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회‧한림원, '진단 오류' 정의 마련 필요"
이재호 대한환자안전학회장(서울아산병원 응급의학과)
2024.12.23 05:28 댓글쓰기

[특별기고] 2024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세계환자안전의 날 주제로 ‘환자안전을 위한 진단 향상’을 선정했다.


"성인 20명 중 1명 진단 오류 경험"


성인 20명 중 1명이 ‘진단 오류’를 경험한다고 하는데, 연구방법에 따라 이 수치는 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 최근 미국 29개 대학병원 중환자실 이송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진단 오류가 23%로 나타나기도 했다.


진단 오류는 의료분쟁 소송 원인에서도 1, 2위를 차지한다. 가깝게는 2023년 의료분쟁조정원이 발간한 자료에서 응급의학 의료분쟁 조정의 45.7%가 진단 관련 내용이었다. 


최근 국내 의료분쟁 소송은 형사 재판까지 진행돼 필수의료 현장 의료진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지만, 정작 진단 오류와 관련된 국내 연구는 매우 드물다. 


진단 오류 개념 및 원인, 위해(危害) 규모, 개선방안 등 대부분의 자료는 해외에서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환자 위해(危害)뿐만 아니라 의료진에게도 심각한 고통을 주고 있는 진단 오류에 대한 접근법을 의료계가 제시해 줄 필요가 있지만 국내에서 움직임은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국내 관심 낮은 '진단 오류'…권위 있는 기관 나서 '가이드라인' 마련 시급


미국 의학한림원은 지난 2015년 진단 오류를 ‘환자 건강 문제에 대한 정확하고 시기적절한 설명을 확립하지 못하거나 해당 설명을 환자에게 전달하지 않는 경우’로 정의했다.


이어 세계보건기구(WHO)는 이 정의를 따르면서도 조금 더 부연설명하고 ‘지연 진단(delayed diagnosis)’, ‘부정확한 진단(incorrect diagnosis)’, ‘오진(missed diagnosis)’을 명시하고 있다. 


진단 오류를 보는 다양한 관점이 있어 실제로는 진단 오류에 대한 많은 정의와 용어가 존재한다. 


오류보다는 환자 위해에 초점을 맞춰 ‘진단 관련 환자안전 사건’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관점을 반영한다. 


진단 정확성의 세밀함이나 진료환경과 질병에 따른 시기 적절성을 정의하기 어려운 문제, 진료 오류에 환자 및 가족과의 의사 소통과 설명 부족이 포함되는 문제 등 진단 오류 정의와 범위에는 모호함이 있다. 


실제로 진단 오류 연구는 임상영역 전문성 및 오류 자료원(源), 정의 문제 등으로 다른 종류의 사건 연구보다 훨씬 어렵고 개선할 부분이 많다.


의료계는 진단 정확성 향상을 위해 새로운 진단기법을 개발하고 전자의무기록 기반의 경고나 트리거 등을 활용한다. 


최근 영상분야에서는 인공지능(AI) 지원을 많이 받고 있으며 새로운 프로토콜이나 진단 체크리스트 등을 활용하기도 한다. 이중판독 등의 추가 검토방법을 도입해 진단 정확성을 향상시키려고도 한다. 


이들 외에도 진단 오류 예방방안은 진단이 진행되는 업무시스템 전반에 적용할 수 있다. 


진단 과정에 참여하는 구성원들 역할 변화를 시도해 오류 기회를 줄이고, 인지과학 교육훈련과 지원 도구를 통해 인지 오류를 줄일 수 있다. 진단업무 시스템 및 진단관련 보험체계 개선, 진단과정 및 진단 오류에 대한 연구도 이에 포함된다. 


"진단 오류 약 79%, 의료진과 환자가 대면하는 과정에서 발생 추정"


진단 오류 약 79%가 ‘의료진과 환자가 대면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연구결과는 진단과정에서 환자 참여와 역할을 강조한다. 많은 환자들은 ‘잠정진단’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잠정진단이 계속 변하는 것을 진단 오류로 오해할 수 있다. 


환자와 가족 진단과정에 대한 이해와 참여는 진단 정확성을 향상시킨다고 알려지면서 이들의 참여를 개선시킬 수 있는 다양한 도구와 중재방법이 연구되고 있다. 


진단 오류의 근본 원인으로 흔히 언급되는 '인지 오류'는 진단과정에 있는 의료진은 인지하기 어려운 것으로, 인지과학 및 임상의사 결정 과정에 대한 학습과 지원도구를 통해 예방할 수 있다. 


금년 9월 29일 대한의사협회 지역환자안전센터는 진단 오류를 주제로 환자안전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진단 오류가 민감한 사안이고 준비가 미흡하고 다양한 의견들이 있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많은 환자와 의료진이 이로부터 고통받고 있어 한 발을 내딛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에 의견이 모아졌다. 


앞서 진단 오류 개념과 범위에 대한 문제를 잠깐 언급했는데, 국내에는 ‘진단 오류’에 대한 정의를 찾기가 어렵다. 


진단 오류는 진단과정과 이를 둘러싼 업무시스템과 환경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진단 오류로 오인할 수 있는 것들을 가려내고, 다양한 의견을 듣고 조정하는 작업이 필요해 의학계의 권위 있는 기관에서 명확한 정의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즉, 대한의학회나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 진단 오류 정의는 단지 연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임상현장과 의료분쟁에서도 기준으로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의료진에게 매우 필요한 개념이다. 


국내 의료계에서 진단 오류 정의 및 오류와 위해(危害) 규모, 원인과 개선전략, 제도적 개선방안 대한 연구가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의료사고특례법을 통해 의료진을 처벌로부터 보호하는 것과 함께 진단 오류를 사전에 예방하려는 전향적인 방안이 시급히 임상 현장에 적용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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