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탈리스트, 이대론 유지 안돼'
허대석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2016.02.15 08:18 댓글쓰기

이제야 조금 낯익은 단어가 된 호스피탈리스트(Hospitallist). 의료계가 1차 시범사업이 마무리 수순을 밟으며 ‘한국판 호스피탈리스트’를 정립해 나가고 있는 가운데, 신분 불안정 등 벌써부터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그 해법을 허대석 서울대병원(혈액종양내과) 교수에게 물었다. 그는 우리나라에 호스피탈리스트를 처음으로 소개하고 도입을 주장했던 장본인이다. 그는 제도를 구축해가고 있는 의료계와 정부에 호스피탈리스트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를 요구했다. 지금의 형식으로는 호스피탈리스트가 유지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가 제안하는 ‘지속가능한 호스피탈리스트’는 어떤 모습일까. 데일리메디가 만나봤다.  

 

 

Q. 호스피탈리스트 도입을 선도적으로 주장했는데

 

진료는 크게 외래와 입원으로 나눠진다. 외래는 전문의가 담당하고 있지만 입원환자는 대부분의 전공의가 맡고 있다. 그 시간도 상당하다. 24시간으로 따져보면,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는 교수(전문의)가 있지만, 그 외 시간에는 2년차 레지던트가 가장 경험 있는 의사다. 그 시간동안 여러 가지 상황이 발생하는데 새벽 1시에 교수에게 전화할 수 있는 레지던트는 없다. 아침이 올 때까지 그냥 흘러간다. 선장은 배를 빠져나가고 학생들에게 대기할 것을 지시했던 세월호와 같다. 그 과정에서 의료사고, 각종 분쟁, 전공의 노동 착취 등 여러 문제가 파생된다. 입원 환자 진료 주체를 전문의로 향상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Q. 호스피탈리스트를 정의하자면

 

‘입원병동’을 전담하며 ‘통합적 의술’을 행하는 전문의다. 의료는 몇 가지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다. 내과, 외과, 응급의학과 등 진료과, 내과 내에서도 장기를 중심으로 호흡기내과, 순환기내과 등으로 구분될 수 있다. 소아과와 내과는 나이, 부인과는 성별이 기준이다. 그 중 미국 중심으로 진료장소가 중요한 기준으로 다뤄지고 있다. 그 공간만의 특수성이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응급실, 중환자실이 그것이다. 어디든 응급환자나 중환자가 발생할 수 있지만, 이 공간의 환경은 특수하다. 입원실 역시 그 중 하나다. 입원병동을 전담하는 전문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Q. 통합적 의술(醫術) 의미는 무엇인가

 

분절된 분과의 한계를 넘어서 환자를 통합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현재 한국의 의료는 분과 중심이다. 환자를 통합적으로 볼 수 없는 구조다. 한 의사가 심장, 호흡기 등 한 분야에 집중하고 다른 분야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1980년대부터 분과화가 시작됐고 지금은 초분과화됐다. 보고 싶은 부분에 집중한다는 측면에서 환자 치료라는 본질을 잃은 면이 있다. 분과를 초월해 환자를 통합적으로 볼 수 있는 의사가 호스피탈리스트다.

 

"동료들은 교수가 되는데, 왜 호스피탈리스트를 하겠나. 지원 동기 절실"

 

Q. 호스피탈리스트 지원자 찾기가 어렵다

 

당연하다. 대학병원은 진료, 교육, 연구를 위해 존재한다. 지금 대학병원에서 호스피탈리스트에 요구하는 역할은 오직 진료다. 그리고 유인책으로 높은 연봉을 제시한다. 돈 벌기 위해 진료를 한다면 굳이 대학병원 호스피탈리스트가 될 필요가 없다. 기본적으로 대학병원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돈이 아닌 자신의 미래를 위해 그곳에 존재한다. 동료들이 다들 교수를 향해 가는데, 왜 굳이 대학병원에서 신분보장도 안 되는, 존재감 없는 호스피탈리스트를 하겠나. 진료, 교육, 연구 역할을 주고 신분보장 역시 해줘야 한다.

 

Q.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면

 

미국의 경우 호스피탈리스트에게 진료, 교육, 연구 기능을 다 맡긴다. 입원 환자를 전담해 맡는 것은 물론 통합적 의술을 펼칠 수 있기 때문에 의대생 교육의 적임자다. 모든 권한을 갖는다. 지금 우리는 학생에게 각각을 가르치고 알아서 통합하라는 구조인데 이게 가르치는 사람은 편하겠지만 배우는 사람에게는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연구도 신약, 신의료기술 등은 분과전문의들이 강점을 보일 수 있지만 환자 안전, 의료서비스전달체계 등은 호스피탈리스트가 충분히 잘 할 수 있는 연구 주제다. 실제 미국에서는 이러한 시스템으로 구축돼 있다.

 

Q. 미국 호스피탈리스트는 어떤 자격을 갖추나

 

미국은 통합적 의술을 제공할 수 있는 ‘일반내과’를 만들었다. 초기 미국도 지금 우리나라처럼 각 과에서 호스피탈리스트를 뽑았다. 그런데 수술을 집도해야 할 외과의에게 입원 환자를 보라고 하니 오래 가지 않았다. 다른 과에서도 효율성 측면에서 유지가 되지 않았다. 호스피탈리스트를 위한 일반내과를 하나의 전공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달라야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분절된 진료과에 대한 반성의 움직임도 이 같은 흐름에 한몫했다. 그에 따라 통합적 의술을 제공할 수 있는 ‘일반내과’를 만든 것이다. 미국 일반내과 전문의는 입원환자를 전담하고 신체의 일부분이 아닌 통합적 진료를 제공한다. 호스피탈리스트가 바로 여기에서 길러진다. 달리 말하면, 호스피탈리스트를 하나의 과로 인정해 뿌리내리게 한 것이다.

 

Q. 한국에서도 호스피탈리스트가 미국처럼 전문과, 즉 일반내과로 육성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호스피탈리스트가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이 시작점이다. 혹여 원치 않더라도 이 같은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에서 호스피탈리스트가 대두된 데는 2003년 우리나라 전공의특별법과 같은 일명 '리비 시온법(Libby Zion law)' 제정이 큰 영향을 미쳤다. 1984년, 여대생 '리비 시온'이 고열로 야간에 응급실을 내원했다가 인턴이 낸 약물사고로 사망했다. 전공의 근무환경에 대한 공론화가 이뤄졌고 그 대안으로 호스피탈리스트가 활성화됐다. 우리나라 역시 전공의특별법과 선언적이긴 하지만 환자안전법 시행을 앞두고 있다. 환자안전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많아지고 그 대안으로 호스피탈리스트가 제시돼 그들을 키우기 위한 의료계 체계 역시 정비될 것이다.

 

Q. 사실 우리나라에서 호스피탈리스트는 부족한 인력 충원의 방책 성격이 강하다

 

각 과에서 호스피탈리스트 확보를 시도하고 있지만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응급의학과, 외과 등은 입원환자를 돌보는 과가 아니다. 예를 들어 외과의가 수술장에 가 입원병실을 담당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호스피탈리스트가 지원 해주는 것이 적합하다. 인력이 부족하다고 전임의의 연장선상에서 호스피탈리스트를 만하는 것은 잘못된 개념이다. 당직하는 전임의를 달라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호스피탈리스트는 입원병실에 상주하면서 환자 면담, 진료 계획 수립 등을 담당하며 환자 상태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의사다. 전문의가 입원병실 상주를 전제로 하는 합리적인 진료과는 내과와 소아과다. 근본 취지에 맞게 운영해야 한다.

 

Q. 호스피탈리스트 도입 과정이다. 미국은 어떤 과정을 거쳤나

 

미국 호스피탈리스트는 3단계로 발전했다. 첫 단계는 응급실에 온 내과계 환자를 담당하는 것이다. 응급의학과의 역할은 환자 내외과를 판단하고 치료가 필요한지 등을 판단하는 것이다. 환자를 진료하는 게 아니다. 두 번째는 입원 환자 진료다. 마지막이 호스피탈리스트와 외과와의 협진이다. 외과에서도 내과적 처치가 필요한 경우 호스피탈리스트가 나서는 것이다. 우리는 단계를 밟지 않고 마지막 단계를 향해 하고 있다. 호스피탈리스트 본질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Q. 수가 신설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조언을 하자면

 

입원 수가를 신설해야 한다. 지금은 입원 관련 수가가 없다. 입원료 중 40%는 의학관리료이다. 서울대병원 다인실 기준 2만원 정도다. 30%가 간호관리료다. 조금씩 행위별 수가가 있지만 대략 하루 1만5000원 정도로 입원 상황에서 발생하는 모든 책임을 묻고 있다. 왜 흉부외과, 외과, 내과까지 전공의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나. 따져보면 필수의료행위다. 당직을 요하고 응급 상황이 생기며 의료분쟁 위험 또한 높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데 보상이 안 되니까 외면받는다. 답은 제도에 있다. 입원하는 환자를 전문의가 본다는 특수성을 수가에서 반영해줘야 한다. 그래야 의료 질이 올라간다. 제도에서 지원해 줘야한다. 이에 따라 호스피탈리스트의 성패가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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