뒤 병원이 폐쇄됐다. 의정부성모병원 관련 확진자는 4월 중순까지 64명이 확인됐다. 이 밖에 몇몇 중소병원에서도 원내 감염이 발생했다.
의료계에선 이번 대법원 판단을 환영하면서도 향후 손실보상금 지급을 두고 보건당국과 의료기관 간 법정 다툼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우려했다.
김대하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는 “코로나 19 사태에서도 의료기관 과실을 이유로 손실보상이 이뤄지지 않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삼성서울병원 같은 경우에는 수년간의 법정공방을 버텨낼 수 있었지만,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의원이나 중소병원은 이 같은 문제에 휩싸였을 때 당장 문을 닫아야 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손실보상 과정에서 의료기관의 과실을 따져 행정처분의 경중을 조정하는 것은 몰라도 삼성서울병원 사례처럼 손실보상금 지급이 이뤄지지 않은 채 소송으로 이어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