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중복조사에 의한 행정처분은 적법하지 않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위법행위가 발생했을지라도 행정조사기본법을 준수하지 않았다면 처분역시 무효란 판단이다.
전문가들은 의료기관에 큰 타격을 입히는 현지조사와 관련, 법원이 관련 규정을 엄격히 적용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은 최근 A병원을 운영하는 B생활조합이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 관할 지자체를 상대로 낸 요양기관 업무정지 및 급여환수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앞서 지난 2015년 8월 복지부는 A병원에 대한 현지조사를 실시했다. 조사단은 2014년 7월부터 2015년 6월을 조사대상기간으로 설정하고 건보 및 의료급여 청구 적정성 등을 살폈다.
조사 결과, A병원은 간호업무를 전담하지 않은 간호인력을 전담인력으로 신고하며 간호등급을 부당하게 산정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어 1년여가 2016년 말, 복지부는 조사대상 기간을 늘려 A병원에 대한 2차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대상기간은 2014년 10월부터 2016년 7월 사이였다. 1차 조사결과는 통지되지 않았다.
조사 결과 간호등급 산정 위반사실을 재차 확인한 복지부와 공단, 지자체는 2차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건강보험 및 의료급여기관 업무정지 114일 처분 및 18억원의 부당이득금 환수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처분에 불복한 A병원은 소송을 제기했다. 두 차례의 현지조사는 중복조사에 해당돼 절차적 위법사항이 있다는 것이다.
이 사건 1차 현지조사와 2차 현지조사 주체는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동일했다. 또한 건강보험과 의료급여에 관한 비용 청구 적정성 여부 사항이 포함됐다.
조사 주체와 내용이 동일한 가운데 조사기간까지 겹쳐, 이는 행정조사기본법 제15조의 ‘중복조사’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피고 측은 두 조사 목적에 차이가 있었다고 맞섰다.
1차 조사의 경우 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 형태를 이용한 이른바 ‘사무장병원’ 운영 여부를 조사하는 것이 주목적이었으며, 2차 조사는 요양급여비용 및 의료급여비용 부정수급 여부가 주된 목적이었다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1심과 2심 재판부 모두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사건 1차 조사의 경우, 조사 과정에서 이 사건 2차조사의 조사 대상 기간과 일부 중복되는 기간에서 각 조사의 주체, 조사 대상과 조사 대상 기간, 조사 방법에 중복이 있음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행정조사기본법 제15조 제1항에 따르면 현지조사 이후 새로운 증거를 확보한 경우에만 동일한 사안에 대하여 재조사를 할 수 있다.
재판부는 이어 “또한 1차 조사 이후에 위법행위가 의심되는 정황을 넘어 새로운 증거가 확보됐음을 인정할 만한 자료는 없다”며 “이 사건 처분은 중복조사에 근거한 것으로서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판결했다.
복지부는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며 2심 판결이 확정됐다.
현두륜 변호사 “중복조사 금지 위반 근거로 절차적 하자 인정, 현지조사 지침 준수 엄격해져”
이 사건에서 A병원 측 소송대리인을 맡았던 현두륜 법무법인 세승 변호사는 “2차 현지조사에서는 조사대상기간만 늘어났을 뿐 1차 현지조사에서 확보한 증거를 다시 확인하는 정도에 불과했다”며 “이에 따라 원고 병원은 1차 현지조사 이후 부당청구 여부를 확인하고 이를 시정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을 뿐만 아니라, 조사대상 기간 연장으로 인해 부당청구액이 늘어나면서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동안 현지조사 과정에서 현지조사지침 위반을 이유로 절차적 하자를 인정한 사례는 간혹 있었지만, 행정조사기본법 위반을 이유로 한 절차적 하자를 인정한 사례는 드물었다”며 “이번 사건은 그 중에서도 ‘중복조사 금지원칙’ 위반을 이유로 절차적 하자를 인정했고 이를 근거로 각 처분을 취소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크다”고 평가했다.
현 변호사는 “앞으로 건강보험이나 의료급여에 관한 현지조사에서도 이러한 행정조사기본법을 엄격하게 적용해 행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고 의료기관 권익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