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의 뇌파계 사용 관련 광고로 행정처분을 받은 사건이 발생한 데 대해 의료계가 정부에 불법 의료행위에 대한 철저한 관리 및 감독을 촉구했다.
대한의사협회(회장 이필수)는 최근 '한의사 뇌파계 사용은 명백한 불법'이라며 정부에 시정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 2010년 한의사 A씨가 뇌파계를 사용해 파킨슨병과 치매를 진단하고 한약으로 치료한다는 내용을 담은 일간지 광고를 한 데서 비롯됐다.
서초구보건소는 이듬해 한의사 A씨가 면허 외 의료행위를 하고 의료광고 심의 없이 기사를 게재했다며 업무정지 3개월과 경고 처분을 내렸다.
2012년 보건복지부 역시 A씨에게 한의사 면허 자격정지 3개월 처분을 내렸다. 이에 대해 A씨는 해당 처분이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 서울행정법원은 복지부의 손을 들어줬지만, 2심에서 판도가 달라졌다.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소송비용 중 일부를 피고인 복지부가 부담하라고 선고한 것이다.
현재 대법원은 2016년 9월 접수된 한의사 뇌파계 사용 사건에 대해 2022년 10월 전원합의기일 심리를 지정하고 논의를 진행 중이다.
의협은 "뇌파계가 전기생리학적 변화를 바탕으로 뇌의 전기적인 활동신호를 기록하는 장치로써 한의학적 지식을 기초로 한 행위로 볼 수 없다. 한의사의 뇌파계 사용은 명백히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뇌파계는 1924년 독일의 생리학자이자 신경정신과의사인 한스베르거가 뇌의 전기활동을 기록하기 위해 사용되는 방식인 뇌전도(EEG) 기법을 발명하며 탄생했다.
의협은 "한스베르거 이후 수많은 의사들의 연구 노력으로 지식이 축적돼 이를 바탕으로 뇌파계가 환자 진단과 치료에 쓰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뇌파계가 현대의학에서 활용될 것을 예정하고 개발·제작한 것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으며, 뇌파계 사용은 한의학적 원리에 입각해 이를 적용, 응용하는 행위와 무관하다"고 비판했다.
세계신경학연맹 등 외국 학회들도 우려 입장 표명
또 세계신경학연맹(WFN), 국제 파킨슨병 및 이상운동질환학회(MDS), 아시아 오세아니아 신경과학회(AOAN) 등 해외 학회도 한의사 뇌파 사용 및 질병 진단을 우려하는 의견서를 보냈다.
WFN은 "EEG검사는 신경학적 맥락에서 수행돼야 하며 신경학적 전문지식뿐만 아니라 EEG에 대한 자세한 지식과 해석 및 적응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환자 입장에서 EEG 검사가 신경과전문의 등 전문가에 의해서만 수행되고 해석된다는 점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AOAN은 "파킨슨병과 치매를 진단하려면 적절한 훈련을 받은 신경과 전문의의 세심한 병력 청취와 확실한 신경학적 검사가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학회는 "현재 전 세계 표준인 파킨슨병과 치매 진단기준에 따르면 EEG를 포함한 전기생리학적 검사 등은 파킨슨병과 치매의 진단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국내 의료법 제2조에도 '한의사는 한방 의료와 한방 보건지도를 임무로 한다'고 명확히 적시돼 있어 의사와 한의사 면허 범위가 명확하게 구분돼 있다.
의협은 "한의사들이 의과의료기기, 특히 환자 건강과 직결될 수 있는 뇌파계의 불법적인 사용을 시도하고 있는 데 대해, 이를 절대로 좌시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이어 "한의사 면허 범위 외 의료행위와 의과의료기기 사용 등 불법행위에 대해 법적 대응 등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다. 정부의 한방 무면허 의료행위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을 촉구한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