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예고했던 국립대학교병원 소관부처 이관 작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르면 오는 2025년부터는 17곳 국립대병원이 교육부가 아닌 보건복지부 관리를 받게 될전망이다.
그간 공회전을 거듭했던 국립대병원 소관부처 이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충북대병원에서 주재한 ‘필수의료 혁신 전략회의’에서 직접 언급하며 큰 전환점을 맞았다.
당시 윤 대통령은 “국립대병원을 필수의료 중추로 육성하고, 복지부 소관으로 변경하며, 재정투자와 규제 혁신으로 중증질환 치료 역량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이후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등 주무부처들은 미온적으로 일관했던 기존 모습과 달리 별도 협의기구까지 만드는 등 적극적인 행보에 나섰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립대학교병원이 지역의 공공의료의 거점 및 필수 의료의 핵심 역할을 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고려해야 될 사항들이 많은 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립대병원의 지역 완결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선 소관 부처 이관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교육부와 이야기하고 있다”며 “조만간 결론을 내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이후 복지부를 중심으로 지난해 12월 ‘국립대병원 혁신협의체 TF’를 구성하고 국립대병원 소관부처 이관에 관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
해당 TF에는 복지부와 교육부, 국립대병원, 전문가 등이 참여 중이며, 3월 말까지 운영될 예정이다. 논의 경과에 따라 연장 가능성도 열어 놓은 상태다.
국립대병원들이 지역 의료전달체계의 중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지원책을 비롯해 교육부에서 복지부로의 소관부처 이관 작업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이관에 있어 복지부 내 국립대병원 업무를 전담하는 별도 조직도 신설돼야 한다. 다만 실, 국, 과 등 구체적인 방안은 행정안전부 등과의 논의가 필요하다.
복지부 공공의료과는 “교육부로부터 국립대병원 업무 현안, 예산 자료 등을 인수인계 해야 한다”며 “교육부가 지금까지 수립했던 국립대병원 발전 방안 등도 전달받을 계획”이라고말했다.
국회도 적극 지원…여·야 의원 모두 ‘법안 발의’
국회에서도 지원에 나섰다. 국립대병원 소관부처 이관은 정부와 여·야 모두 원하는 사안이지만 법 개정이 필요한 만큼 해당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지난해 말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보건복지위원회)이 ‘국립대학병원 설치법 일부개정법률안’과 ‘서울대학교병원 설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 했다.
이어 3월 7일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은 ‘국립대병원 및 국립대치과병원 설립 및 육성·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최재형 의원은 ‘국립대병원 설치법’ 일부개정안과 ‘서울대병원 설치법’ 일부개정안을 각각 대표발의 했다.
해당 법안은 교육·연구·진료·공공의료 분야에서 국가 보건의료 분야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서울대학교병원과 국립대병원 소관 부처를 교육부에서 보건복지부로 변경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국립대병원 소관을 교육부에서 보건복지부로 이관해야 한다는 주장은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시기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지난 2021년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당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였던 김성주 의원은 “관련 논의를 본격화해야 할 때가 왔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김성주 의원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그 어느 때보다 공공의료의 역할이 중요해진 시기에 공공의료체계 안에서 국립대병원의 역할과 기능을 정립하는 일은 보건복지부가 중심이 돼 강한 의지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는 제21대 국회에서 입법이 될 경우 2025년 1월 1일부터 국립대병원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복지부 공공의료과는 “이번 국회에서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올 한해 동안 국립대병원 소관을 위한 제반작업을 거쳐 내년부터는 업무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대병원, 필수의료 육성-병의원과 상생·협력”
복지부가 지난 10월 발표한 ‘필수의료 혁신전략’에는 국립대병원 등 거점기관을 필수의료 중추로 집중 육성해 지역 병·의원과 상생·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를 위해 서울대병원, 국립중앙의료원, 국립암센터를 국가중앙의료 네트워크로 연결하고 국가 중앙병원으로서 역할을 강화할 방침이다.
특히 복지부는 국립대병원 소관을 교육부에서 복지부로 변경해 보건의료정책과 긴밀히 연계하고 진료·연구·교육 등 균형적·획기적 발전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국립대병원이 복지부 소관이 되면 1차 보건소, 2차 지방의료원, 3차 국립대병원이라는 공공의료 의료전달체계가 마련될 수 있다는 기대가 크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는 “국립대병원이 복지부로 이관되면 국립대병원을 중심으로 지역완결형 필수 의료 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실질적인 수단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정책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소관 부처 이관에 그치지 않고 국립대병원 정원과 인건비 등 규제를 풀어 교수 수를 늘리고 지역 유인 요소를 강화할 방침이다.
또 국립대병원이 공공전문진료센터와 지방의료원 등에 대해 성과평가를 실시하고 필수의료 자원관리와 공급망을 총괄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등 각 지역에서 필수의료 구심점이 되도록 지역 1차 의료기관 및 2차·전문병원과의 협력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교육·연구 영역 저해”…반대 목소리 상존
국립대병원의 소관부처 복지부 이관에 대한 가능성은 어느 때 보다 높지만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립대병원들이 공공의료 제공에만 집중되면서 교육, 연구 등의 영역이 저해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지난 2020년 국정감사에서도 당시 교육위원회 소속이던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국립대병원에 대해 소관부처 이관에 대해 의견을 조회한 결과 서울대병원을 포함한 13개 국립대병원이 반대했다.
의료계에서도 “취지는 공감하지만 현장 혼란이 피할 수 없다”며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국립대병원 소관 부처를 복지부로 옮기면 국립대와 소관이 달라져서 혼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 대한의사협회 입장이다.
의협은 “국립대병원은 고등교육법에 따라 의학 등에 관한 교육·연구와 진료로 의학 발전을 도모하고 국민 보건 향상에 이바지해야 한다”면서 “공공보건의료기관으로서 역할이 부여됐으나 그보다 대학병원의 본래 기능인 의학 교육과 연구가 우선순위”라고 지적했다.
의협은 “국립대병원이 교육부에서 복지부로 이관되면 주된 기능인 의료인 양성·교육과 의학 연구 등은 위축되고 공공보건의료사업을 위한 진료 기능이 상대적으로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국립대병원의 본래 목적을 고려하면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특히 진료 기능 강화로 “기존 대학병원의 교육·수련 및 연구 분야 자율성이 침해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의협은 “이는 대학과 부속병원 갈등 같은 부작용이나 대학과 병원 협력 시스템 약화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의료계, 관계기관과 충분한 논의를 거쳐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공의료기관으로서 국립대병원 지원에 앞서 모순적이고 비효율적인 구조 개선에 대한 필요성도 언급됐다.
의협은 “2021년 국립대병원 전체 의료 이익이 3443억원 적자였다. 공공의료기관이 비효율과 부실 경영으로 만성 적자라는 악순환을 반복하는데 구조적·제도적 문제 해결 없이 무분별하게 국고를 지원하면 불필요한 재정 소요로 국민 부담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이어 “공공보건의료기관에 대한 시혜성 정책과 법적·재정적 지원은 민간의료기관 경쟁을 심화하고 인프라를 위축해 지역의료체계 붕괴를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면서 “이에 대한 구조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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