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최근 한 법제처 답변이 의료계에서 화제가 됐다. 대학병원 소속 교수가 당해 연차를 모두 소진하지 않았다면 ‘연가 보상비’를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법제처는 소관부처인 고용노동부의 의견과 법령해석을 요청인의 의견이 동일하다고 답변했다.
법제처는 노동부 답변을 인용해 “사립학교 교원에 해당하는 대학병원 교수가 연가보상비 지급 대상에 해당함에도 사용자(병원)이 연가보상비를 지급하지 않은 경우에는 ‘근로기준법 43조 위반에 해당한다”며 대학병원 교수들 또한 근로기준법에 따른 권리가 마땅히 주어진다고 명시했다.
별도로 정해진 규정이 없는 한 근로기준법에 따라 연가보상비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대학병원 교수들은 교원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연가보상비 제도를 잘 활용하지 못했다.
사립학교 교원 신분인 대학병원 교수는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연가를 보장받지만, 환자를 진료하는 임상교수의 경우 실제로 주어진 연차를 제대로 소진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이번 법제처 해석에 병원계는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사립학교 교원이면서도 사각지대에 있던 대학병원 교수들이 ‘근로기준법’에 따른 권리를 정당하게 청구할 수 있게 될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이번 법제처 법령해석을 이끌어낸 이승진 노무사[사진]는 최근 데일리메디와 만나 “지금까지는 근로자의 권리가 블루칼라(생산직)를 중심으로 주어졌지만 이제는 사회적 인식이 많이 변화했다”며 “대학병원 교수 등 ‘화이트칼라’도 근로기준법에 따라 사용자측에 권리를 요구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엘리트 계층’이란 프레임에서 벗어나 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찾아나서는 일이 더 이상 드물지 않게 됐다는 것이 이 노무사의 얘기다.
"화이트칼라, 근로기준법 기반 권리 요구 사례 증가"
백중앙의료원 산하 5개 병원 교수 130명 미지급 연가보상비, 고용노동부 진정
실제로 이 노무사는 지난해 백중앙의료원 산하 5개 병원의 교수 130명을 도와 미지급된 연가보상비 지급과 관련해 병원을 상대로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했다.
사립학교 교원은 국가공무원법이 준용된다. 6년 이상 장기근속한 대학교수에게는 21일 간의 연가가 주어진다. 하지만 백병원 소속 교수들의 경우 하계와 연말 각 5일씩 총 10일 정도의 연가만을 사용했다.
법적으로 11일의 연가가 더 보장되지만 병원도, 교수들도 보상에 대한 얘기를 꺼내진 않았다.
연가보상비 문제가 불거진 계기는 지난해 임금체계 개편이 이뤄지면서다. 백병원교수협의회는 임금체계를 들여다보던 중 연가보상과 관련한 문제를 지적했다.
해당 건을 수임한 이 노무사는 병원에서 노무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전문가들을 만나봤다. 하지만 임금체계를 당장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임금체계 대한 자료 자체도 쉽게 공개되지 않았다.
병원 측과 접촉하는 한편 이 노무사는 당사자인 교수들에게도 현행 제도를 정확히 알려나갔다. 백병원 산하 5개 병원 중 3곳에서 연가보상비체계와 관련한 설명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현재 백병원 교수들의 조정신청건은 고용노동부 조사를 앞두고 있다. 조사 결과에 따라 다른 병원들도 참고할 수 있는 새로운 선례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 노무사는 연가보상비가 관행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것은 비단 백병원뿐만 아니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해당 법제처 해석 이후 병원계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전언이다.
그는 “대부분의 대학병원이 비슷한 상황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근로자 측에서 아무래도 먼저 나서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계속해서 근무를 하는 입장인 만큼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향후 정당한 근로자의 권리를 찾는 대학병원 교수들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노무사는 “그동안 계층 ‘이미지’에 따라 권리가 형성됐고, 대학병원 교수들은 대표적인 ‘엘리트 계층’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며 “실제로 최근 의대교수 노조 설립 움직임이 이는 등 대학병원 교수들이 근로자로서의 권리를 요구하는 사례는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