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졌을 때 소위 '딜레마에 빠졌다'고 얘기한다. 대한의사협회 노환규 전 회장의 불신임으로 새롭게 등장한 신임 추무진號가 그야말로 난감한 상황에 놓여있다.
잠정 중단됐던 정부와 의료계의 원격모니터링 시범사업을 포함한 36개 의정합의 사항 아젠다에 대한 논의가 전격 재개됐다. 보건복지부 문형표 장관과 대한의사협회 추무진 회장이 지난 14일 회동을 가진데 이어 의정합의 이행추진단 회의도 16일 속개된 것이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복지부는 결국 의협에 24일까지 원격모니터링 시범사업을 수락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여부를 확정해라며 사실상 최후통첩을 했다.
여기에 복지부는 원격의료의 안전성·유효성 검증을 위한 공동 시범사업과 관련, 의협과의 논의가 중단된 상태인 만큼 원격모니터링을 중심으로 독자적으로 일단 시범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힌 상태다.
그런 가운데 오늘(21일) 전국의사총연합, 대한의원협회, 대한평의사회 등에 이어 전국 시도의사회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추무진 회장이 긴급대표자 회의에서 원격진료 설명회를 예정대로 진행할 예정이어서 취임 이후 처음으로 갈등 국면이 수면 위로 떠오를 지 관심이 집중된다.
사실 '원격의료 시범사업'과 관련돼 있기에 취임 이후에도 주춤주춤했던 제38대 집행부가 추무진 회장을 필두로 "조만간 이행추진단 회의를 지속적으로 개최해 심도있는 논의를 진행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표명하는 등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뗐다.
여전한 의료계 내홍이 문제다. 그 동안 '한 지붕 두 가족'의 모습은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비롯해 대의원회 개혁 등 수 많은 의제들을 둘러싸고 집행부는 대의원회를, 대의원회는 집행부를 맹공격하는 등 한 두 번 연출된 게 아니다.
그러는 사이 대정부 협상은 전면 중단됐고 복지부는 최근 11월말 내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완료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구체적인 시기까지 못박은 셈이다. 실제 복지부가 지난 2일 국회에 제출한 업무보고에는 부대사업 확대, 영리자법인 설립, 원격의료 시범사업 등의 추진 시기가 명시돼 있다.
기존 의료인 간 시범사업을 활용, 기술적 안전성에 대한 검증과 원격모니터링 등 가능한 부분부터 우선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그러자 비대위는 연일 성명을 내고 복지부 행보를 질타하면서 결국 정부와의 협상에 있어 '보이콧'까지 불사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비대위 관계자는 "원격진료와 관련해 협상을 한다고 해도 계속해서 영리자법인 허용, 공단의 수진자조회 등 일방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며 "이런 식이면 협상이 될 리 만무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에서는 협상을 제안하면서, 뒤에서는 공격하는 정부의 태도가 못마땅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집행부로서는 난감한 상황이다. 비대위는 새 집행부와 긴밀한 관계 하에 투쟁에 본격 시동을 걸 발판이 마련됐다고 평가하지만 동상이몽일까.
현 집행부는 비대위의 '아슬아슬'한 행보에 불편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여기에 지난 의정 협상에서 의견 합치를 이뤄냈던 아젠다가 전면 무효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정부 전략 수립 역시 난관에 봉착해 있다. 비대위의 전략 및 구상은 다를지 몰라도 복지부 내부에서는 원격의료 시범사업과 의정합의 사항은 '패키지'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의협 집행부 한 관계자는 "비대위의 성명이 마치 의협 공식입장인 것처럼 보일까 염려된다"고 아쉬움을 토로하면서도 "자칫 또 갈등이 초래되는 것으로 비춰질까 항상 조심스럽다"고 밝혔다.
당장 추 회장은 원격의료 시범사업과 관련, 대의원총회에서 인준을 받은 비대위에 결정을 맡기느냐 아니면 집행부대로 독자노선을 걷느냐를 두고 고민을 해야 한다.
물론, 추무진 회장이 당선되면서 전 집행부와 비대위가 첨예한 갈등 관계에 있었던 것과는 달리 공동전선 구축에 대한 가능성이 엿보이기도 했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속으로는 양측 다 고민이 깊을 수 밖에 없다.
현재 비대위는 다소 지연됐지만 내달 회원 상대 설문조사를 통해 원격의료에 대한 회원들의 의견을 다시 묻겠다는 입장이다. 시범사업 추진 자체를 원천 무효화할 가능성도 있다.
만약 이 같은 중지가 모아진다면 비대위를 필두로 투쟁에 돌입해야 하는데 과연 비대위가 투쟁을 제대로 진행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 역시 적잖다.
사실 그 동안 이뤄졌어야 할 비대위와 의협 집행부와의 기본적인 관계 설정 및 실무논의가 전혀 진행되지 않으면서 우려의 시선이 곳곳에서 쏟아졌다.
더욱이 노환규 전 회장의 불신임으로 ‘올스톱’된 대정부 협상 및 대국회 활동이 곧바로 정상 궤도에 오르기엔 또 다시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추무진 회장은 집행부 인선과 관련 기자회견에서 회원 간 소통, 화합, 단결이 최우선 과제이며 어려움을 복하고 산적해 있는 현안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은 물론 의료계 대화합을 위한 집행부 체제를 구성하는데 역점을 뒀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2차 의정협의 사향을 성실하게 이행해 회원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치열한 고민을 하고 딜레마에서 빠져 나오려고 발버둥치지만 그럴수록 헤어나기는 커녕 수렁이 깊어지는 것을 확인하면서 무기력해지고 자포자기 하는 일이 또 다시 의료계에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