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정숙경 기자] "현행 의료전달체계에서 왜곡의 정점에 있는 대형 대학병원에는 손도 못 대면서 중소병원에만 칼을 휘두드려는 편향된 관점은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
간호등급제로 인한 심각한 구인난, 토요가산제 배제 등과 같은 정책적 소외감, 최저 임금 상승 등으로 인한 경영압박, 경쟁 병원의 끊임없는 등장.
대한민국 중소병원을 대변하는 말들임에도 근본적 대책 마련 없이 300병상 미만 종합병원 '퇴출론'을 주장하는 목소리에 날선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14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개최된 '중소병원 역할과 중요성'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중소병원의 현 주소를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라고 입을 모았다.
환자들의 대형병원 집중 현상과 중소병원에 쏠린 각종 규제로 중소병원 수는 줄어들고 그 역할도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
가장 가까이에서 진료받을 수 있는 중소병원이 위협받고 있음에도 중소병원 활용 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대한지역병원협의회 김재학 공보이사는 "병원은 방사선과, 임상병리과, 수술실, 조제실 등 기본 생산 시설에 입원실, 외래진료실 등이 존재하고 있어 사실상 300병상 미만 병원은 '규모의 경제'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짚었다.
김 이사는 "규모의 경제에 못 미치는 소규모 병원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생산비용 절감 또는 매출 증가, 혹은 두 가지 모두를 시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계점을 짚었다.
이른바 고비용 생산구조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사용연한이 지난 CT를 구입하거나 방사선과 전문의, 마취과
의사를 파트타임으로 고용하는 등 서비스 질 저하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김 이사는 "결국 국민들로부터 외면 당하게 되고 도산하는 병원이 급증할 수밖에 없다"며 "가격경쟁력에서도 뒤쳐지게 되는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김 이사는 "더욱이 우리나라 의료의 경우, 자본 투자는 민간에게 맡겨져 있지만 관리와 수가는 정부 통제를 받는 이중적 체계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정부는 의료 공공성을 강조한다 하더라도 현재 양질의 의료시스템 기분이 민간 주도로 이뤄져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며 "민간 중소병원에 자율성을 부여해 정책 파트너로서 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소병원이 마치 큰 죄를 지은 것처럼 종합병원 퇴출을 운운하는 것을 두고 매우 경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예컨대, 지난 2012년 심평원 자료에 따르면 위암 사망률이 서울성모병원은 서울아산병원과 서울대병원에 비해 330%정도 더 높고 세브란스병원은 무려 415%가 높았다.
단국의대 박형욱 교수(인문사회의학교실)는 "이 한 자료에 근거해 서울성모병원과 세브란스병원 위암 수술진은 퇴출시켜야 할까"라고 반문했다.
박 교수는 "청구 자료를 이용한 의료이용 연구 하나를 근거로 종합병원 퇴출이라는 규제 정책의 논거로 활용하는 것은 정책적 만용"이라며 "이는 수많은 환자를 살리는 중소병원 의료진에 대한 모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공의료 기능 수행하는 지방의료원들도 300병상 미만 퇴출시켜야 하나"
그는 특히 "종합병원의 병상 기준은 오랜 세월 균형을 이뤄왔는데 갑자기 300병상이라는 획일적 기준으로 종합병원의 퇴출 여부를 결정짓는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하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대형병원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현재 '빅5' 의료기관인 서울아산병원은 2704병상, 세브란스병원 2471병상, 삼성서울병원 1869병상, 서울대병원 1786병상, 서울성모병원 1356병상이다.
박 교수는 "특정 병상 수 미만에서 의료 질(質) 지표가 악화된다면 병상이 일정 규모 이상 증가했을 때 의료의 질 지표가 악화되는 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300병상 요건을 갖추지 못한 종합병원이 아예 퇴출되면 그 지역주민은 어떻게 해야 하나"라면서 "먼 곳의 병원으로 '원정진료'를 가야 하는 것인가"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현재 공공의료 기능을 수행하는 전국 지방의료원 39개 중 종합병원은 32개이고 그 중 300병상 미만 종합병원의 병상은 평균 215개로 파악된다.
박형욱 교수는 "지방의료원도 300병상으로 증설하지 않으면 종합병원에서 퇴출시키고 급성기 환자 진료를 못하게 할 것인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