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리의사였기 때문에 더 폭넓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번 달 초 사흘간 더케이호텔에서 추계학술대회를 개최한 대한병리학회 김한겸(고려대 구로병원 병리학과) 교수[사진]는 최근 데일리메디와의 인터뷰를 통해 병리의사로서의 자부심을 피력했다.
김한겸 교수는 우리나라 유일무이한 미라 전문가이며 극지의학연구회장을 역임하고, 의대 최초로 검도회를 설립했다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김 교수는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걷는 것은 항상 ‘안개 속에서 외나무다리를 걷는 것’ 같았다”라며 “미라나 극지의학을 연구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내가 병리의사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병리학은 근본적으로 사람에 대해 연구하고 공부하는 분야라 병리학 의사로서 계속해서 연구하고 탐구하는 자세를 익혔기 때문에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다른 분야에 계속 도전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김한겸 교수는 지난 대한병리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회원들을 대상으로 '병리의사로서 행복한 삶'에 대해 강의를 하기도 했다.
“병리과 수가, 원가대비 70% 불과한데 검체수가 인하로 설상가상"
그는 “대한병리학회는 70년간 운영되면서 꾸준히 성장해온 학회로 국내 학회 중에서도 가장 역사가 깊다”라며 “국내 병리학의 수준 역시 세계에서 뒤지지 않는다. 앞으로 지금보다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병리과의 근본적 문제인 수가와 인력확보가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병리과의 수가는 원가의 70%대에 불과한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7월 발표된 2차 상대가치 개편으로 검체 검사 수가가 인하된 바 있다.
김한겸 교수는 “병리학은 갈수록 중요성이 더해지는데 이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병리학은 ‘근거에 기반한 의료서비스’가 시작되는 분야다. 기초의학부터 임상까지 포괄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병리학은 환자의 병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역할에서 나아가 “앞으로는 병리과 판단 없이 처방이 불가능해질 정도로 영역이 넓어질 것”이라는 게 그의 시각이다.
김한겸 교수는 “원가의 70%에 해당하는 수가밖에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검사 수가가 인하됐다”며 “병리과가 이런 상황에 처하다보니 매년 지원하는 전공의들이 줄어들고 있다. 단순 수가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력 부족 문제까지 이어지고 있어 큰일”이라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병리학의 수준은 세계에서도 알아준다”며 “앞으로도 병리 분야에서 대한민국 지위를 높이기 위해서는 젊은 피가 수혈돼야 하고 이들에게 합리적인 보상이 제공되는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당장은 아니더라도 머지않은 미래 AI(인공지능) 병리학 시대 도래”
인공지능(AI)에 영향을 받게 될 병리학의 미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김한겸 교수는 “병리학에 AI가 도입되기 위해서는 인프라가 갖춰져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병리 분야 시스템이나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활발하지 않아 당장은 어려울 것”이라며 “하지만 이미 외국은 병리학에 AI의 도입이 미래의학이 아닌 현실의학이 됐다”고 꼬집었다.
그는 "외국에서 AI 도입으로 활발한 연구개발 등이 이뤄지면 우리나라 역시 그 물결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김 교수는 “국가적으로 AI에 대한 투자가 나중에라도 이뤄지지 않는다면 민간에서 아웃소싱으로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흐름이 생겨날 수 있다”며 “그런 상황이 오더라도 환자에 대해 최종 진단을 내리거나 처방을 결정하는 것은 그래도, 병리의사이지 않을까 한다”라고 말하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