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경희대학교의료원에 첫 여성 병원장이 탄생했다. 그것도 임상 분야가 아닌 진단검사의학과 출신이라는 점에서 파격적인 유리천장 깨기라는 평(評)이 지배적이다. 강동경희대병원 이우인 병원장(58, 사진)이 그 주인공이다. 사실 이우인 병원장이 걸어온 발자취를 살펴보면 이번 인사가 예측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경희의료원에서 진단검사의학과 과장, 감염관리실장, 적정관리실장 등 주요 보직을 맡으며 줄곧 여성 최초 기록을 경신해 왔다. 묵묵히 개척자로서의 삶을 살아온 셈이다. 경희대 의대 출신인 그는 모교 병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를 마친 뒤 삼성서울병원, 미국 MD 앤더슨 전임의를 거쳐 2002년 경희의료원 임상조교수로 합류했다. 그로부터 20년 후 여성 병원장으로 조직을 이끌게 됐다. 그는 "상황에 따라 약점이 강점이 되기도 한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지친 직원들에게 따뜻하고 섬세한 엄마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Q. 경희의료원 여성 최초 병원장 소감은
상당히 부담되고, 무게감이 크다. 솔직히 병원생활을 하면서 성별에 대해 인식조차 못하고 살았다. 의대 시절이나 인턴, 레지던트 시기에도 눈 앞에 놓인 일들을 해내기 바빴지, 여성으로서 한계 등을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쭉 그렇게 살아왔다. 그래서 유리천장을 깬 리더나 여성 최초라는 찬사가 낯설고 무겁게 다가온다. 병원장 후보 지명 당시에도 여성보다는 오히려 마이너과 출신이란 점이 더 신경쓰였다.
Q. 진단검사의학과 출신 병원장은 이례적이다
그렇다. 특히 경희대의료원은 전통적으로 외과 계열이 강하기 때문에 진료지원을 하는 진단검사의학과가 병원장이 되기 쉽지 않다고 여겨졌다. 마이너과라 스스로 위축됐던 것 같다. 그런데 진단검사의학과이기 때문에 보직을 맡았을 때 업무 성과가 좋았다. 그 이유는 진단검사의학이 모든 실험 프로세스를 점검하고 직원을 관리하며 임상 요구를 확인하는 일을 하는데, 이 자체가 경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업무를 'Laboratory Management'라고 부른다. 병원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관리업무를 자주했다. 복지부 산하에 진단검사의학재단을 만들어 10년 간 본부장을 역임하며 전국에 있는 검사실을 평가하기 위한 인증제도를 만드는 일을 주도적으로 했다.
Q. 유리천장 깬 비결은
여성, 마이너과가 약점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오히려 강점이 됐다. 시기가 잘 맞았다. 코로나19 팬데믹 장기화로 병원 분위기가 침체돼 있고, 모든 직원들이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지쳤다. 이들을 격려하고 사기를 복돋아주기 위해 여성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여긴 것 같다. 또 강동경희대병원은 개원 후 양적 팽창이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하드웨어는 좋아졌지만, 진료 시스템 등 소프트웨어에서 문제가 생겼다. 이런 업무 흐름의 문제점을 찾고 해결하는데 적임자라고 판단한 것 같다. 인사 발표 당시 삼성전자에서도 여자 사장이 임명됐는데, 사회적 분위기도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이다.
Q. 임기 내 목표는
강동경희대병원 체질 개선에 주력할 방침이다. 그동안 우리 병원은 상급종합병원 진입을 목표로 삼았다. 그런데 그 길로 가려면 중증환자 진료 등 조건을 맞춰야 한다. 문제는 우리 병원은 신포괄수가제도를 도입, 중증환자를 보기가 힘든 환경이란 점이다. 그래서 교수들이 중증환자를 보고 싶어도 지불제도 때문에 제약이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급종합병원 진입 자체가 아니라 중증환자를 비롯해 우리에게 맞는 환자를 빠르고 체계적으로 보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이렇게 내실을 다지다 보면 어느 새 상급종합병원이 돼 있을 것이다. 임기 동안 목표는 상급종합병원에 걸맞는 진료환경 및 시스템 구축이다.
"따뜻한 엄마 리더십 기반 단호하게 시스템 개혁 추진"
"전반적 병원 시스템 체질 개선하면서 중증질환 진료 강화"
Q. 강동경희대병원, 외과계열 대비 내과계열이 약하다는 평(評) 있는데
그렇다. 우리 병원은 정형외과로 성장한 병원이다. 정형외과를 포함해 모든 외과 파트가 실력이 뛰어나지만 중증질환을 많이 보려면 내과 활성화가 필수적이다. 미래 병원 경영의 방향을 잡는데 있어서도 내과가 중요한 만큼 임기 동안 내과 육성 방안에 주력할 계획이다.
Q. 대학병원 간 경쟁이 치열하다. 차별화 방안은
대학병원이지만 종합병원이기에 '단순함, 신속함'이 장점이다. 예컨대 암이 의심 되면 대기 없이 곧바로 검사를 받을 수 있는 패스트 트랙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를 확대할 예정이다. 특히 인공관절 같은 경우 상급종합병원에서는 1년씩 대기해야 하는 만큼 '인공관절=강동경희'가 떠오르도록 패스트 트랙 대상 질환을 확대해 브랜드화할 계획이다. 진단 및 진료뿐만 아니라 연구 부문도 강화할 것이다. 혈액검사로 암 유전자를 연구하는 회사가 있는데, 상급종합병원에 오는 환자들은 암 진단을 받고 오는 환자라 연구가 어려워 우리에게 협업을 제안했다. 좋은 사례라고 생각해 같이 하기로 했다.
Q. 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력 확보 계획은
인력 문제가 정말 힘들다. 우리 병원도 의사직 누수가 생기기 시작했다. 2025년까지 수도권에만 6000병상 이상 늘어날 예정이라고 하지만 해당 병원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 의료인력이다. 일단 내부 직원들의 복지를 강화하기 위해 교수협의회가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인턴, 레지던트, 전임의다. 개원한 기간이 짧고, 병상 수에 따라 인력을 배정받다보니 우리 병원은 인턴 수가 적다. 본원은 환자 수가 20~30% 더 많지만 인턴 수는 2배 더 많다. 그러니 인턴들이 누가 여길 오고 싶겠나. 외과, 산부인과 등 기피과 전공의도 못 뽑았다. 특히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운영하다 보니 선발에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인턴, 전공의 등의 대폭적인 처우 개선 및 복지 강화 등을 통해 인력 확보에 나설 계획이다. 동문들로부터 기부도 받아 시설 투자가 아닌 인력에 적극 투자하려고 한다.
Q. 경희의료원과 EMR 통합 사업은
의료 빅데이터가 미래 먹거리로 대두되고 있어 병원들마다 통합 EMR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강동경희대병원도 올해부터 새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진료 파트는 큰 문제가 없지만 건강증진센터, 보험심사 파트 등은 굉장히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강동경희대병원은 본원과 달리 신포괄수가제를 적용하고 있어 EMR 적용 시 더 큰 혼선이 우려된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경희학원은 '질병 없는 인류사회 구현'을 추구한다. 이 같은 비전을 실현할 수 있도록 ESG 경영을 실천하는 의료기관이 되고 싶다. 내부적으로는 원내 모든 교직원들이 행복하게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조직 문화를 만들고 싶다. 열심히 일하면 인정해주고 격려해주는 긍정적인 병원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 엄마 마음으로 직원들을 보듬어 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