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의료는 생명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더욱 까다로운 조건이 붙어있기 마련이다. 의료기기 산업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있듯이 그동안 우리나라는 너무 심한 규제를 해 온 경향이 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 이후 규제 완화를 외쳐온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비롯됐다.
올해 상반기 의료기기 산업의 경우 의미 있는 제도적 변화들이 하나 둘씩 예고되면서 들뜬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허가·심사 일원화 시스템을 위한 개정안을 마련했다. 또한 위험도에 따른 등급별 임상시험평가를 위한 업계 의견 수렴이 조금씩 진행되고 있다.
의료기기 제조 및 품질기준(GMP)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한 개정안도 발표됐다. 해당 개정안 역시 등급별 평가기준을 통해 위험도가 낮은 제품은 심사통과가 어렵지 않도록 조치됐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의료기기 업계는 온통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만 가득했다. 산업 육성을 하겠다고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친(親)기업적 정책이 나온 사례는 전무하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A업체 관계자는 “수출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제품의 빠른 상용화는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며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허가·심사에 소요되는 시간적 낭비가 심했다”고 지적했다.
B업체 관계자는 “아무리 제도 개선 관련 의견서를 제출해도 반영되는 경우가 드물었다”며 “최근 식약처가 민원설명회 등을 자주 열고, 업계의 의견 수렴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점은 매우 긍정적이다”고 전했다.
현재 식약처는 규제 개혁과 관련해 분명한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안전성·유효성을 근본으로 한 기본적인 법규는 유지하되, 허가·심사 절차 등과 관련된 제도적 운영에 변화를 주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식약처 관계자는 “규제 개혁이라고 해도 모든 절차를 완화해서는 국민의 건강권이 크게 위협될 수 있다”며 “업계의 의견 중 합리적인 부분은 적극 반영하겠다. 그러나 맹목적으로 평가기준을 낮춰 생산, 유통, 판매 등에 부작용이 발생하는 사례는 원천봉쇄할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아직 개선이 필요한 부분도 남아있다. ‘신의료기술평가제’가 대표적인 예이다. 식약처로부터 인허가를 완료했다 하더라도 신의료기술 항목으로 분류되면 또 다시 평가를 받아야 한다. 큰 틀에서 보자면 엄연히 이중 규제다.
그 밖에 절대적 표현을 금지시킨 의료기기 광고법도 업계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전문가인 의료진을 상대로 하는 의료기기와 일반 대중 관련 가정용 의료기기와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C업체 관계자는 “우리도 모든 기준을 완화해 줄 것을 요구하진 않는다”라며 “다만, 무엇이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제도인지 조금 더 고민해주길 바란다. 특히 영세한 중소기업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 의료기기 산업 여건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반면에 업계도 정부 주최 행사 및 제도 변화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각종 개정안이 식약처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고지됨에도 불구하고, 정보전달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상당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업계의 의견 수렴을 위해 꾸준히 민원설명회를 개최하고 있다”며 “정부는 의료기기 산업에 대한 육성 의지를 수차례 밝혀왔다. 앞으로 제도 개선에 도움이 되는 의견이 있으면 적극 반영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