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13일)부터 4만5000여 명의 간호사 등 보건의료직종이 총파업을 예고한 가운데, 병원계가 입원환자를 퇴원시키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는 등 예년과 다른 긴장감이 돌고 있다.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이 지난 정부때 체결한 9.2노정합의 이행 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정치파업에 동참하지 말라"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로 인해 현재로써는 파업 철회 가능성이 매우 낮아 보인다.
보건의료노조 소속 127개 지부 145개 병원 소속 6만4257명은 최근 파업권을 확보, 민주노총 총파업 기간에 맞춰 13일 오전 7시부터 파업에 돌입한다. 교섭 진전이 없을 시 무기한 총파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다만 응급실·중환자실·분만실·신생아실 등 필수 유지인력 비중 20~25%를 제외하면 이번 파업에는 약 4만5000여 명의 인원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노조 설립 이래 역대 최대 규모로, 필수인력은 병원에 남지만 간호사·의료기사 등 의사를 제외한 직종이 업무에서 손을 놓는다면 일반병동 및 외래 진료 차질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지난 2021년 9월 2일 복지부와 보건의료노조의 노정합의 체결 전에도 총파업이 실현될 위기였지만 정부와 노조가 당일 새벽 줄다리기 협상 끝에 노조가 파업을 극적으로 철회한 바 있다.
이 같은 전례에도 불구하고 현장 노사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은 탓에 병원들은 진료 공백 최소화를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부산대·양산부산대병원 환자 퇴원·전원 조치···암센터 원장, 노조 설득
부산대병원과 양산부산대병원은 중환자를 제외한 입원환자들을 협력병원으로 전원하거나 퇴원시키고 있다.
양산부산대병원은 지난 10일 병원 홈페이지를 통해 입원환자 퇴원 조치를 공지했다.
병동 간호사 전체가 파업에 참여하면 의료사고 발생 위험이 높아질 수 있어 이를 원천차단하겠다는 판단이다.
병원은 "보건의료노조가 윤석열 정부의 의료정책 수정, 노동개악 중단, 과도한 인력증원 및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13일부터 장기파업을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상 진료활동이 불가해 환자 안전과 생명유지를 위해 12일까지 전체 입원환자 퇴원을 시행하고, 일부 외래진료를 축소할 것"이라며 "의료사고 예방을 위한 고육지책 일환이니 이해와 협조를 해달라"고 당부했다.
국립암센터도 파업대책 비상대책위원회를 소집하고 원장이 직접 노조를 설득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선 상황이다.
서홍관 국립암센터 원장은 지난 주말 자신의 SNS를 통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보건의료노조 총파업이 진행된다. 외래와 병동, 수술장과 항암치료실은 거의 멈춘다"고 말했다.
그는 암환자들 특성상 전원과 퇴원이 쉽지 않아 노조를 설득해봤다고도 했다.
서 원장은 "발을 동동구르며 외래 환자들에게 오지 말라고 전화 중인데, 입원환자는 보낼 곳이 없다"며 "피할 수 없다면 진료에 차질 없게 소수만 참여하라고 설득했지만 노조는 '버스를 대절해야 한다'며 외면했다"고 밝혔다.
이번 파업 사태를 심상찮게 바라보는 시각도 피력됐다.
그는 "병원 경영진이 해결할 수 있는 요구면 들어주겠지만, 문재인정부와의 노사정 합의를 현정부에 지키라고 하고, 연봉 10대% 인상을 주장하는 등 비합리적이거나 내 재량으로 불가능한 것들이다"고 답답함을 내비쳤다.
서울권역 대학병원들은 최대한 파업이 일어나지 않도록 협상에 임하는 것을 최우선 방침으로 하면서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비상체제를 준비 중이다.
산하병원이 여러 곳인 이화의료원과 고대의료원 측은 "파업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지만, 파업이 진행된다면 입원 및 외래 진료에 차질이 없도록 투입할 대체인력 등을 확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주노총 정치파업에 동참 말라" VS "대화 차단하는 게 정치적 태도"
정부도 대책을 마련 중이다. 지난달 말 1차 회의에서 정부가 '보건의료 재난 위기관리 표준매뉴얼'에 따라 재난위기 '관심' 단계를 발령했고, 10일 2차 회의에서는 지자체별 의료현장 상황을 파악했다.
조규홍 장관은 "보건의료노조는 국민 생명과 건강을 외면한 채 민주노총의 정치파업에 동참해서는 안 되며, 투쟁 계획을 철회하고 환자 곁에 남아달라"고 요청했다.
정부 당부에도 불구, 보건의료노조 측은 강경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파업을 예고하면서 정부에 대화를 요구했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다는 지적이다.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파업이 임박한 상황이지만 정부와의 대화 일정은 전혀 잡히지 않았다"며 "현 정부가 '노조와는 교섭하지 않는다'는 기조로 일관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정치파업 프레임을 씌우고 대화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이야말로 책임 회피를 위한 정치적 태도"라고 일갈했다.
한편, 노조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확대 ▲환자안전을 위한 간호사 대 환자 비율 1:5 제도화와 적정인력 기준 마련 ▲무면허 불법의료 근절 및 의사인력 확충 ▲공공의료 확충 ▲9.2 노정합의 이행(임금 10.73% 인상 등) ▲코로나19 전담병원 회복기 지원 ▲노동개악 중단 등을 7대 요구 사안으로 내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