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대진 기자
] 국내 최고 권위 의학학술단체인 대한의학회 회장 선출방식은 조금 독특하다
. 평의원회 투표로 선출하는 간선제 방식이지만 정작 후보자들은 자신의 의지와 별개로 추천되는 구조다
. 본인의 출마 의사와 무관하게 자격심사를 거쳐 후보추천위원회가 천거한다
. 최근 제
24대 대한의학회 회장으로 선출된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소아청소년과 정지태 명예교수 역시 출마 선언도 없이 선거를 치렀다
. 지난 선거까지 합하면 두 차례 모두 그랬다
. 그만큼 의학회 내부에서 꼭 필요한 인물로 인정받아왔다는 얘기다
. 그는 그렇게 지난
2017년 선거 이후
3년 만의 재도전 끝에 당선의 기쁨을 누렸다
. 하지만 코로나
19 사태로 의학 학술활동이 전면 중단되는 등 전대미문의 상황을 감안하면 마음이 여간 무거운 게 아니다
. 그럼에도 그는 보다 단단해진 대한민국 의료가 세계 의학계를 주도할 수 있도록 사력을 다할 각오다
. [
편집자주]
“멈춰버린 학술활동 정상화 총력”
정지태 명예교수의 대한의학회 회장 당선은 여러 측면에서 의미가 부여됐다. 모교인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은 물론 전공과목인 소아청소년과 입장에서도 첫 의학회장 탄생이었다.
그 만큼 크나 큰 영예이자 부담감이 상당할 수 밖에 없다. 더욱이 전대미문의 전염병 사태로 의학계의 학술활동이 전면 중단된 상태에 맡은 중책이라는 점에서 무게감이 더 한다.
정지태 교수는 “어려운 시기에 대한의학회장으로 선출돼 어깨가 무겁다”며 “국내 의학단체들의 학술활동 지원에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대한의학회를 명실공히 의학계를 대표하는 단체로 이끌어 가겠다”며 “회원학회들과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국내 의학 발전을 도모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의학회 입장에서는 당장 모든 학술활동이 멈춰 선 상황에 대한 우려가 클 수 밖에 없다. 의사들의 연수평점 확보가 가장 문제다.
온라인을 통한 연수평점 확보 방안도 마련돼 있기는 하지만 컨텐츠 제작비용이나 시스템 구축 등 극복해야 할 문제가 산적하다.
정지태 교수는 “학생들 온라인 강의하듯 연수교육을 진행할 수는 없다”며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시스템 구축 등 생각보다 녹록치 않은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 도출된 국제학술대회 지원기준 등 공정경쟁규약 합의안에 대한 우려도 적잖다.
한층 까다로워진 국제학술대회 지원기준으로 가뜩이나 위축된 의학계 학술활동이 된서리를 맞는 것은 아닌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그는 “새로운 공정경쟁규약으로 국제학술대회 축소가 불가피할 전망”이라며 “방향성에 대해서는 십분 공감하지만 학술활동 위축 우려가 공존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공의에 대한 병원들 인식 개선 시급”
학술활동과 함께 의학회 회무의 또 다른 중심 축인 전공의 수련에 대해서는 확고한 신념을 피력했다. 전공의를 값싼 노동력으로 인식하는 병원들의 행태가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지태 교수는 “수련과 관련한 여러 문제는 전공의를 저렴한 인력으로 보는 일선 병원들의 행태에 기인한다”며 “이러한 인식 개선부터 선행돼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최근 의학계에 불고 있는 수련기간 단축 열풍과 관련해서는 공감의 뜻을 나타냈다.
전문의 자격 취득 후 분과전문의, 세부전문의 등 추가 수련이 당연시 돼 있는 작금의 교육체계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수련교육 단축은 대세로 자리잡고 있는 상황”이라며 “3년제로의 단축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행보의 배경”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공의 수급불균형으로 고민이 깊은 진료과들이 전공의 지원 유도책으로 수련기간 단축을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3년 동안 충분한 수련이 이뤄질 수 있는 프로그램 등을 내실화 하고, 대학 등에서 중증, 전문질환을 담당할 인력들만 고도화된 수련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견해다.
정지태 교수는 “3년이면 대부분의 수련을 끝내고 1년 동안 전문의 시험을 준비하는 작금의 4년 수련체제를 감안하면 수련기간 단축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임상강사 단계까지 마쳐야 제대로된 진료나 술기를 펼칠 수 있는 작금의 수련체제에 대한 보다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대한병원협회가 맡고 있는 보건복지부 산하 수련환경평가위원회 운영권 이관과 관련해서는 민감한 사안인 만큼 즉답을 피했다.
“대한의학회지 기반 한국의료 홍보 확대하면서 위상 제고, 원격의료는 시대적 흐름”
정지태 교수는 내년 4월 임기 시작과 함께 대한의학회 위상 제고에 적극 나서겠다는 각오다.
무엇보다 대한의학회지(Journal of Korean Medical Science, JKMS)를 통해 대한민국 의료를 전세계에 확실하게 각인시킨다는 복안이다.
월간으로 발행되던 JKMS가 2018년부터 주간으로 전한된 만큼 경쟁력은 충분하다는 판단이다. 실제 아시아에서는 주간 의학학술지가 전무하고, 전세계적으로도 7개에 불과하다.
정지태 교수는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전세계 의학계가 대한민국 의료에 주목하고 있다”며 “엄청난 기회인 만큼 JKMS를 통해 최대한 한국의료의 우수성을 부각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1.7 정도에 머물러 있는 JKMS의 피인용지수를 2.5~3.0까지는 끌어올려야 한다”며 “의학자들도 국제학술지가 아닌 JKMS에 투고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각종 현안에 대한 대한의학회의 적극적인 의견 개진도 예고했다. 다만 학술단체인 만큼 단독행보 대신 대한의사협회나 의학한림원 등과 함께 한다는 전제를 달았다.
그는 “대한의사협회와 의학한림원 등과 함께 상설위원회를 구성해 의학회는 관련 현안에 대해 전문지식을 제공하고 여러 의료계 상황을 감안한 의견 도출이 이뤄져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어 “의학회가 각종 현안에 대해 독단적으로 개입하거나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라며 “유관단체와 행보를 함께 해 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다만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다시금 부상하고 있는 ‘원격의료’에 대해서는 “가야할 길”이라고 소신을 확실히 했다.
정지태 교수는 “그동안 의사들은 안전문제를 이유로 원격의료를 반대해 왔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비대면 진료에 대한 필요성과 효율성에 대해서는 부인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시대적 흐름을 무조건 거스르기 보다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대면진료와 비대면진료의 적정 운영 방안을 고민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