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의료산업, 위기와 기회 공존"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
2022.09.13 06:02 댓글쓰기

해야 하지만 섣불리 하지 못하고, 나아가야 하지만 제자리 걸음만 되풀이 하고 있는 대한민국 의료산업에 쓴소리가 던져졌다. 충분한 인프라와 경쟁력에도 ‘영리화’라는 프레임에 꽁꽁 묶여 있는 작금의 상황이 지속될 경우 자칫 지금까지 쌓아 놓은 위상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진단이다. 이는 의사단체, 공공의료, 해외의료를 모두 섭렵한 전문가의 냉철한 제언이라는 점에서 더욱 관심이 쏠린다. 서울대학교병원 공공진료센터 권용진 교수는 최근 데일리메디와 만난 자리에서 우리나라 의료산업의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했다. 흩어져 있는 국내 의료산업 경쟁력을 하나로 뀀과 동시에 ‘디지털’이라는 패러다임 변화에 신속하고 탄탄하게 대비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한국 의료산업, 경쟁력 충분하고 디지털 패러다임 전환 대비 절실”


권용진 교수는 의과대학 졸업 후 대한의사협회 김재정 집행부에서 대변인을 지냈다. 당시 나이는 서른 초반이었다. 그의 최연소 대변인 기록은 여전히 유지 중이다.


이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건강사회정책실 교수로 후학 양성에 매진하던 중 서울시 북부병원 원장을 맡아 공공의료 분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뿐만 아니라 국립중앙의료원 기획조정실장 시절이던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에는 의료원 대책본부 상황실장을 맡아 국가 감염병 위기 상황 극복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2017년에는 서울대병원 공공의료사업단 소속 교수로 부임했고, 서창석 前 원장 시절 부원장급인 단장으로 취임해 국내 공공의료 관련 기획과 정책을 담당했다.


이후 서울대병원 중동지사장으로 파견근무를 나가 해외 의료기관 진출 현장 경험을 쌓고 올해 초 서울대병원으로 복귀했다.


의사단체, 공공의료와 해외의료까지 광폭 행보를 이어온 그가 더 넓은 세상에서 한국의료 위상을 체감한 후 던진 첫 화두는 ‘의료산업’이었다.


전세계적으로 한국의료 위상이 상당한 만큼 이제는 과감하게 산업적 접근을 통해 국부를 창출하고 여타 경쟁국들과의 술기 수준을 초격차로 벌이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인프라와 경쟁력은 충분하다는 진단이다. 실제 이미 의술과 바이오 분야에서 세계 5위권이라는 각종 수치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 역시 의료의 산업적 가치에 주목하고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을 주축으로 오랜 세월 의료산업에 시동을 걸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하지만 매번 ‘의료 영리화’라는 프레임에 막혀 제대로 뜻을 펴보지 못하고 보낸 시간이 십 수년이다. 이러한 상황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권용진 교수는 “의료산업은 영리화라는 이념적 논란 대신 학술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막대한 부가가치와 일자리 창출 등 당위성은 충분하다”고 설파했다.


이어 “법인을 제외한 모든 의료기관은 이미 영리를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의료 영리화 논란은 애초에 잘못 설정된 프레임”이라고 덧붙였다.


광범위한 영역에 산재 돼 있는 의료산업 인프라의 통합, 관리 필요성도 제기했다. 경쟁력을 극대화 하기 위해서는 각자도생이 아닌 시너지를 도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의료산업은 단순히 의술, 의약품, 의료기기, 의료정보시스템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라며 “건강보험 시스템을 비롯해 산림치유, 치유농업 등 상당히 다양하다”고 말했다.


이어 “각 분야에서 나름의 노력들이 전개되고는 있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의료산업 영역으로 편제시켜 통합적 접근과 시너지 창출에 주력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근시안적 접근으로 기회 상실 우려”


대한민국 의료산업 타깃으로는 한치의 주저 없이 ‘중동’을 지목했다.


서양의 경우 한국의료에 대한 ‘구매 능력’은 있지만 ‘구매 의사’가 없고, 개발도상국의 경우 ‘구매 의사’는 있지만 ‘구매 능력’이 없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오일머니’ 영향력이 여전한 중동국가들은 한국의료에 대한 ‘구매 의사’와 ‘구매 능력’을 모두 갖추고 있는 만큼 매력이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즉, ‘한국의료’ 우수성을 앞세운 두루뭉술한 해외시장 진출보다는 실효성 극대화를 위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전략이다.


권용진 교수는 “중동국가들은 한국의료에 대한 신뢰가 높고 그에 따른 잠재적 수요도 상당하다”며 “의료산업의 확실한 성과를 위해 중동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라고 피력했다.


이어 “가격 경쟁력 면에서도 다른 서양 국가들 대비 한국의료 가성비는 월등하다”며 “중동국가들 역시 한국의료 가성비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수요도가 높은 만큼 한국 의료산업이 진출할 분야도 다양하다. 현지 병원 건설, 위탁운영은 물론 건강보험 시스템 전수, 의약품, 의료기기 수출에 이르기까지 매력이 충분하다.


다만 중동은 물론 세계 의료산업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시대적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미 의료 분야에도 ‘디지털(Digital) 대전환’이 급속하게 이뤄지고 있는 만큼 한국 의료산업도 발빠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분석이다.


원격의료와 의료AI를 둘러싼 일련의 논란에 대한 쓴소리도 이와 맥(脈)을 같이 한다. 소모적 논쟁으로 전세계 의료산업 맹주가 될 기회를 놓치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이미 원격의료는 거스를 수 없는 의료소비 형태임이 확인됐고, 의료 인공지능 역시 진료현장 모습을 빠르게 바꿔가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는 얘기다.


권용진 교수는 “인공지능(AI)이 의사를 대체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며 “기계나 프로그램에 의사면허를 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빅데이터를 활용해 의사 진단과 치료방법 선택에 도움을 주는 수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반대를 위한 반대는 발전을 저해한다”라고 덧붙였다.


세계적 반열에 오른 의료와 자타가 공인하는 ‘IT 기술력’을 토대로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의료산업의 절대적 강자로 확고하게 자리매김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인력, 기술력이라면 세계 1등도 충분하다”며 “적어도 근시안적 접근으로 기회를 상실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라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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