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보고
2023.11.15 20:52 댓글쓰기

[수첩] 인기리에 종영된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최근에서야 몰아봤다. 차기 작품인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이 내년 상반기 방송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서다.


일명 '언슬생'에서는 전(前) 작품 주 배경인 '율제 본원'에서 '종로 율제병원'으로 무대를 옮겨 산부인과 전공의들 병원 생활을 그린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서 당당히 '기피과'에 들어선 전공의들 삶을 조명하는 만큼 현실 세계를 반영한 실감나는 스토리가 펼쳐질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흔히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장르가 '의학'이 아니라 '판타지'라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드라마 속 주인공인 이익준(조정석), 안정원(유연석), 김준완(정경호), 양석형(김대명), 채송화(전미도) 등 5인방은 실력부터 인성, 유머, 외모 등 모든 것을 갖춘 인물로 나온다.


99학번 의대 동기생인 이들은 어려운 수술도 한 번의 실수 없이 척척 해내고,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한다. 힘든 기색없이 환자를 위해 헌신하는 그들의 고민은 척박한 현실에서 고군분투하는 의사들의 고뇌와는 거리가 먼 게 사실이다. 


드라마를 드라마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문제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진짜 이야기를 보고 듣는 기자로서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어딘가 모를 불편함을 안겼다.


예컨데 드라마에는 노조나 직역 간 갈등이 없다. 직장 내 폭언과 폭력, 태움 문화도 없으며 진료에 불만을 품은 환자와 보호자에게 멱살을 잡히는 일도 없다.


그뿐일까, 전공의 부족으로 이틀에 한 번씩 돌아오는 야간 당직(일명 퐁당퐁당)에 시달리는 원로 교수도 없으며 울증과 번아웃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경우도 없다.


불가항력적 사고로 실형을 선고받는 사례도 없고 무엇보다 '환자를 볼모로 협박한다', '밥그릇 싸움한다'라는 등 의사들 반대로 불거진 사안에 따른 국민들 비판도 없다.


기자가 본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그저 의사들이 '선의'와 '사명감'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는 '유토피아'로 묘사됐다. 슬의생을 보며 찜찜함을 느낀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산부인과를 그리는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에 거는 기대감도 적잖다. 산부인과는 전공의 기피현상이 심화하며 갈수록 환경이 악화하고 있다.


현실을 외면한 비합리적인 수가, 불가항력 의료사고로 인한 소송 위험, 붕괴 위기에 놓인 분만 인프라를 개선해달라는 산부인과 의사들 절규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된 지 오래다.


이는 소신진료를 지켜오던 산부인과 병원들이 줄줄이 경영난을 견디지 못해 문을 닫는 사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프랑스 소설가 기욤 뮈소는 판타지를 '심각한 문제를 유희적인 방식으로 에둘러 표현하는 문학 장르'라고 정의했다. 우리가 현실과 모순적인 모습을 보며 불편함을 느끼지만 그러한 환상에서 이성을 배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개봉을 앞둔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이 어떤 감동을 선사할지 모르지만, 냉철한 통찰력으로 의료계에 숨겨진 진짜 이야기도 들려주길 바라며 그 기대를 담아 율제병원 산부인과 양석형 교수 말을 빌려본다.


"우리는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나고 산모분이 건강하게 출산하는 게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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