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전국 의대 교수들이 2000명 증원 후 의대 교육을 전망하는 자리에서 "상상조차 안 된다"라는 말을 되뇌이면서 거듭 증원 중단을 호소했다.
"다수 대학, 의학교육 평가 인증에서 불합격 판정 가능성 높아"
학생 수가 수용 한계를 뛰어넘으며 교원과 시설이 턱없이 부족해지고 이에 따라 다수 대학이 의학교육 평가인증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을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다.
교수들은 필수의료‧지역의료 살리기란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 증원이라는 수단에 과도하게 매몰돼 있다며 증원 중단과 과학적 추계를 강력히 촉구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은 지난 4일 서울의대에서 '한국 의학교육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세미나에는 전의교협 소속 교수들뿐만 아니라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 최창민 전국의과대학 교수 비대위원장,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주영 개혁신당 당선인 등 의료계 주요 인사들이 총집결했다.
임현택 회장은 축사에서 "의대 정원 확대, 필수의료 패키지 모두 반드시 폐기돼야 마땅하다"며 "의협 집행부는 과학적 근거를 통해 정부가 진행하는 정책이 얼마나 잘못됐고 한심한 정책인지 논리적으로 반박하며 대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서울의대조차 교수‧강의실 부족, 증원‧유급하면 교수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이어진 첫 번째 발제에서 김종일 서울의대 교수는 '기초의학 교육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발표하며 "지금도 정규과정 중 부족한 수업을 보충하기 위해 선택교과를 개설하는데 필요한 교수들과 강의실이 모자라 상당히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어 "서울의대는 회의실이나 교수들이 그나마 넉넉한 데도 이런 어려움이 있는데, 의대 정원이 증원되거나 의대생들이 유급돼 많은 인원이 같이 수업을 듣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고 낙담했다.
김 교수는 증원 후 예상되는 가장 어려운 점으로 "좋은 교원을 영입하는 것"이라며 "필수의료보다도 기초의학을 더 안 하는 상황에서 기초의학 교원 수급하기가 상당히 힘들 것이다. 교원 충원은 연구 여건 등 복잡한 것들이 준비돼야 가능한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조윤정 고려의대 교수는 '임상의학 교육의 현실과 미래'를 주제로 발제에 나서 "교수들은 진료뿐만 아니라 연구와 교육을 모두 해야 해 갈등하게 된다"며 "소규모 강좌를 하면 거의 모든 교수에게 참여해 달라고 애걸복걸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상급종합병원을 오는 환자분들은 3분 진료가 아니라 10분은 써주길 바란다. 하지만 불가능하다. 병원에서는 늘상 '그러면 직원 월급 못 준다. 돈 많이 버셔야 한다'고 얘기한다. 이런 의료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는 한 임상의학 교육은 굉장히 어려워 질 것"이라고 했다.
"미국도 3년에 20%까지 증원 허용“
"증원 따른 평가기준도 지금 마련 중…의평원도 짐작 못 한 초유의 사태"
의료계는 이번 의대 증원이 확정될 경우 한국의학교육평가원에서 실시하는 의학교육 평가인증에서 상당수 대학이 탈락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인증평가 심사항목'을 주제로 발표한 이선우 충남의대 교수도 "대학들이 평가인증 기준들을 다 맞출 수 있을지 상당히 회의적"이라며 이에 동의했다.
각 의대는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변화가 있을 때 주요변화계획서를 작성해 제출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입학정원이 기존 대비 10% 이상 늘었을 때가 포함돼 있다.
이선우 교수는 "미국의 기준을 갖고 온 것으로, 미국은 1년에 현 입학정원의 10%까지, 3년에 20%까지 증원을 허용한다. 3년 동안 20% 이상 증가하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이어 "주요변화계획서에는 변화에 따른 실행 계획, 즉 향후 6년 계획을 예산과 같이 내야 한다. 금년 12월쯤까지 내야 하는데 작성 가이드도 없고, 증원에 따른 주요 평가 기준도 의평원에서 현재 마련 중이다. 이것들이 앞으로 6개월 만에 가능할지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10% 이상 증원은 주요변화가 정도가 아니라 신생대학 평가 기준을 적용해야할 수준"이라며 "불인증을 두 번 당하면 그해 학생은 나중에 국가고시를 못 본다. 그렇게 되면 서남의대처럼 폐교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오세옥 부산의대 교수는 '기초의학교육에서의 문제점'을 주제로 발표하며 "부산의대는 2025년도 평가에 대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60% 증원돼 상당히 고통스러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는 "예를 들어 강의실은 기존 정원 125명에 유급되는 학생들을 고려해 140명 정도 받아들이는 수준이다. 정원이 200명이 되면 220석이 필요한데 이 부분은 평가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교원 수급에 대해서도 "기초의학 교수들 중 생물학을 전공하신 분들도 계시지만 해부, 생리 등 중요한 부분은 의학을 전공한 교수들이 필요하고, 이들을 양성하는 데 적어도 10년 이상 걸린다. 갑자기 늘어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서울의대는 기초의학 전임교수가 100명이 넘지만, 지방의대에 기초의학 교수는 40~50명 정도다. 100명으로도 힘든 판에 40명 가지고 올바른 기초의학 교육을 한는 것도 힘든데 이대로 정원을 늘리면 상상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의사 수 확대는 필수‧지역의료 강화 위한 다양한 수단 중 하나 불과"
이어진 패널토론에서 신현영 의원은 "이대로 정원 확대가 되면 40개 의대 교육의 질(質)이 더 양극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수도권과 비수도권 의대의 지원 차이도 상당하고, 기초의학과 임상의학의 지식 차이도 더욱 커질 것이다. 그것이 결국에는 의사의 질적 차이와 역량 차이로 국민들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창민 전국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장(울산의대)은 "전공의 복귀가 내년, 잘못해서 2년까지 계속 가면 상급종합병원은 종합병원 수준의 진료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제일 취약한 병원들이 무너질 가능성이 아주 높다. 노동집약적인 병원은 그 돈을 감당해내지 못한다"고 우려했다.
배장환 충북의대 교수는 "필수의료‧지역의료를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큰 방향성은 옳다"면서도 "그러나 세부사항에 있어서 목적과 수단을 자꾸 전도하고 있다. 의사를 늘리는 것은 수만 가지의 수단 중 한 가지다. 이를 목적으로 삼지 말아달라"고 촉구했다.
이어 "의료 문제를 교육과 안보 문제처럼 생각해달라. 의료는 국민의 기본권이고 정부가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 사태 해결을 위해 의대 증원 중단과 더불어 "전공의와 학생들이 바깥으로 내몰려 있는데 들어와서 공부하고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달라"며 "또한 우리나라 의료가 갖고 있는 병폐를 해결한다는 전제 하에 대통령 직속 위원회로 의료인 추계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