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배희준 교수[사진], 고대구로병원 신경과 이건주 교수팀은 급성 뇌경색 발병 후 심박수가 높은 환자에게 '베타차단제'를 꾸준히 투여할 경우 장기 사망률이 유의미하게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고 1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전국 20개 병원이 참여한 다기관 뇌졸중 코호트(CRCS-K-NIH)와 국민건강보험공단 데이터를 연계해 시행됐으며, 지난 2011년부터 2018년까지 등록된 5000여 명의 환자를 최대 10년간 추적 관찰한 대규모 분석 프로젝트다.
급성 뇌경색은 발병 당시 치료만큼이나 장기적인 예후 관리가 중요한데, 특히 환자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측정되는 활력징후 중 하나인 심박수는 예후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다.
일반적으로 성인은 안정적일 때 심박수가 분당 60~100회지만, 일부 뇌경색 환자들은 발병 초기 분당 100회 이상으로 심장이 빠르게 뛰는 고(高)심박수 상태를 보인다.
심장박동이 비정상적으로 빠른 것은 뇌 손상으로 인한 자율신경계 불균형, 전신 염증 또는 심방세동, 관상동맥질환 등 숨겨진 심장질환 존재를 시사하며, 고심박수 뇌경색 환자는 심박수가 정상인 환자보다 사망률이 최대 2배가량 높다.
문제는 고심박수 뇌경색 환자에 대한 명확한 치료전략이 없다는 점이다. 심박수를 낮추는 기전으로 고혈압, 심부전 등의 치료에 사용되는 베타차단제 활용 가능성이 제시됐으나 뇌졸중 환자에 대한 장기연구가 부족해 표준적으로 사용되지는 않고 있다.
이에 연구팀은 심박수가 높은 뇌경색 환자를 대상으로 베타차단제를 복용할 시 장기 생존율이 얼마나 개선되는지 분석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연구팀은 뇌경색 발병 후 3~7일 사이 최대 심박수가 분당 100회 이상이었던 환자 5000여 명을 대상으로, 베타차단제 복용 여부에 따라 지속 복용군, 중단군, 비복용군으로 분류하고 최대 10년 장기 예후를 분석했다.
그 결과, 베타차단제를 지속적으로 복용한 고심박수 뇌경색 환자는 비복용군보다 사망률이 유의미하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발병 후 1년 시점에서는 복용 그룹 사망률이 약 18% 낮다가 30개월 시점에는 차이가 31% 까지 확대됐는데, 이런 사망률 감소 효과는 ▲75세 미만 ▲심방세동 및 관상동맥질환 환자 ▲평균 심박수가 높은 환자에서 두드러졌다.
또 베타차단제를 복용하다가 발병 1개월 내 중단한 환자는 전혀 복용하지 않았던 환자보다 사망 위험이 17% 더 높았다. 이는 발병 이전부터 베타차단제를 복용하고 있었다면 뇌경색이 나타나더라도 임의로 복용을 중단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현재 국내외 진료표준지침에서 뇌경색 환자에 대한 베타차단제 사용이 제한적인 가운데, 이번 연구는 심박수가 높은 고위험 환자에게는 생존율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하며 새로운 표준 치료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배희준 교수는 "이번 연구는 뇌경색 환자 중에서도 고심박수라는 명확한 고위험군에 대한 생존율을 높일 수 있는 치료 전략을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며 "향후 무작위대조연구(RCT)를 통해 뇌졸중 후 베타차단제 효과를 추가적으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연구 결과는 '미국심장협회지' 최신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