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의료선진국인 우리나라 국민들이 타국까지 가서 수술을 받는 현실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브로커를 거치는 과정에서 소모적인 비용이 발생했고, 안정적인 사후관리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였습니다. 국내 대학병원 중 처음으로 젠더클리닉이 개설되기까지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지만 절실했던 이들은 현재 높은 만족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고대안암병원은 지난 1월 조금은 특별한 클리닉을 개소했다. 성별 정체성을 나중에 깨닫고 의학적 처치를 원하는 환자들을 위한 ‘젠더클리닉’을 국내 대학 중 처음으로 만들었다.
클리닉을 이끄는 황나현 성형외과 교수[사진]는 최근 데일리메디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일부 음성적으로 이뤄졌던 성 정체성장애 (Gender Identity Disorder) 환자에 대한 의학적 처치가 보다 체계적이고 안전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황나현 교수는 젠더클리닉 핵심 경쟁력으로 다학제적 진료를 꼽았다. 클리닉을 찾은 환자들은 수술을 받기 전·후에 걸쳐 단순한 외적 변화뿐만이 아닌 좀 더 안정적인 삶의 변화를 위한 다방면의 도움를 받을 수 있다.
우선 수술 전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성별정체성을 정확하게 인지하게 된다. 한 번 수술을 선택하면 되돌리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전문가와의 충분한 상담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첫 젠더클리닉 개소···"다학제적 진료 가능"
황 교수는 “성별 재지정 수술 전(前) 정신건강의학과에서 하는 일은 어떠한 ‘질병’을 진단하는 것이 아닌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라며 “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선택인 만큼 수술 전후 심리상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술 후에는 민감한 신체부위인 만큼 주기적인 소독처치가 이뤄져야 하며, 일정 기간은 지속적으로 이상증상의 발생 여부도 관찰해야 한다.
해외에서 수술을 받은 환자들 중에는 사후관리가 제대로 안돼 심각한 후유증을 앓게 되는 경우도 적잖다.
황 교수는 “그동안은 주로 태국에서 수술을 받는 환자들이 많았는데, 수술을 마치고 귀국한 환자들이 태국에 있는 담당의 처치를 받기는 아무래도 어렵다”며 “한 의료기관에서 연속적으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 또한 본원의 클리닉이 갖는 장점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고대안암병원의 젠더클리닉을 찾은 환자들 만족도는 매우 높다. 클리닉을 개설한 이후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았지만 다들 ‘알음알음’ 찾아왔다고 한다. ‘해외 원정 수술’에 큰 부담을 느꼈던 환자들이 많았던 만큼 소문이 나는 것도 빨랐다.
이처럼 환자들의 큰 호응을 얻는 젠더클리닉이지만 문을 열기까지 과정은 결코 쉽지만 않았다. 대학병원으로선 다소 '파격적'인 행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화한 사회상 속에서 병원 집행부는 결단을 내렸다.
황 교수는 "무엇보다 원장님, 과장님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어 클리닉 개소가 가능했다"며 감사함을 전했다.
사실 고대안암병원 성형외과는 이미 90년대 성별 재지정수술을 시작했다. 당시 국내 대형병원 중 이 분야에 선구적이었다. 그러나 아직 사회적 인식이 불편하던 시절, 수술을 집도하는 의료진의 명맥은 이내 끊기게 됐다.
고대가 모교인 황 교수는 이런 내력이 안타까웠다. 일찍이 성(性) 정체성 장애에 대한 의학적 접근에 개인적인 관심을 가져왔던 그는 꾸준히 해외 학회에 참석하며 연구 활동을 계속했다.
국내와 달리 해외 의학계에선 관련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었다. 황 교수는 이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회인 WPATH(WORLD PROFESSIONAL ASSOCIATION FOR TRANSGENDER HEALTH)에 수 년 째 참가하고 있다.
이 곳에서 황 교수는 성별재지정수술에 따른 최신지견을 따라갈 수 있었다. 다양한 수술방법뿐만 아니라 호르몬 요법부터 각 나라의 사회적 제도 및 지원 등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방법으로 성별 트랜지션(Gender Transition)을 국내 환자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도 다 년 간의 연구 활동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황 교수는 "이번 클리닉 개소로 인해 더 이상 성별재지정수술을 받기위해 환자들이 외롭게 타지로 떠나지 않고 국내에서 모든 과정을 진행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나아가 음성적으로 이뤄지던 수술에 대해 사회가 더욱 포용력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황 교수는 “젠더 문제는 사회적으로도 민감하게 다뤄지는 만큼 의료진도 단순한 수술을 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측면에 관심을 가지면서 환자와 더욱 만족스런 소통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물론 성 소수자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인 시선이 존재하고, 이러한 시각도 개인의 가치관으로서 존중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만 성 정체성 사안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진 의료인으로서 안전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성별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이들에 대한 의학적 판단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정확한 정보전달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있다”고 덧붙였다.
지속적으로 성소수자 문제를 다양한 직역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는 그는 “의학적 및 사회적으로 모두 만족스러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앞으로 더 많이 공부하고 노력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