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한해진 박정연기자/
기획 4] 정부 정책에 반대해 집단행동에 동참한 의대생들이 의사 국가시험(의사국시)에 응시하지 않으면서 병원들은 400여명 남짓한 인턴들을 받게 됐다.
의료계에선 인턴 1년차가 기형적으로 감소함에 따라 남은 인턴과 레지던트의 업무 부담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 우려한다.
실제로 2021년도 상반기 레지던트 모집 일정에서 근무강도가 높은 기피과들은 모집률에서 예년보다 더 큰 낙폭을 보였다.
본지가 전수조사한 올해 80개 수련병원의 레지던트 지원현황을 살펴보면 이같은 사실을 뚜렷하게 나타났다. 밤샘 수술이 일상인 흉부외과는 원래부터 기피과로 여겨졌지만, 올해는 더욱 아쉬운 성적을 보였다.
흉부외과 올해 모집률은 53%를 충족하는데 그쳤다. 이른바 빅5 대형병원들도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은 모집인원 5명에 불과 2명이 지원했으며, 모집인원이 가장 많았던 가톨릭중앙의료원도 6명 모집에 단 한명의 지원서도 받지 못했다.
지역 거점병원인 길병원, 아주대병원, 한림대 동탄성심병원 또한 단 한 명의 지원자도 받지 못했다.
소아청소년과(33%)와 산부인과(72%)의 경우 필수과목임에도 불구하고 낮은 지원률을 보였으며, 지방 중소병원에서도 수요가 많았던 가정의학과(60%)도 미달 사태를 면치 못했다.
서울 A대학병원 교육수련부장은 “외과 몇몇 과들은 어려운 술기를 배워야 하고 수련과정에서 다른 과보다 몸이 힘들다”며 “진료과 특성 때문에 단기간에 해결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흉부외과는 수련과정이 다른 과보다 고되고 장시간 수술이 많은 만큼 근로시간도 준수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인턴수급이 불투명한 올해 모집률이 더욱 저조했다
고 분석했다. 환자 특성상 24시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산부인과도 낮은 경쟁률을 보였다. 산부인과의 경우 인턴 1년차가 비게 되면서 기존 전공의들의 당직 부담이 더욱 늘어날 거란 얘기가 나온다.
산부인과 또한 빅5 병원 가운데서도 미달이 속출했다. 신촌세브란스 병원은 11명 모집에 7명이 지원했고, 가톨릭중앙의료원도 14명 모집에 절반도 채 되지 않는 6명이 지원서를 넣었다.
수도권 대학병원 B교수는 “신생아나 환아를 보는 과는 의료진의 보다 많은 주의가 필요하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병원에 인력이 넉넉한 상황도 아니라 전공의들이 기피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동석 (직선제)대한산부인과는 “최근 선의의 의료 행위 중 발생한 사고로 산부인과 의사가 6개월 교도소에 구속이 된 사건은 모든 산부인과 의사에게 정신적 충격을 안겼다”고 토로했다.
이어 “저출산과 저수가, 빈번한 의료사고, 과도한 배상 판결로 산부인과 폐원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키도 했다.
대규모 인턴 공백에 대해 일선 병원들은 “내년이 더욱 걱정”이라고 우려한다.
2021년도 인턴 1년 차 인원이 예년 대비 20%도 채 안되는 상황에서 ‘인기과’ 진입을 원하는 전공의들이 ‘재수’나 ‘삼수’를 선택, 비인기과 인원이 대거 이탈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대표적인 비인기과로 꼽히는 비뇨의학과의 의사들 사이에선 최근 ‘이러다 한 해 동안 비뇨의학과 전문의가 한 명도 배출되지 않는 게 아니냐’는 우스갯 소리가 나돈다.
대한비뇨의학과의사회 소속 한 임원은 “기피과 레지던트나 인기과에 지원할 성적이 모자란 인턴들이 재지원을 위해 인턴을 다시 시작할 것이란 얘기는 이미 많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가뜩이나 부족한 비뇨의학과 전공의들을 다른 인기과에 빼앗기진 않을지 의사회 내부적으로도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재활의학과 전문의) 또한 “향후 특정 연차 전공의 인원이 급증하면 인기과로 가기 위해 재수, 삼수까지 하는 학생 수가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그동안에도 수련중인 과를 도중에 이탈하는 전공의들은 적지 않았다.
내년, 인기과 진입 위한 전공의 자발적 재수→비인기과 이탈 ‘걱정’
최근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서울대병원 등으로부터 제출 받은 ‘전공의 전공과별 사직자 현황’에 따르면 2019년 3월~2020년 2월 수련과정을 중도포기한 전공의는 247명이다. 2020년에도 3~10월 사이에만 162명의 전공의가 중도 포기했다.
특히 소아청소년과(17명→20명) 이비인후과(4명→6명), 비뇨의학과( 1명→2명)는 짧은 기간 동안 전년보다 포기자가 늘었다.
실제로 지난해 수련병원 55곳이 레지던트 1년차를 선발한 결과 정형외과(1.54:1), 피부과(1.52:1), 성형외과(1.41:1)와 같은 인기과는 모집인원보다 많은 인원이 지원한 반면, 핵의학과(0.08:1), 병리과(0.12:1), 소아청소년과(0.69:1), 비뇨의학과(0.71:1)와 같은 비인기과는 정원에 미달했다.
대표적인 인기과로 꼽히는 정형외과의 경우 전공의 3명 중 1명은 원하는 과를 전공하지 못한 것이다.
고배를 마신 전공의들 중 일부는 당직의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그동안 하지 못했던 여행, 공부를 하며 재지원을 준비한다.
심지어 원하는 과 전공을 위해 인턴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받는 전공의들도 있다. A,B,C로 나뉘는 인턴평가에서 하위 20%의 인턴은 C평가를 받게 된다.
일명 ‘C턴’이라 불리는 이들 중에선 평가를 다시 받기 위해 ‘눈 딱 감고’ 인턴과정을 다시 하는 경우도 있다.
기존에도 인기과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인원이 비정상적으로 줄어드는 내년 모집에 ‘재수 전공의’들이 대거 몰릴 수 있다는 것이 의료계의 얘기다.
일선 대형병원에서는 이미 전공의 지원을 둘러싼 혼란이 감지되고 있다.
서울 소재 D대학병원 교육수련부장은 “의사국시 파행에 따라 올해 인기과에 상향 지원하려는 전공의들이 적잖은 분위기"라며 “취약진료과는 올해도 내년도 많이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전공의들의 전략지원에 따른 눈치보기가 어느 때보다 치열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수도권 E대학병원 교수는 “인기과에서 경쟁했다가 탈락하는 사람이 없도록 내년 1월 인턴 지원자들끼리 논의한다는 얘기도 있다”며 “어떻게 되든 이번 인턴들은 마지막까지 관심의 대상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전공의들 사이에서도 내년 재수를 고려하는 인턴, 레지던트가 전년에 비해 많아질거란 얘기가 오가고 있다. 이들은 예견된 혼란을 막기 위해선 무엇보다 정부의 결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의사 집단휴진 사태에 참여했던 전공의 F씨는 “인턴공백 사태 중 재수나 삼수를 고려하는 전공의들이 있다는 소문이 들려오고 있는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의대생들의 상황을 이용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잘못됐다는게 개인적인 생각”이라면서도 “하지만 집단행동에 참여하지 않은 전공의들을 비난을 할 수 없듯이, 개인 선택에 대해 전공의 전체가 비판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직 국시 재응시 여부가 논의 중이며 일련의 우려도 현실화되지 않았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정부는 하루빨리 적절한 조치를 취해 수련체계 혼란을 방지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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