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열린 대한의학회 학술대회에서는 의료계 미래에 대한 조명이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대다수 전문가가 보인 의견은 ‘이대론 안 된다’로 귀결됐다.필수 및 응급의료 위기와 그와 관련된 의대 정원 확충 사안, 그리고 의료계 백년대계를 책임질 교육시스템 등 다양한 문제들이 논의됐다.
또 의료계 미래 세대지만 사명감에 기댄 희생을 기피하는 MZ세대 특성을 고려한 의료시스템 점검 등의 제안도 눈길을 끌었다.
대한의학회(회장 정지태)는 최근 양일간 더케이호텔에서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다양한 의료계 현안에 대한 의견 교환을 진행했다.
특히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급변하는 의료 환경을 점검하고 일회성 논의가 아닌 차후 개선 방안 도출까지 이어내겠다는 의학회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또 학계 원로는 물론 전공의들까지 의견을 피력할 수 있었던 자리도 마련돼 신구(新舊) 조화가 눈에 띄었다.
최근 의료계의 핫이슈는 단연 의대 정원 확대다. 학술대회에서는 해당 논란에 대해 반대 의견이 주류를 이뤘다. 이유는 의대 정원 확대는 밑 빠직 독에 물 붓기라는 까닭이다.
쉽게 말해 현재 기피 과들의 쇠락은 의대 정원 부족이 아니라 할 이유가 없다는 진단이다. 고난도의 의료행위는 물론 각종 소송, 혹은 열악한 업무 환경 등이 주로 지적됐다.
우봉식 소장은 "의사를 충분히 양산하면 남는 의사들이 필수의료 분야로 가지 않겠는가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다"며 "OECD 평균보다 3배 이상 많은 신경외과 의사를 배출했음에도 뇌출혈 수술을 할 의사가 없다는 사실로 우린 이미 답(答)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의사 수가 늘어날수록 국가 보건의료비가 급증한다는 사실은 외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즉 의사인력과 건강보험 재정(의료비용)의 관계성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다는 것.
그는 “의대 정원 확대 시 2040년에는 국가 전체 예산 대비 요양급여비중이 17% 이상에 도달하고, 의대 정원 증원을 1000~3000명으로 가정하면 2040년에는 20% 수준까지 급증한다”고 지적했다.
대한의학회 염호기 정책이사는 의료 시스템에 정치 논리가 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염 정책이사는 “우리나라 의료정책의 큰 문제는 정치적 결정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나머지 문제가 전문가에게 맡겨진다는 것”이라며 “현재 논의되는 응급 의료 시스템 개편도 이 같은 사안의 일환”이라고 꼬집었다.
또 서울의대 가정의학과 이종구 교수는 의료인력 논의와 산출의 베이스가 되는 데이터 통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의료인력 분석에 관한 연구들이 왜 같은 데이터를 보고도 왜 다른 의견이 나오는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며 이는 데이터 수집분석에 대한 기준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대한병원협회 신응진 정책위원장은 “의사 인력 논의는 필수의료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인력에 대한 절대 수치보다 양성된 인력의 적절한 배치를 중심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대 교육시스템 불만…화두는 ‘교육 연속성’ 결여
국내 의학교육이 분절된 교과과정 탓에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학부-인턴-레지던트 과정의 관리주체가 각기 달라 교육의 연속성과 효율성이 모두 떨어진다는 의미다.
고려의대 안덕선 명예교수는 "현행 의사 양성 체계인 학부-인턴-레지던트 연계 시스템의 관리주체가 상이해서 효율성이 저하된다"고 지적했다.
안덕선 교수는 “안덕선 교수는 "의학교육의 연속성을 위한 전제조건은 통합 교육 거버넌스와 평가기관 역량 강화, BME, PGME 및 CPD에 대한 통합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행 교육은 ▲학부(BME, Basic Medical Education) ▲졸업 후 교육(PGME, Post-Graduate Medical Education) ▲연수교육 및 전문직업성 평생 개발(CPD, Continuing Professional Development) 등의 과정을 거친다.
윤보영 한국의학교육학회 총무이사는 "의학교육 연속성을 위해서는 교육역량에 대한 정의와 체계가 수립이 시급하며 수련교육평가에 대한 전문성 확보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행 수련병원 의사들이 담당하는 도제(徒弟)식 교육시스템에 대한 불만도 목격됐다. 교육 체계와 점검 등에 앞서 교육 제공자들의 역량이나 평가도 필요하다는 것.
다만 교육 제공자의 역량평가를 위해서는 과도한 진료와 교육의 병행을 요구하는 현행 시스템의 과부하 문제 해결 등이 선결 조건으로 거론됐다.
장성구 전임 대한의학회 회장은 “현행 도제식 의학교육은 교육자가 피교육자의 본보기가 된다”며 "피교육자 평가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 지금의 상태는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교육 개편과 체계화 및 수련병원 교수들, 즉 교육자에 대한 평가체계도 필요하다는 의미다.
인턴제도에 대한 논의도 활발히 이뤄졌다. 아직도 인턴 존폐를 놓고 찬반이 있지만 개편 목소리가 조금 더 힘을 얻는 양상이다.
지난 2011년 대학의학회 건의로 2015년 인턴제 폐기가 입법 예고됐지만, 보건복지부와 대한병원협회 등의 반발로 최종 무산됐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이선우 졸업후교육위원장은 앞서 폐지보다는 범국가적 인턴 수련제도 구축을 제안했다. 인턴 수련이 개별 수련병원 단위가 아닌 범국가적 표준수련 프로그램 수립과 시행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 위원장은 "의학교육 관련 기관들의 긴밀한 의사소통과 이해가 필요하다"며 "국가 차원의 면허체계 재검토, 인턴 수련 프로그램에 대한 공감대 확산, 인턴 수련제도 개편 등이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