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양보혜 기자] 코로나19 대유행이 한창이던 2020년 11월 식품의약품안전처 김강립 처장이 ‘소방수’ 임무를 부여 받고 신임 수장으로 취임했다. 직접적인 방역은 아니었지만 국가적 보건 위기 상황에서 식약처는 방역 필수품인 마스크, 진단키트 공급은 물론 제약주권 확보를 위한 국산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 지원을 담당했다. 가시적인 성과도 있었다. 국내 최초 코로나19 항체치료제 ‘렉키로나’가 단기간에 허가됐고, 진단기기는 수출 역군으로 전세계에 K방역의 위상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김강립 처장은 지난 6일 출입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방역의 한 축을 담당했던 지난 1년 6개월을 돌아보고 향후 계획을 전했다.
Q. 감염병 사태 속에 식약처를 이끈 소회
코로나19 사태가 이렇게 오래갈 줄 몰랐다. 벚꽃이 세 번 피고 지는 동안 계속 이어졌다. 그래도 문재인 정부 동안 오미크론 변이 등 감염병 관리 및 대응이 적절하게 이뤄졌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리며 마스크 없는 일상을 회복해 가고 있어 다행이다. 모두 노력한 결과다. 코로나19 유행 기간 최선을 다했지만 여전히 많은 숙제가 있다.
Q. 임기 내 굵직한 성과가 많았다
코로나19 대응에 식약처가 한 축을 담당했다. 항체치료제를 처음 개발하고 심사하는 전 과정에서 기업과 소통하며 협력했다. 완성된 자료가 아니라 임상이 진행 중인 자료에 대해서도 사전심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40일 만에 허가했다. 같은 제품에 대해 유럽의약품청은 10개월이 걸렸다. 여기서 더 중요한 점은 ‘신속’, ‘정확’하게 검증한다는 원칙을 지키면서 낸 성과라는 사실이다. 백신도 마찬가지다. 일각에서 미국, 유럽 등에서 허가된 약인데, 추가적인 자료 확인은 불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제약주권의 문제다. 우리 국민에게 안전하고 효과가 있는지 더 검증이 필요했다. 특히 백신의 경우 심사자료가 1만 페이지가 넘는 경우가 많은데, 1상과 2상 결과가 3상에서도 일관성있게 도출되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작업을 40일 만에 마쳤다. 노바벡스도 심사 기한을 지키기 위해 밤을 새우는 일이 다반사였다.
Q. 내부 역량 강화도 취임 당시 목표로 내걸었다
그렇다. 중요한 과제인 만큼 고민이 많았다. 결국 ‘국민 안심이 기준이다’라는 기준을 세우고, 여기에 맞춰 내부 역량을 키우는데 주력했다. 특히 임기 후반부임에도 ‘제품화전략지원단’을 출범시켰다. 심사 인력에 대한 교육 시스템을 정비하고, GMP 심사나 조사와 같은 훈련체계도 만들며 예산을 투입했다.
Q. 역으로 아쉬운 점은
뒤돌아보면 늘 아쉬움이 남는다. 최선을 다했다고 해도, 후회가 생길 수 밖에 없다. 하나를 꼽으라면 식약처 내 전문직 비율을 늘리지 못한 것이다. 공무직과 전문직 비율은 2대 1 수준인데, 전문직의 경우 평균 3년 정도 머물다가 기업이나 대학으로 간다. 세포, 유전자치료제 심사 등 고난도 업무를 하려면 3년은 지나야 하는데, 대부분 업무에 대해 막 눈을 뜨기 시작할 때 떠난다. 아쉬운 부분이다. 특히 최근 2~3년 사이 바이오 분야 투자가 급증하고 있는데, 이는 향후 새로운 바이오의약품 심사 수요가 늘어난다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인원을 늘리거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동안 여러 가지 제안을 해봤지만 쉽지 않은 과제였다.
Q. 코로나19 대응에 밀린 과제들도 많을 것 같다
그렇다. 코로나19 관련 의약품, 의료기기를 우선 심사하면 다른 제품들은 순번이 밀리게 된다. 코로나가 엔데믹으로 전환되면 그동안 미뤘던 의약품·의료기기 등 의료제품을 심사해야 한다. 식약처 역량의 지평이 대한민국 의료제품 산업의 미래다. 제품화전략지원단과 같은 조직이 제대로 모습을 갖추고 기술 발전 속도를 맞춘 규제 운영이 가능할 때 바이오헬스 산업이 더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 믿기에 이 과제가 제일 중요하다고 본다.
“식약처 조직 개편보다는 미래 준비가 더 시급한 과제”
“업체들 소송 통한 물량 소진, 바람직한 행태 아냐”
“제약사 GMP 위반, 용납할 수 없는 문제”
Q. 한동안 부처 통합론이 ‘뜨거운 감자’였다. 복지부와 식약처, 식약처와 질병청 통합론 등이 나왔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조직 개편이 주목받는다. 그런데 조직 변화에 에너지를 쏟는게 좋은 투자인지 잘 모르겠다. 사실 5년이란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초기 1~2년 기틀을 만들지 못하면 그 뒤로 추진하는 정책들이 탄력을 받기 어렵다. 복지부와 식약처를 합치고 변화가 안정화되는 데 시간을 쓰느라 새 정부가 국민을 위해 추진하는 정책들을 현실화하는 시간이 부족할 수 있다. 통합은 통합대로, 안정은 안정대로 장단점이 있다. 코로나19 위기가 아직 종식되지 않았고, 가을에 또 다른 변이가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위기 대응 과정에서 문제점을 찾고, 다음 위기를 준비하는 게 조직 개편 만큼이나 중요한 과제라 생각한다.
Q. 요즘 식약처 행정처분에 반발한 업체들의 소송이 계속되고 있다
본의 아니게 법률 시장 성장에 기여한 것 같다(웃음). 기업들이 패소를 예상하고 행정처분 효력정지 소송을 낸 뒤 법원이 받아들이면 물량 소진에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행태라고 생각한다. 식약처뿐만 아니라 복지부 등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많다. 이에 실무자의 법률 교육을 제공하고 있으며, 법률 자문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다.
Q. 임기 동안 임의제조 이슈도 잇달았는데
‘규칙’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현장에서 임의로 자료를 조작하고 거짓 보고하는 관행은 용납할 수 없다. 그런데 적잖은 기업들이 규칙을 어기고 있다. 기업들이 반성하고 잘못된 행태를 고쳐나가야 한다. 단 옛날에 만들어진 제도 가운데 개선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문제점들은 지적해주고, 함께 개선하면 좋겠다. 식약처도 합리적인 제안에 대해선 열린 마음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Q. 낙태약 허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높은데
어려운 문제다. 허가에 앞서 법령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 아직 모자보건법이나 형법 개정이 안 됐고, 이와 맞물려 약사법 개정도 필요하다. 법 정비나 여러 준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허가부터 논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Q. 새정부 출범 이후 거취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말처럼 바뀔 것으로 예상하는 게 합리적인 추정이라고 본다. 정무직 공무원으로 32년 넘게 살아왔다. 선출된 권력이 아니기에 임명권자 결정에 따를 것이다.
Q. 향후 계획은
만약 자리에서 물러난다면 좀 쉬고 싶다. 30년 넘게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후회없이 치열하게 일했다고 자평한다. 다시 돌아가더라도 더 열심히는 못할 것 같다(웃음). 그런 시간을 보냈기에 쉬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복지부와 식약처를 두루 경험했고,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위기도 겪었다. 여러 공직을 수행하며 축적한 경험은 개인적인 추억으로만 남기기엔 소중한 국가적 투자였다고 본다. 의미 있는 형태로 사회에 기여할 기회가 있다면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식약처장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