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한해진 기자] 의료기기 규제 혁신 흐름이 한창인 가운데 업계가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규제 개혁 이전에 첨단의료기기 개발 착수를 가능하게 하는 규정부터 제대로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의료기기 규제 혁신 발표 이후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각 부처에서 의료산업분야 규제 개선을 위한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및 로봇 등 최신 기술이 적용되는 의료기기의 경우 시장진입 우선 허용 후 재평가를 거치고 신의료기술평가는 포괄적인 네거티브 규제가 도입되는 등의 방안을 통해 기기 개발 및 시장 진입 속도를 높인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규제 완화 움직임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업체들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첨단 기술 관련 규정들을 명확하게 만드는 작업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의료 IT 업체 관계자는 “새로운 IT 기술을 의료용 소프트웨어에 도입하고 싶어도 관련 규정이 없으면 합법 여부를 알기 힘드니 자연히 시도를 하지 않게 된다”며 “필요한 규정조차 마련되지 않는 것은 규제 완화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전자의무기록(EMR)의 경우도 이미 몇 년 전부터 법적으로는 병원 외부로 전달하거나 저장하는 것이 합법화돼 있었지만 허용 조건이 구체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활성화되지 못한 것”이라며 “병원이나 기업 인증제 등을 마련해서 리스크가 없는 상태가 되면 의료데이터를 활용한 첨단장비 개발 시도가 자유롭게 이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복지부는 최근 의료기관 간 진료정보교류 등을 위해 EMR 인증기준 수립 연구를 진행했다. 시범 사업을 실시할 계획이지만 아직 병원에서 큰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의료기기업체 관계자도 “복지부는 항상 명확한 답변을 주지 않는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중국은 우리나라보다 규제가 더 엄격한데도 원격의료나 의료 인공지능 분야 등 첨단기술에 있어 발전 속도는 훨씬 빠르다”라며 “정부에서 특정 기술의 개발 및 적용을 어떤 조건 하에 허용할 것인지에 대해 명시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지금까지 시도되지 않았던 첨단 기술을 장비에 적용하거나, 병원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의료기기를 활용하고 싶을 때 신의료기술 등의 인허가를 통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당 서비스가 법에 어긋나지 않는지 명확히 해야 개발에 착수할 수 있는데 여기에 대해 답해주는 부처가 없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유관부처 간 용어 해석이 다른 것도 문제다. 의료데이터의 비식별화나 표준화의 유권 해석이 서로 다른 경우 한 부처에서 허용한 사업이 다른 곳에서는 불법이 될 수도 있는 것”이라며 “기업 입장에서는 명확한 법적 해석과 정의를 내려주는 것이 기존 규제를 완화하는 것만큼 효과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