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언제 노벨생리의학상 수상할까
115년 노벨상 역사 불구 '0'…미국 99 ·인도 7·일본 3·중국 1
2015.12.29 18:30 댓글쓰기

[기획 1]매년 10월이면 세계 이목은 지구촌 최고 명예의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으로 쏠린다.


개인의 영예를 넘어 국격(國格)이 거론될 정도의 절대적 권위를 자랑하는 만큼 해당 학계는 물론 전세계인의 지대한 관심 속에 수상자 명단이 공개된다.


희세(稀世)의 거부 알프레드 버나드 노벨(Alfred Bernhard Nobel)은 1895년 11월 27일 뇌출혈로 생을 마감하며 역사적인 유언장을 남겼다.


‘인류에 공헌한 사람들에게 유산을 나눠주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그가 남긴 유산은 3100만 크로나로,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10억 크로나에 달한다. 한화로는 약 1조5600억원이다.


노벨의 유산을 기부받은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는 노벨재단을 설립했고, 1901년부터 노벨상을 수여하기 시작했다. 상금은 노벨이 기탁한 기금의 이자로 충당하는 방식을 취했다.


노벨상은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문학, 평화 등 5개 부문으로 나뉘어 해마다 수상자를 선정하고 있다. 1969년 경제학상이 추가됐지만 노벨의 유언과는 무관한 분야였다.

 

노벨상 백미(白眉) ‘생리의학상’


각 부문마다 최고의 명예와 가치를 인정받지만 ‘인류복지 공헌’이라는 궁극의 목적을 감안할 때 노벨상의 백미는 단연 ‘인류건강’과 직결된 생리의학상이 꼽힌다.


노벨생리의학상은 스톡홀름 시내에 있는 카롤린스카(Karolinska) 의과대학 내의 노벨위원회에서 관장한다. 흔히 ‘카롤린스카 연구소’로도 알려져 있다.


노벨재단 강령에 따르면 생리의학상 추천서 제출 자격자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천거 단계부터 깐깐한 기준이 적용된다는 얘기다.


실제 수상자를 추천할 수 있는 사람은 카롤린스카 의과대학 교수 50명으로 구성된 노벨협회 회원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협회에서 투표를 통해 수상자를 결정하는 만큼 영향력은 막강하다.


△스웨덴왕립과학한림원 회원과 명예회원 중 의학 전공자 △노벨의학상 수상자 △노벨위원회 위원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현직 의과대학 교수 등으로 제한된다.


이러한 기준을 두고 일각에서는 수상자 미배출국이나 카롤린스카 의대 교수들과 일면식이 없는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과학자들은 추천 단계부터 불리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기도 한다.


노벨협회는 매년 10월 초 50명의 교수 투표에 의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를 결정한다. 심사기간 중 후보자 이름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


또 심사 중에 있었던 일은 비밀이며 50년 이상 경과된 것에 한해 과학사의 전문가 같이 한정된 사람들에게만 그 정보가 공개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절대강자 ‘미국’-신흥강자 ‘일본’


노벨생리의학상은 1901년 이후 지금까지 115년이 흐르는 동안 210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수상자의 국적을 살펴보면 미국이 99명으로 독보적인 강세를 유지해 왔다. 이어 영국이 29명, 독일 16명, 프랑스 11명, 스웨덴 8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스위스·호주(6명), 덴마크(5명), 오스트리아(4명), 네덜란드·이탈리아·벨기에(각 3명) 등도 간간히 노벨생리의학상 수상 소식을 알렸다.


물론 노벨상 수상자 중 귀화·이민·이중국적 등으로 국적 통계는 간단하지 않지만 생리의학상 분야에서 만큼은 절대적 강국인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섭렵해 왔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실제 역대 수상자를 배출한 국가 22개국 중 유럽이 16개국으로 압도적이다. 비율로도 72.72%를 차지한다. 독일, 영국, 덴마크, 러시아,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스웨덴, 벨기에, 네덜란드, 헝가리, 포르투칼, 노르웨이, 아일랜드 등 웬만한 유럽 국가들 모두 수상자를 배출했다.


노벨상 제정 초기 생리의학상은 늘 이들 유럽 국가의 몫이었다. 하지만 1930년 미국의 카를 란트슈타이너가 ‘인체 혈액 분류’를 통해 첫 수상한 이후 생리의학상 판도가 달라졌다.


미국의 기초의학 연구 성과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서 미국 의학자들의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이 잇따랐고, 단기간에 이 분야의 절대강국으로 등극했다.


캐나다,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남미나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간헐적으로 수상자가 배출되기는 했지만 미국의 강세는 80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최근 노벨상에서 주목할 부분은 바로 일본의 약진이다. 1949년 유카와 히데키가 물리학상을 받은 이후 지금까지 23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실제 역대 수상자 23명의 구성을 보면 물리학상 10명, 화학상 7명, 생리의학상 3명, 문학상, 2명, 평화상 1명으로, 과학분야의 수상 비율이 단연 높다.


특히 21세기, 그러니까 최근 15년 동안 노벨상을 받은 일본 의과학자는 16명에 달한다. 이 기간만 따지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성적이다.


생리의학상 부분에서는 1987년 도네가와 스스무 교수가 ‘면역 항체의 다양성 해명’으로 첫 수상을 한데 이어 2012년에는 유도만능줄기세포 연구를 진행한 야마나카 신야 교수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또한 올해는 미생물을 통해 기생충 번식을 억제하는 약제 원료들을 발견한 기타사토대학교 오무라 사토시 교수가 수상자에 이름을 올리며 역대 3번째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될성부른 일본…되고싶은 한국


일본의 도드라진 약진은 아시아 국가로는 빨리 근대화를 시도하며 서양과학을 수용했고, 1995년 과학기술기본법을 제정해 연구의 저변을 확대한 결과다.


즉 19세기 말 시작된 현대 기초과학의 출발에 직접 동참할 수 있었던 독특한 역사적 경험이 일본을 노벨상 신흥강국으로 만들어준 원동력이 되고 있다.


실제 일본 내 100년의 역사를 보유한 기초과학 연구소가 즐비하다. 여기에 지속적인 투자와 인재 육성 정책 등이 어우러지면서 잇단 노벨상 수상자 배출이라는 쾌거를 올리고 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일본 노벨상 수상자들의 행적이다. 과거 일본 노벨상 수상자는 도쿄대와 같은 유명 대학 출신으로,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일본 현지 대학을 졸업하고 그곳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다음 일본을 대표하는 기초과학 연구소에서 연구 경력을 쌓았다. 이게 일본 노벨상 수상자의 표준 모델이었다.


하지만 일본 노벨상 수상자 모습은 10여년 전부터 크게 변했다. 지방대학을 졸업해도 대학원은 도쿄대에서 밟는게 보통이었으나 요즘은 달라졌다.


지방대학에서 학사와 석사, 박사를 내리 밟는 수상자가 늘었다. 지방대학을 나와 지방 중소기업에서 연구 경력을 쌓다가 노벨상을 받는 사람이 나오고 있다.


2000년 이후 쏟아진 수상자 16명은 일본에서 노벨상으로 가는 경로가 달라졌음을 확연히 보여준다.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학 사이의 연구 수준과 여건 차이가 눈에 띄게 좁혀졌다. 연구 마당이 그만큼 넓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노벨상에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은 한국 연구자 대부분이 해외대학 박사 출신인 것과 사뭇 대조적이다. 수도권과 지방 간 연구 환경 차이가 확연한 것 역시 일본과 차이점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한국의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은 세계 1위다. 총액 기준에서는 아직 일본의 1/3이지만 경제 규모와 인구 차이를 감안하면 적잖은 수치다.


하지만 노벨상 수상을 위한 연구 목표 설정과 연구비 배분은 여전히 미숙한 상황이다.


한 원로 의학자는 “동전을 넣으면 커피가 떨어지는 자판기처럼 노벨상은 연구비를 쏟아붓는다고 저절로 나오지 않는다”며 “목표와 배분이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부분의 노벨상이 20~30년 전의 연구실적으로 수상 여부가 결정된다”며 “거꾸로 말하면 20~30년 후에도 참신하고 중요하게 여겨질 연구 테마를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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