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향적 수가체계 개편 신호탄 쏜 정부
의·병협도 수가체계 결정 중요기준 환산지수연구 중단…향배 초미 관심
2015.01.15 18:27 댓글쓰기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보상율과 보장성강화란 미명아래 이뤄진 각종 저수가 정책에 의료계가 피폐해지고 있다. 폐업이 개업률을 넘은 개원가는 물론 최근에는 대학병원들까지 경영 악화에 비명을 토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최근 공개한 병원경영 실적자료 분석결과에 따르면 재무구조 건실성을 나타내는 자기자본비율이 2012년 평균 38.7%에 불과했다. 이는 자기자본율 49.7%의 제조업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수익률 역시 수년간 하락세를 이어오고 있다. 심지어 160병상 미만의 종합병원들은 2003년부터 2012년까지 평균이익률이 '-3.5%'를 기록했고, 2010년 이후 병원급 이상 모든 기관들은 수익이 감소하고 있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는 2017년까지 선택진료비를 전면 폐지하겠다며 지난해 8월부터 단계별 축소에 들어갔고 의료계의 강한 반발에 보건당국은 보상책이라며 수술·처치 등 5대 유형에 대한 수가를 올려줬다. 그 결과, 현장에서는 전공별 불균형이 심화됐고, 중소병원 및 전문병원의 경영악화는 가속화됐다는 볼멘소리만 들려온다.


여기에 환산지수로 대변되는 수가협상은 정치적·경제적 사정들에 휘둘리며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현 상대가치점수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난에 휩싸이면서 의료계 전반에 걸쳐 전향적인 수가구조 개편 필요성이 강력히 제기됐다.


더 이상 땜빵식 개선이 아닌 근본적인 구조 재편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11월 대한병원협회가 주최한 '한국 헬스케어회의(KHC, Korea Healthcare Congress 2014)'에서 이와 같은 의식이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수가체계와 의료공급체계의 전반적 재조정에 대한 보건당국의 동의가 이뤄지기도 했다.


이에 다가오는 2차 상대가치점수 개편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 등은 변화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을 내놓으면서도 "쉽지 않은 작업인데다 개편이 이뤄져도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닐 것"이라며 기대감을 애써 낮추고 있다.


파장을 예상한 듯 상대가치점수 2차 개정을 주도하고 있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이를 관장하는 복지부는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구체적인 일정은 커녕 기존에 발표했던 자료조차 공개하길 꺼렸다.


과연 2001년 현 수가체계 도입 이후 지난 14년간 무슨 변화가 있었고, 보건당국은 무엇을 그렇게도 어려워할까. 수가체계를 둘러싼 쟁점들과 미래 전망을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들어봤다.

 

폐기되는 환산지수 연구… 관심집중 상대가치 2차 개정

대한의사협회는 2015년 수가협상을 위한 환산지수 연구를 잠정 중단했다. 대한병원협회는 2012년에 이어 올해에도 환산지수 연구를 하지 않을 계획이다.


지난해 수행했던 연구보고서는 수가협상 당시 거론만 된 후 빛도 보지 못하고 폐기됐다. 대한치과협회 또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연구를 진행하지 않을 방침이다.


이들이 수가체계를 결정하는 한 축인 환산지수 연구를 중단하는 사유는 똑같다. 돈만 들고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현웅 연구위원은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데 반해 자료의 대표성과 신뢰성, 계산방법의 공정성과 객관성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며 "소모적인 논쟁만 되풀이되고 있다"고 전했다.


심지어 그는 "환산지수를 도출하기 위한 다양한 모형이 개발되고 있지만 실질적인 협상에는 우선순위를 제시하는 수준으로만 활용될 뿐"이라며 "근본적으로 환산지수가 건강보험급여 행위에 상응하는 원가를 보존해주는 개념인지, 비급여를 포함한 수익 대비 비용을 보존해주는 개념인지 합의조차 이뤄지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차의과대 지영건 교수(예방의학과)도 "현 수가체계는 보험자의 재정절감과 요양기관의 수익증대 간 정치적 합의수준으로 정해진다"면서 "원가보존이냐 아니면 수익보존이냐는 근본적 합의점부터 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전문가들은 환산지수가 수가협상을 두고 정치적인 과정을 거쳐 탄생한 ‘기형적 보상기전’이라고 평가한다.


더구나 환산지수 자체가 상대가치점수 총점 고정을 전제로 출발함에도 상대가치점수 역시 의료적 행위의 본질적 가치를 반영하기보다 저출산 장려 등 정책적 판단이나 선택진료비 폐지에 따른 보상기전 같은 동정적 영향 등이 관여될 소지가 높아 가변적이다.


결국 '원가'로 통용되는 의료행위의 순수한 가치판단 기전을 마련해 명확한 기준에 맞춰 사회적 변화를 반영한 수가협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원론적이자 중론적 해법으로 제시된다.


이와 관련 연세의대 박은철 교수(예방의학과)는 "궁극적으로 환산지수가 수가결정의 중요한 몫을 차지하지만 상대가치점수 개편을 통해 진료과 간 불균형 등을 맞춰놓는다면 상당부분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상대가치점수를 도출하기 위한 원가 및 경영분석과 같은 미시적 접근을 사실상 매년 수행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개별 요양기관의 정형화된 원가자료를 확보하고 개별 기관부터 요양기관 전체의 경영분석을 매년 실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보건당국과 의료계는 상대가치점수 전면 재검토 주기를 설정한 '5년의 약속'에 합의했다. 그리고 1차 개정이 이뤄진 2008년 이후 6년이 지난 현재까지 약속은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 진행 중인 상대가치점수 2차 개정에 의료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극심한 불균형과 의료시장의 왜곡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판단에서다.

 

상대가치점수 2차 개정안 윤곽

현재 정부는 '4대중증질환 등 보장성 강화정책'을 위한 재원 확보와 제도 정착을 위해 2013년 도입을 예고했던 2차 상대가치점수 개정안을 1년간 유예했다. 이어 1차 상대가치점수 개정에 따라 심화된 진료과목 간 불균형을 조율하기 위해 금년 3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산하에 상대가치운영기획단을 재발족했다.


이후 기획단은 2012년 완료된 '상대가치점수 2차 개정 연구'를 중심으로 현 상대가치점수의 수가 불균형을 해소하고 ▲기본진료 중심의 급여체계 ▲상대가치 및 가산제도 개선 방안을 중심으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의 진통을 예상해 아직까지 구체적인 방안 등을 공유하지 않고 있다. 복지부와 심평원이 연말까지 현재 적용 중인 급여기준을 재정비하며 논의를 이어가는 등 속도를 내고 있지만 결국 2014년 도입은 물건너 갔고 2015년 도입조차 불투명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다만 지금까지 공개된 자료들을 바탕으로 2차 개정안의 윤곽을 그려보면 금번 개정의 중심축은 전공과별 중심의 횡단적 산출에서 각 행위 유형별로 쪼개는 종단적 산출이다.


즉, 1차 개정 당시 진료과별 총점을 고정해 의사업무량과 진료비용 등을 비교·산출했던 방식에서 벗어나 5가지 유형으로 총점을 고정해 진료과 간 벽을 허물겠다는 취지다.


구체적으로 지난 2010년부터 3년여간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입원료와 진찰료에 해당하는 기본진료를 제외한 ▲수술 ▲처치 ▲검체검사 ▲기능검사 ▲영상검사 ▲기본진료 5개 유형에 대한 총점을 고정해 과 간 균형점을 도출했다.


아울러 유형별 변환지수를 산정해 각 과에서 제출한 직접비용에 현실성을 더했다. 1차 개정 당시 인건비 변환지수 0.22, 재료비 변환지수 0.37 등을 일괄 적용했다면 2차 개정 연구에서는 이를 각 유형별로 달리 적용해 인건비의 경우 수술은 0.68, 처치는 0.27 기능검사는 0.36 등으로 산출한 것이다.


이로써 도출된 총점 변화는 수술의 경우 ▲정형외과 ▲산부인과 ▲안과 ▲이비인후과 ▲신경외과 등이 일부 증가할 전망이다. 반면 ▲비뇨기과 ▲내과(소화기내시경) ▲영상의학과 등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기능유형으로 분류된 총점은 ▲안과 ▲내과(순환기) ▲이비인후과 ▲내과(알레르기) 등이 올랐고 ▲내과(소화기내시경) ▲신경과 ▲내과(호흡기) ▲비뇨기과 등이 감소했다. 검체유형은 진단의학과가 소폭 하락하고 병리과가 일부 상승하는 등 변화가 예상된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산출된 상대가치점수를 바탕으로 원가보존율을 계산해보면 평균 원가보존율은 90.91%가 된다. 이는 1차 개정 후 의료행위에 대한 원가보상수준인 73.9%에 비하면 크게 개선된 수치다.


하지만 불만은 여전하다. 진료과 별 불균형 해소를 위해 유형별로 나눴지만, 여전히 수혜과와 피해과가 나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소화기내시경 분야를 비롯해 내과를 중심으로 한 과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위기의식에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유형별 상대가치점수 산출에 따라 의사의 숙련도나 전공과목 등은 반영되지 못하는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


그 때문인지 공론을 통한 조정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선뜻 정부도 직능단체도 이를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의협 관계자는 "의협회장이 달라고 해도 안줄 것"이라며 "과간 조율 작업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 의과대학 교수는 "뺏고 뺏기는 제로섬 게임에서 누가 자신들 이익을 주려고 나설 것이며 선뜻 뺏으려고 하겠냐"면서 "총점을 올리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는 "값이 나온다고 바로 적용하긴 어렵다. 아직까지도 개별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회피한 채 어떻게 적용할지 등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과간 균형문제와 함께 수가 수준에 대한 논의가 병행돼야 하는 만큼 건보재정을 고려한 다각적 논의가 이뤄져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은철 교수 또한 쉽지 않은 작업임에 공감하며 "영상의학과 등 수가를 많이 받는 과를 깎고 외과 등 덜 받는 곳을 줘야하는 총점 고정방식에서 얼마나 수용가능토록 조율하느냐가 관건이다. 정부 또한 추가 지원을 마련하지 못하면 진도 나가기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이 전하는 미래 수가체계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일단은 과 간 불균형이 극대화된 상황에서 재정적 부담은 물론 의료전달체계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문제를 일부나마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에서다. 2차 개정의 방향성에 대한 온도차가 일부 있을 뿐이다.


박은철 교수는 "5개 유형으로 나눈 것이 아쉽다. 좀더 구체적으로 세분화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영상검사도 MRI, CT 등 행위별로 나눠 접근한다면 진료과별 논의도 조금 수월했을 것"이라면서도 "(2차 개정을 통해) 100%는 아니지만 60~70% 수준으로 불균형이 낮춰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했다.


익명을 요구한 의료계 관계자는 "팔은 안으로 굽듯 직역 이기주의가 없을 수 없다"면서 "이 벽을 허물고 시도하는 만큼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빅5로 쏠리고 있는 건보재정을 중소병원 등 전달체계 전반에 걸친 균형발전을 위한 방향으로 나눌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영건 교수 또한 "상대가치점수는 상대가치점수로서의 순수한 의료행위에 대한 분석으로 이뤄져야 한다. 지방 산부인과가 어렵다고 수가 가산을 줄 것이 아니라 별도의 지원책을 마련해 활성화시키는 방향이어야 한다. 수가가 올라가면 결국 분만율이 높은 대형병원이나 대도시 중심 병원들이 혜택을 본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병원조차도 알지 못하는 원가자료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전문가들에게 스스로 파이를 나눌 수 있도록 하고, 칼을 쥔 이가 마지막 선택을 하도록 하면 해결될 문제"라며 "오히려 정부는 진료량 혹은 의료전달체계 조율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준현 정책위원는 "원가 등을 의료계 내에서 자체적으로 산출하고 결정하면 된다"면서 "심평원은 적정한 진료가 이뤄졌는지를 면밀히 심사·평가하고, 공단은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해 환산지수 협상을 하며 건정심에서는 가입자들이 가격의 수용성을 결정해 조율하는 형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정책위원과 방향성은 다르지만 의협 관계자 또한 "건정심으로 권한이 밀집된 구조는 위험하다"면서 "전문가를 중심으로 급여기준과 수가협상이 이뤄지고, 건정심에서는 보험료 인상이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에 한해 결정하는 방식으로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재정 중립성이란 측면에서 일단 판을 흔들고, 세분화된 기준을 마련해 자율적 조율 하에서 견제장치를 도입, 실질적 조정이 이뤄질 수 있는 구조개편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그리고 그 시작점이 상대가치점수 2차개정이다.


보건당국은 아직 구체적인 개편 방향이나 공론화는 하지 않았지만, 최근 개편에 대한 방향 등 발언을 거듭하며 지난 3년여간의 건강보험 재정 흑자분을 바탕으로 원가 보전 및 균형 있는 수가체계 구축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복지부 손영래 보험급여과장은 "지금이 수가체계 전반을 손질할 적기"라며 "개별 사안에 대한 논의에 들어갔으며 심평원을 통해 다양한 의견들을 받고 있다. 새로운 체계를 구축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복지부 이창준 보험정책과장 또한 "수가 현실화를 위해 시범사업 등 다방면으로 가능성을 열어두고 논의하고 있다”면서 “일선 의료기관들이 진료만으로도 운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의지를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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