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과제
2000.01.04 16:24 댓글쓰기
, 인천 경제특구와 의료시장 개방
경제특구에 밀려 무책임한 의료시장 개방 방조하지는 말아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국정 의제의 하나로 제시한 '동북아 중심국가' 추진 계획에 대해 재계는 동북아 중심국가 계획이 한국, 일본, 중국 등 극동아시아의 물류 중심축을 한반도로 옮길 수 있는 기회라는 시각으로 보면서도 정책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半信半疑' 하는 분위기다. 중국과 일본의 경제력을 고려한다면 한국에 경제 허브 기지를 구축한다고 해서 남들이 거저 한국을 찾아주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동북아 경제 중심국가 건설은 노무현 당선자가 경제분야에서 가장 역점을 두는 사업으로 대선공약으로 이미 제시되었고 인수위원회가 선정한 10대 국정 아젠다 中 경제분야 1순위 과제로 꼽힌다고 한다. 그 내용은 정부가 동북아ㆍ북방 특수를 적극 주도해 경제성장의 토대로 삼는다는 구상이지만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의 포괄적인 연장정책의 일환으로 보이는 면도 없지 않으며, 그 내용이 구체적인 기대효과를 정확히 계량하고 추진되는 것으로 보기에는 미흡하다. 즉, 현재로선 일종의 아이디어 단계로 보인다.

그럼에도 인천의 경제특구화는 빠른 걸음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中 특히 우리의 시선을 모으는 내용이 있다. 인천 경제특구 內에는 외국인 수요에 부응한다는 명목으로 외국인 병원, 학교, 관공서, 대형 식료품점 등을 포함하는 복합시설을 제공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한다. 즉, 국내에 외국병원의 설립이 허용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복지부도 국내 의료법에 영리법인인 의료기관의 설립을 금지하고 있으며, 경제특구라 할지라도 외국 의료기관을 설립하면 외국 의료기관 진입의 근거가 될 수 있으므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재경부측에 전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경제특구가 설치되는 경우 WTO 규정상 경제특구내에서는 특별법에 의거한 의료법인 설립을 막을 방법은 궁극적으로 없다고 보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즉, 미국 대형병원의 국내 진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영리법인인 이런 대형병원들이 국내에 인프라 구축을 위한 설비 투자를 하고 선진의료기술을 가져오기라도 한다면 그나마 잃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존스 홉킨스를 위시한 이들 병원들이 경제특구內의 외국인시장을 보고 한국에 진출할 리 만무하다. 이들은 한국의 경제특구를 한국의 돈많은 환자를 본국의 병원에 보내는 환자 송출사무소로 활용할 것이다. 이들이 공무원들의 기대처럼 2-3차 진료기관을 한국에 설치할 이유가 있을까? 벌써 내국인 진료 문제를 두고 경제특구에 진입하고자 하는 외국병원들과 인천市가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자기들 지역에서의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을 염두에 둔 지방자치단체가 短見으로 이를 허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쯤은 보건복지부의 단순한 반대의견이 아닌 의료계 차원에서의 대응책이 나와있어야 할 시점이다. 물론, 의협에서는 이에 대한 모든 조사와 대응책 마련을 해두었을 것이다. 외국의 사례, WTO 규정, 국내 대기업의 대응책 등 경제특구 설치로 인해 받을 영향에 대한 전문가들의 컨설팅은 다 받아놓았을 것이고 국내 의료계가 타격을 최소화할 대비책으로서 구체적인 제어장치도 마련해 놓았을 것으로 믿는다.

그럴 리 없지만 만일 그렇지가 않다면 이는 엄청난 직무유기에 해당된다. 대기업에 비유한다면 국내에 동종의 외국업체가 진출한다고 할 때 그에 대한 준비를 소홀히 한 기업의 CEO가 있다면 그는 배임이나 직무유기로 옷을 벗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이 件에 대해서는 약사회나 치과의사회나 의협이나 같은 이해관계를 갖게 된다고 해서 발빠른 약사회가 해결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설마 아니리라 믿는다.

의협이 알아서 하겠지만 인천 경제특구 문제에 있어 미국 대형병원의 진출을 원론적으로 반대만 하는 것은 어리석은 방법일 것이다. 또다시 국민들에게 의사들이 밥그릇 지키기에만 혈안이 되었다는 그릇된 오해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얘기이다.

전략을 결정할 때 가장 먼저 다듬어야 할 것은 사안을 보는 시각이다. 그리고 그 시각을 결정하기 위한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정보가 수집되면 분석을 해야 하는 것은 기본적인 자세가 된다. 의료계가 경제특구를 보는 시각을 어떻게 정하는가에 따라서 의약분업 시행에서 나타난 초기 혼란과 같은 미숙함을 피해갈 것이다.

미국 초대형 병원의 경제특구內 입주는 인천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벌써 제주도에서도 유치 경쟁에 나섰다고 한다. 앞으로 경제특구 유치가 본격화 되면 각 지자체는 발벗고 나서서 유치 경쟁을 하게 될 것이다. 인천 경제특구 문제는 향후 경제특구가 지정되는 곳의 의사회에서도 참고할 수 있는 모델케이스가 되어야 하므로 중앙의협의 지원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경제특구를 의사들의 시각으로만 보고 무조건 반대만 하게 되면 자칫 쇄국주의자로 몰릴 수 있고 모든 책임을 의사들이 다시 한 번 뒤집어 쓸 수가 있다. 가뜩이나 의약분업 문제로 국민들에게 욕을 먹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나 국민들에게 경제특구 자체를 의사들이 반대한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적을 너무 많이 만들게 된다.

의료계에서 우선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살펴보면

▷ 현재 경제특구內 진료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마지막 단계를, 복지부장관의 허가를 득한자에서, 의사협회의 추천과 복지부 장관으로부터 허락을 득한자로 바꾸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완전히 막기 어렵다면 초기부터 조절가능한 코를 걸어두어야 한다.

외국 병원에서 경영권 침해가 아니냐고 항의하면, 우리측은 외국과의 통상교섭에서 거론되고 있는 '국내관행인정'을 들어야 한다. 예를 들면 특구내 병원이 특구내 거주민에 제한된 진료만을 행한다면 국내의료계와 정부에서 간섭할 이유가 없지만, 특구內 병원에 특구外의 국민이 진료를 받기 위해 들어가는 것은 내국인을 상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조절을 해야 하고 의료를 담당하는 민간단체인 의사협회에서 조절을 해줄 수밖에 없다는 논리이다. 특구외 주민에게 문제가 될 수 있는 사안은 특구외인 국내에서 진료를 하고 있는 의사들과도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 또한 장기적으로는 외국인 의사들의 국내 진료를 어렵게 만들어야 한다. 미국에서 외국인이 의사를 하기 위해서는 3차에 걸친 USMLE 시험을 거쳐야 한다. 가장 어렵다는 3차시험은 문화적 장벽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마지막 테스트를 거치더라도 제한된 지역에서 진료를 할 수 있게 한다. 또 트레이닝을 받는 과정을 거치도록 한다. 이 과정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도록 국시원과 의사협회에서 법규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경제특구內 외국계 병원설립은 국내자본의 해외 유출이란 우울한 예측을 하게 한다. 글로벌화 속에서 의료계의 생존을 위해서는 또 국제경쟁력 강화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현재의 의료계 상황이 과연 이 험한 파도를 헤쳐 나갈 정도인지 걱정스러울 뿐이다.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자체의 구조적 조정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영화계에서도 일어났던 일이지만 스크린 쿼터를 사용하여 시간을 번 후 자체경쟁력을 확보한 영화계는 결국 국내외적인 성공의 길로 가고 있다.

위기는 기회로 바꿀 수 있다. 다만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의료계의 조타실에 있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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