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재정이 사상 최대 흑자를 냈지만 주무기관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이를 은폐하고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더욱이 건강보험 재정 추이의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수가협상 시기와 맞물리면서 의도적으로 두둑해진 곳간을 숨기려는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이상 행보는 수 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건강보험 재정현황을 매월 단위로 공시하던 건보공단은 지난 5월부터 갑작스레 공시를 중단했다.
이후 4개월 동안 건강보험 재정현황 공시는 이뤄지지 않았고, 최근에서야 공시가 재개됐다. 하지만 형식과 방식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5, 6, 7, 8월 건강보험 재정현황은 아예 생략됐고 2/4분기 전체 자료가 올라왔다.[사진] 지난 2003년 이후 10여 년에 걸쳐 진행해온 월 단위 공시를 분기 단위로 바꾼 것이다.
건보공단은 기존 월 단위 방식이 혼란을 더욱 가중시켜 분기별 공시로 바꿨다고 해명했다.
결산통계와 현금흐름은 엄연히 다른 만큼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데 일각에서 이러한 부분을 문제삼아 논란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분기별 공시로 전환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10년이 넘게 진행해 온 건강보험 재정현황 공시 방식을 바꾸면서 건보공단은 사전과 사후 어떠한 고지도 하지 않았다.
이러한 건보공단의 이상 행보는 건강보험 재정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건강보험 재정은 올해 들어 뚜렷한 상승 곡선을 그렸다. 지난 1월 1조7370억이던 건강보험 누적적립금은 2월 1조9498억으로 늘었고, 3월에는 사상 첫 2조원 대를 돌파했다.
그러나 이후 건강보험 누적적립금 현황은 종적을 감췄다. 기존 공시 내용과 최근 발표된 2/4분기 자료를 토대로 추계한 누적적립금은 4조1149억원.
현재 건보공단이 맡고 있는 건강보험 재정 곳간에 무려 4조원이 넘는 돈이 쌓여 있다는 얘기다.
건강보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적립금으로 파악됐지만 건보공단은 이를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2/4분기 재정현황 자료에도 누적적립금은 찾을 수 없었다.
건강보험 재정 상황이 악화됐을 때 한 달에도 몇 차례씩 재정현황 자료를 내놓으며 위기의식을 고취시키던 것과 상이한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건보공단의 이러한 이상 행보가 다분히 조만간 시작되는 수가협상을 염두한 것이라는 시각이 팽배하다.
의료계 고위 관계자는 “수가협상을 앞두고 건보공단 스스로 재정 상황이 두둑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며 “다분히 의도적인 은폐”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고위 관계자 역시 “건강보험 재정 곳간에 4조원이 넘는 돈을 두고도 이번 수가협상에서 건보공단이 어떤 핑계를 들고 나올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고 말했다.
건보공단은 은폐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단순한 공시 방법 변경일 뿐 재정현황을 감추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누적적립금이 늘어난 것은 상반기 국고보조금과 건보료 정산 등의 영향이 크다”며 “일각에서 제기되는 은폐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기존 공시로 인해 많은 민원과 악용 사례가 발생했다”며 “곤혹스러운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분기별 공시를 추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새롭게 도입한 분기별 공시에 누적적립금을 미기입한 것에 대해서는 “넓은 의미에서 이해해 달라”며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