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다'는 의사들 프레임과 투쟁, 그리고 여론
박근빈 기자
2019.03.30 05:45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박근빈 기자/수첩] 의료전문지에 근무하다 보니 팔은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가혹한 정부 정책으로 인해 피해를 받는 의사들이 많다’는 프레임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급여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이 그렇고, 큰 폭의 삭감 역시 그렇게 느껴진다.
 

물론 괴리감도 동시에 존재한다.


몇 년 전 일차의료 어려움을 눈물로 하소연하는 모(某) 의사 발표에 감정이 동요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토론회가 끝난 후 최고급 세단과 기사를 대동한 그의 모습은 왠지 발표장 상황과는 매칭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은 점점 쌓여서 익숙해졌다. 의료계의 힘든 상황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고 다소 역설적인 현상을 바라보는 감각은 둔감해졌다.


대한의사협회가 2기 의쟁투 구성을 완료했다. 이를 통해 대정부 투쟁을 예고한 것도 ‘수가 정상화’를 목표로 뒀고 매번 그래왔듯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얼마 전 충남도의사회 취재 현장에서 만난 양승조 충남도지사의 발언으로 인해 익숙해진 역설적 상황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당시 양승조 지사는 “의사는 아니지만 전문직종인 변호사 출신으로 현재 변호사 어려움에 대해 주장하고 싶은 상황이 많은데 사실 국민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의사의 어려움도 느끼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의사들이 느끼는 어려움과 대다수 국민들이 받아들이는 어려움의 간극이 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는 일련의 대정부 투쟁이 적정수가를 만드는 기폭제로 작용하지 못했던 한계이자 직역이기주의라는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로 작용한다. 반면 정부가 소위 포퓰리즘식 정책을 추진하는데 있어서는 든든한 방어기전이 된다. 


고소득 전문직이자 그 가치 자체가 숭고한 직업, 전교 1등이라면 의사가 돼야 한다는 공식 등 일련의 사회적 분위기는 엘리트 집단임을 증명하고 있는데, 극단적 투쟁으로 어려움을 호소한다고 해서 과연 실질적인 변화가 발생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재고(再考)가 필요하다.

작년 이맘 때 복지부는 ‘국민보건의료 실태조사’를 통해 국내 의사 연봉은 평균 1억5656만원, 월평균 임금 추정액은 1304만원으로 정규직 노동자보다 4.6배 많다고 밝힌 바 있다.
 

의사 월급은 지난 2011년부터 해마다 평균 5.3%씩 증가했고, 의료기관 규모가 작을수록 연봉이 높은 경향을 보였다는 내용이 담겼다. 


물론 의료계에서 반발은 거셌지만 조사된 통계수치가 변경되지는 않았다. 이러한 상황 속 투쟁 프레임은 오로지 정부를 향하고 있다. 건강보험제도 문제로 인해 저수가 체계가 형성됐기 때문에 이를 원상복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밑바닥에 깔려있다.


반면 정부는 국민건강권과 보장성 강화를 위해 제도가 설계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보다 많은 국민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전면 급여화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국민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건강보험 재정의 안정성이 요구된다는 대의명문이 있기에 저수가 체계를 극복하기 위한 투쟁은 대부분의 국민이 이해하기 어려운 태생적 한계를 지닌다.


바로 이 대목에서 박상문 충청남도의사회장은 의협의 투쟁방식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 바 있다.


충남도 정기 대의원총회에서 그는 “투쟁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좀 더 벌기 위해서 또는 가진 것을 덜 뺏기기 위해 싸우지 말고 왜곡된 진료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현 의협 집행부는 회원들에게 보여주는 것에 치중하는 듯 보인다”라고 밝혔다.


의협 집행부는 회원 설문조사를 통해 투쟁 의미와 대표성을 확보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지만 그간 투쟁 성과가 녹록지 않았던 이유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아마도 박상문 회장의 소신발언도 이런 맥락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하는 부분은 의사들의 대표단체인 의협은 투쟁조직이 아니라는 점이다. 존중받는 직업, 그 위상을 세우고 지켜줄 때 권위가 바로 설 수 있다. 특히 국민적 여론의 지지가 전제될 때 투쟁에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도 인정하는 저수가 체제 속에서 자신들의 생존권과 관련된 강력한 투쟁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이에 앞서 치열한 협상 전략을 통해 조율점 및 성과를 찾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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