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정숙경 기자] 첨단재생의료법과 의료기기법 등 '규제 완화'를 골자로 한 법안 모두 결국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졌지만 장기적으로 표류할 조짐도 엿보인다.
복지위는 13일 ‘의료기기 산업 육성 및 혁신의료기기 지원 관련 법률안’을 포함한 3가지 제정법안 공청회를 열었지만 또 다시 이렇다 할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내년 2월로 공을 넘겼다.
정부와 여야가 한 목소리를 내는 듯 해 법안 통과가 유력하다는 전망이 제기됐으나 각계에서 참석한 진술인들이 해당 법안을 놓고 첨예한 입장차를 보이며 여전히 갈 길이 먼 사안임을 재확인시켰다.
먼저 첨단재생의료 법안에 대한 학계와 환자단체 간 극명한 시각이 나타났다.
이 법안의 핵심은 재생의료 연구자 임상 활성화와 바이오의약품 신속 허가다.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맞춤형 심사, 우선 심사, 조건부 허가 등이 가능토록 하자는 것이다.
가톨릭의대 오일환 교수는 “안전성, 유효성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검증 인프라를 교란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탄력적 운영이 모색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오 교수는 “연구와 허가과정에서 일원화된 통합적 기준 제시를 통해 정책적 혼란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며 “첨단재생의료에 대한 심의위원회의 심사과정상 오류로 환자가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법적 책임 명시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조건부 허가제도가 남용돼 국가적 검증 체계에 혼선이 발생하거나 환자의 불이익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전제했다.
하지만 전진한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줄기세포치료, 유전자치료 등은 안전성과 효과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이므로 신중하게 접근할 것을 촉구했다.
환자의 의약품 접근권이 아니라 산업 육성을 통한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상업적 의료 규제 완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며 법 자체를 회의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전진한 국장은 “특히 ‘신속처리’ 대상 바이오의약품을 지정해 조건부 허가를 하자는 것인데 초기 임상시험만으로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의약품을 ‘시판 후 안전관리’ 등을 조건으로 품목 허가하자는 것은 신중하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이럴 거면 신의료기술 필요 있나" 의료기기산업 육성법도 불발
마찬가지로 의료기기산업 육성 및 혁신의료기기 지원 법안도 안전성과 유효성 논란에 발목이 잡혔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준현 대표는 “혁신의료기기라면 기존 기술에 비해 임상적 유효성, 즉 반드시 치료결과로 연계되고 실증돼야 한다”며 “그렇지 않은 경우는 모두 근거가 불충분한 조기기술로 환자 사용도 금지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김 대표는 “혁신의료기기라는 정의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혁신적이지 않은 의료기기를 개발 및 제조할 수 있도록 한다면 특정 기업이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계했다.
실제 건강보험 우대 등 혜택을 받아야 하는 근거가 충분한 의료기기 혹은 의료기술이 오히려 ‘혁신’이라는 모호한 기술로 상대적으로 환자 적용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의대 비뇨기과학교실 오승준 교수는 “환자에게 좋은 의료기기를 써서 질병을 치료하게 할 의무가 있는 의사로서 이번 의료기기 산업 육성법에 대해 찬성한다”며 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오 교수는 “의료기기 산업 육성 종합계획을 담고 있는 의료기기육성법이 제정된다면 복지부가 컨트롤타워를 담당할 수 있을 것이며 의료기기 개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체외진단 정확성 확보" vs "규제 완화 위험성 무시하면 안돼"
체외진단기기법을 두고서도 규제 완화로 인한 여러 위험성들이 제기, 법안 통과가 불투명해졌다.
박창원 체외진단기기협회 부회장은 “감염병 같은 경우, 잘못된 검사 결과가 위해(爲害)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체외진단 정확성과 신뢰성 확보를 보장하는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며 이 자리에서 호소했다.
체외진단사업은 국내 기업의 경우 해외 수출 비중이 큰 수출 주도형 성장 산업으로 적절한 지원을 받을 경우 신산업 성장, 일자리 창출, 기타 제약 및 바이오산업 등으로의 긍정적인 파급 효과가 크다는 분석이다.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이제훈 교수도 “환자 개인의 맞춤형 유전 검사, 검사 결과를 치료에 동시 이용하는 동반진단검사 등 기술 선도를 이끌어야만 국내 체외진단의료기기 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고 뒷받침했다.
사실 체외진단의료기기는 장비와 시약을 구분하지 못해 시약이라는 명칭 때문에 의료기기법 이전에는 오랫동안 약사법 관리를 받아오면서 적지 않은 한계가 노출됐다.
이 교수는 “법안에 있는 ‘임상검사실인증제’를 활용한다면 체외진단의료기기 검사의 오남용을 줄일 수 있고 표준화된 검사실에서 신뢰할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준현 대표는 "정부가 체외진단기기의 경우, 신의료기술평가를 거치지 않고 식약처 허가 즉시 시장에 출시하고 건강보험급여 등재가 가능토록 규제 완화를 단행하겠다는 것"이라고 재차 환기시켰다.
체외진단기기가 안전성 및 유효성 검증의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논리다.
김 대표는 "잠재적 위험성이 높은 등급을 포함, 모든 체외진단기에 대해 규제 완화를 단계적으로 시행하겠다는 것인가"라며 "환자와 건강보험 가입자가 고스란히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진 및 진단 정확성 미비로 만약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된다면 그 때는 돌이킬 수 없다"며 "산업 육성 측면보다는 허가 및 기준 강화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청회 종료와 함께 기동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3가지 법안 모두 공통적으로 우려되는 부분이 다시금 이 자리에서 확인됐다"며 "안전성과 유효성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밝혔다.
기 의원은 "환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생각하기보다 ‘규제 완화’, ‘혁신’이라는 미명 하에 관련 법이 제정돼선 안 된다"며 "실제 업계의 활황을 위한 것이 아니냐는 오해가 지금도 적지 않다"고 조심스런 입장을 피력했다.
보건복지위원회, 복지부, 식약처가 담당하고 있는 보건의료 영역의 특성상 필요하다면 규제는 반드시 강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기 의원은 "보건의료 분야에서 안전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며 "한 달 이상 시간이 있으니 오해로부터 비롯됐든, 아니면 다른 문제 소지가 있다면 합리적인 방향으로 보완될 수 있도록 소관부처가 준비해달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