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사무장병원에 명의를 빌려준 한의사에 대해 3억여 원에 이르는 본인부담금을 환수한 건보공단 처분에 대해 법원이 재량권 일탈이라고 판단했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1부(재판장 안종화)는 일명 ‘사무장병원’에 명의를 빌려줬다는 이유로 환수처분을 받은 한의사 A씨가 낸 소송에서 처분 일부를 최근 취소했다.
앞서 A씨는 비의료인인 B씨와 공모해 수도권에서 한방병원을 운영했다. 이 병원은 실질적인 운영자가 B씨인 사무장병원이었다.
2020년 건보공단은 관할 검찰청으로부터 해당 병원이 사무장병원이란 사실을 전달받았다.
이어 A씨에게 그가 명목상 병원장이었던 기간 지급된 요양급여비용을 환수하겠다고 통보했다.
건보공단이 정한 환수액은 12억 4662만원이었다. 이 중 9억 3025만원은 공단부담금, 3억 1642만원은 환자가 부담하는 본인일부부담금에 해당했다,
이에 A씨는 본인부담금에 대한 처분은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A씨 변호인 측은 먼저 환자에 대한 진료행위 자체는 정상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환수처분의 근거인 국민건강보험법(건보법) 57조 5항의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요양급여비용을 받은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본인부담금의 경우 개설명의자인 A씨가 아닌 실제 운영자에게도 환수처분을 할 수 있다는 점도 부당처분의 근거로 들었다. A씨에게만 환수처분이 이뤄진 것은 공단의 재량권 일탈이란 설명이다.
재판부는 이 같은 A씨 변호인 측 주장을 일부 받아들였다.
우선 정상적인 진료가 이뤄졌기 때문에 환수처분 대상이 아니란 주장에 대해선 받아들이지 않았다.
건보법상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에는 요양기관이 요양급여비용을 받기 위해 허위 자료를 제출하거나 사실을 적극적으로 은폐하는 행위 외에, 지급 받을 수 없는 비용을 청구해 지급 받는 모든 행위가 포함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건보법 42조 1항은, 의료법 33조 1항을 위반해 적법하게 개설되지 않은 의료기관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요양급여를 실시한 의료기관은 급여비용 청구 자체를 할 수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나아가 건보공단 부당이득 징수는 재량행위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건보법의 입법 취지 및 관련 규정, 부당이득 징수의 법적 성질 등을 고려하면 건보법 57조 1항이 정한 부당이득 징수는 재량행위로 보는 것이 옳다”고 판시했다.
다만 부당이득 징수를 하는 과정에서 ▲요양기관이 실시한 요양급여 내용과 액수 ▲의료기관 개설·운영 과정에서 개설 명의인 역할과 불법성 정도 ▲의료기관 운영 성과의 귀속 여부와 개설 명의인이 얻은 이익 정도 ▲그 밖에 조사에 대한 협조 여부 등의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개설 명의인을 상대로 요양급여비용 전액을 징수하는 것은 ‘재령권 일탈 및 남용’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건보공단은 A씨가 실시한 요양급여 내용과 요양급여비용 액수 및 불법성 정도 등의 사정을 전혀 고려치 않은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며 “이 사건 처분은 재량권 일탈 및 남용한 것”이라고 결론내리며 A씨 손을 들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