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하 의료중재원)이 지난 8일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대한의사협회가 조정위원 추천을 공식 거부한 가운데 의료중재원은 본격적인 조정·중재 업무에 들어갔다. 의료중재원은 8일 이후 발생한 내·외국인 의료사고를 대상으로 한다. 의료분쟁 조정·중재는 피신청인이 참여의사를 밝혀야 업무를 개시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사실상 피신청인인 의료기관 참여가 필수적이다. 복지부는 의료중재원 홍보에 주력하면서도 "의료계가 적극 참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추호경 의료중재원장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의료계와 대화할 뜻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의협 등 의료계 반응은 여전히 차갑다. 의료중재원에 관한 복지부와 의료계의 쟁점사항과 향후 운영 방향 등을 짚어봤다.
◆첨예한 불가항력 의료사고 분담금 = 의협이 의료중재원 참여를 거부한 대표적 이유는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산부인과가 30% 비용을 부담하기 때문이다.
의사가 충분한 주의의무를 다했음에도 통계적으로 발생하는 뇌성마비 등의 불가항력 의료사고를 의료계가 책임질 이유가 없다는 게 핵심 주장이다.
분만이 있는 산부인과가 주요 대상이다.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도는 1년 뒤인 오는 2013년 4월부터 시행한다.
산부인과는 "저출산·고령화로 경영 환경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불가항력 의료사고마저 책임지면 분만 의료기관 수는 더욱 감소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비용적 부담보다 정서적인 거부감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울고 싶은 놈 뺨 때린 격'이라는 것이다. 산부인과는 조건없는 정부의 100% 부담을 요구 중이다.
이 문제는 표면적으로 산부인과 문제에 국한된 듯 보이지만 외과와 흉부외과 등 다른 진료과도 관심이 많다.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장 당선자 또한 의료중재원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어 해법 찾기가 요원한 상황이다.
의료계 반발에 복지부가 제시한 대안은 산부인과 진료환경 개선을 위한 발전협의체 구성·운영이다. 오는 9월까지 의료계와 개선방안을 논의한 후 적정한 시기에 내용을 공개하겠다고도 했다.
발전협의체에서는 수가 인상 등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산부인과는 국정감사 지적으로 흉부외과와 외과가 각각 100%와 30%라는 파격적인 수가 인상이 이뤄졌을 때 자신들이 소외된 것에 불만을 나타냈다. 다만 명분을 아펫운 산부인과가 협의체 논의에 적극적일지 미지수다.
정부는 또 불가항력 의료사고 분담금을 펀드 형태로 조성하며 실제 산부인과 의료기관이 부담하는 금액은 미미하다고 강조한다. 추호경 의료중재원장은 최근 전문지 기자간담회에서 "산부인과 개설자가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해 부담하는 비용은 분만 1건당 2862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대다수 분만 의료기관이 다양한 사보험으로 의료사고를 대비한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저렴한 보험을 든다고 생각하면 된다"라고도 했다.
추 원장은 "의료 사회주의 국가 외에 정부가 100% 불가항력 의료사고를 책임지는 사례를 찾기 어렵다"는 말했다. 분만 의료기관에 실익이 큰 데 굳이 반대하는 것은 직종 이기주의로 비칠 것이란 생각도 내비쳤다.
복지부는 제도 시행일로부터 3년 후인 2016년 4월 분담비율 적정성 등을 추가로 검토할 계획이다. 일단 제도를 시행한 후 대안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의협 불참에 인력 문제 비상…政 "문제없다" = 의료중재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은 인력 문제로 표출됐다. 의협은 정부에 항의 표시로 비상임위원 추천을 거부했다.
인력 문제는 의협이 명망 있는 비상임위원을 추천하지 않는다는 것과 감정부와 조정부의 의사 인력 비율을 놓고 정부와 의료계 견해 차이가 크다는 점이다.
추호경 원장은 현행 인력으로 의료중재원 업무에 아무런 지장이 없지만, 장기적인 측면에서 의료계 협조가 절실하다고 밝혔다. 앞으로 조정·중재 업무가 증가하면 의협이 추천하는 인사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현재 의료중재원 비상임위원 중 내과 인력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에 따르면 최근까지 의료중재원에 지원한 보건의료인은 많았지만, 자격 미달로 대다수를 탈락시켰다. 의료중재원이 사실상 준사법기관 역할을 하기 때문에 비상임위원 경력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환자와 의료기관 모두 중재 결정에 승복하려면 명망 있는 비상임위원이 많을수록 좋다. 복지부와 의료중재원은 의협이 주요 의과대학 교수급 비상임위원을 추천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의협 차기 집행부가 의료분쟁조정법을 악법으로 규정하고 있어 의견을 모으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대해 김원종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 "의료중재원 인력 구성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지금 인력으로도 충분하다"며 "실력 있는 분들이 많이 참여해주면 좋지만, 인력 구성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감정부와 조정부 구성에 대한 시각 차이도 좁혀지지 않는다. 의료계는 이들 부서가 의학적 결정을 내린다는 점에서 의사 위원이 더 많이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행 감정부 위원은 의사·치과의사·한의사 2명과 법조인 2명(검사 1명), 소지바권익위원 1명이다. 법원 격인 조정부는 법조인 2명(판사 1명)과 보건의료인 1명, 소비자권익위원 1명, 대학교수 1명으로 구성했다.
이에 대해 추호경 원장은 "감정부와 조정부에 의료인이 많으면 오히려 조정·중재 결과에 신뢰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논리로 반박했다. 현행 위원 구성이 적절하다는 의사를 재확인했다.
그는 "과반이 의료계 인사로 구성돼야 한다고 말하지만, 설득력이 없다"면서 "의료계 위원이 전문성을 갖고 합당한 주장을 펴면 충분히 의견이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말했다.
◆제도 시행 1년이 분수령 = 추호경 원장은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중재원을 이용하는 것이 비용과 시간을 줄인다는 점에서 서서히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의료사고를 법원으로 가져가면 환자 의료기관 개설자 모두 손해가 크기 때문에 의료중재원이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의료중재원이 공신력을 확보하기까지 1년이 걸릴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의료중재원에서 나온 결과가 법원 판결과 크게 다르지 않고, 공신력을 확보하면 자연스럽게 법원보다 조정을 더 선호할 것이란 전망도 했다.
의료중재원이 90일 이내(최대 120일)에 결과를 도출하는 점도 장점이라고 주장한다. 의료사고 분쟁해결에 수년이 걸리고 변호 비용도 부담이 크다고 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성형외과는 분쟁해결에 평균 6.3년이 소요된다. 의료사고 분쟁해결에 지출되는 비용은 연간 900억원 이상으로 추정했다.
의료중재원을 이용하려면 피신청인의 참여의사가 필수적이지만, 실익 측면에서 환자와 의료기관이 어떠한 공감대를 형성하느냐가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