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백성주 기자] 최근 70대 중반의 노(老) 의사가 서울척병원 원장직을 맡았다. 분당서울대학교병원 개원부터 성장까지 일조하면서 ‘디스크 치료 권위자’로 꼽혀온 김현집 신경외과 교수다.
김 원장은 서울대 의과대학 졸업 후 하버드의대 MGH, 뉴욕대 등에서 연수했다. 서울대병원에 이어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뇌신경센터장, 척추센터장 등을 역임했으며, 대한척추신경외과학회장 등을 수행했다.
그는 현미경을 이용한 목디스크 수술에 있어 자타가 공인하는 ‘명의’다. 팬이 돼 수십년 간 진료를 받아온 환자와 그 가족도 있다. 의사들이 가족들의 척추 치료를 맡기고 싶어하는 의사로 꼽힌다.
의사가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미 이룬 김 원장이기에 적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환경의 도전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김현집 원장의 의사로서의 생활은 서울대 입학(66학번)부터 시작해 50년이 넘었다. 신경외과 모든 분야를 담당해오던 그는 1990년부터는 척추만 시작, 이 역시도 30여 년이 흘렀다.
"질 높은 컨퍼런스 통해 의학 전문지식·환자 대하는 철학 등 전달"
김 원장은 “미련이라기보다는 후학 양성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면서 “정년을 마치고도 분당서울대병원에서 7년을 더 있다가 작년 서울척병원으로 자리를 옮긴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원장의 후학 사랑은 분당서울대병원 시절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전임·전공의 교육 환경에 보탬이 되기 위해 후원금을 지속적으로 전달해 왔다. 전달된 기금은 신경외과 의국에 장서를 마련해 의학 연구와 교육을 위한 전문서적 및 E-book 구입 등에 사용됐다.
명예원장에 취임한 그가 가장 신경쓰는 업무는 매일 아침 열리는 컨퍼런스다. 환자 진료보다 경험을 얘기해 주는 것이 이곳 병원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이 덕분에 의료진의 컨퍼런스 참석률이 많이 높아졌다. 고난도 수술보다는 디스크, 퇴행성 질환이 많다보니 멘트는 많치 않다. 하지만 그의 경험이 녹아 있는 척추에 관한 내시경부터 비수술적 치료까지 모든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을 전달한다.
김현집 원장은 환자에 대한 철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수술은 팀 단위 구성으로 테크닉은 금방 습득하게 된다. 의사의 기본소양인 환자를 잘 보기 위해선 환자에 대한 철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척추 담당 의사 대부분은 엑스레이, MRI를 보고 수술여부를 결정한다. 때론 진찰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똑같은 환자는 없다. 환자에 대한 고민으로 환자마다 다른 사례에 맞는 치료를 찾아야 한다.
진단을 위해선 증상의 원인까지 알아야 한다. 충분한 진찰이 실수를 줄이는 최선의 방법이고 과잉진료도 막을 수 있다. “제대로 검사하고, 진단하고, 판단하라”는 이야기는 김 원장이 가장 많이 쓰는 단어다.
후배의사들에게 그는 “환자에게 좋은 치료방법은 환자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나이가 70~80이 된 환자의 경우 모든 부분을 치료해야 할 정도로 전신 건강상태가 나쁘다. 다 수술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라는 조언도 곁들였다.
최근 척추질환에서의 스테로이드 남용 경향에 대한 아쉬움을 전하기도 했다. 이는 환자를 위해 최선의 치료는 아니라는 얘기다.
김 원장은 “비수술 치료라고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과거 몇 개 병원만 담당하던 통증치료가 최근 10여 년전부터는 크게 늘어 신경외과, 재활의학과, 신경과 등 모든 곳에서 스테로이드를 처방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때문에 비수술적 치료에 대한 거부감이 들고 있다. 일부 사례에선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만성질환에선 사용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서울척병원이 진짜 전문병원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일조"
어떤 의사로 남고 싶은지를 묻자 김 원장은 “동화책에서 봤던 익은 감이 달린 나무가 있고, 탱자나무 울타리가 쳐진 집에 왕진 가방을 가지고 다니는 일을 꿈꿨다”고 소개했다.
그는 전문의가 주도하는 국내 의료시스템에서 일하다보니 꿈과는 멀어진 삶을 살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1년차 레지던트 당시 담당했던 중환자의 자녀가 40여 년이 흐른 뒤 찾아온 일이 있을 만큼 보람도 크다.
김 원장은 이곳 서울척병원이 모든 척추 분야를 담당할 수 있는 의료기관으로 발전하는데 일조하고 싶다는 포부를 전하기도 했다. 척추에 혹, 기형 등 큰 대학병원에서 하는 수술을 이곳에서도 담당하는 등 ‘진짜 전문병원’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질환은 흔하지 않는 만큼 인력 고용과 질 관리, 유지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척추전문을 표방하는 의료기관이 ‘디스크병원 수준’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인생의 2막 혹은 3막에서 ‘후진 양성’과 ‘서울척병원 발전’을 이뤄나갈 김현집 원장의 행보에 동료의사들, 후배들의 응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