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정책으로 학생들이 돌아올 것으로 생각했다면 우리나라 행정력 수준이 한탄스럽고,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고도 발표했다면 너무 치사한 언론 플레이다."
"대통령실이나 국민들에게 '교육부가 이만큼 일하고 있다'고 선전전하는 것 아닌가. 학생들이 더 화날 수밖에 없다."
교육부가 지난 10일 의대생 집단유급 사태 방지를 위한 '의대 학사 탄력운영 가이드라인' 발표 직후 의과대학 교수들은 정부 대응에 쓴소리를 던졌다.
교육부는 이날 발표에서 '특혜'라는 비판까지 감수하며 집단유급을 막기 위한 정책을 총동원했지만 정작 의학교육 현장에서는 이처럼 불만을 넘어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특히 의대교수들은 정부의 완벽히 엇나간 현실 인식과 실효성 없는 대응책을 지적하며 "의대생 복귀는 이미 물 건너간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장기와 조직 모르는데 치료법 어떻게 가르치나"
지역 국립의대 A교수는 교육부가 발표한 가이드라인에 대해 "논평할 거리도 안 된다. 그저 황당할 뿐"이라고 힐난했다.
그는 "학생들을 무조건 진급시키고, 못한 부분은 앞으로 두고두고 배우라는 건데 의학교육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의학교육은 앞선 단계를 통과하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가지 못한다. 그런데 지금은 2학년 때 임상을 배우면서 1학년 때 못 배운 기초를 보충하라는 꼴이다.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지역 사립대 B교수도 "교양과목 위주의 예과생은 어느 정도 가능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본과 1학년부터 4학년까지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봤다.
B교수는 "해부를 모르면 장기나 조직 기능을 알 수 없고, 기능을 모르면 병을 이해할 수 없다. 병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치료는 어떻게 이해를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아무리 똑똑한 학생이라도 학습 목표를 성취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있다. 학사 일정을 혁명적으로 개선해도 올해 진급이나 졸업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덧붙였다.
"의대생 복귀? 이미 상황은 끝났다"
교수들은 이번 교육부 정책의 더 큰 문제는 현실 인식에 있다고 지적했다.
B교수는 "이번 정책은 학생들이 돌아왔을 때 이렇게 운영하겠다라는 계획인데, 학생들은 복귀할 생각이 없다"며 "이미 임계점은 5월 말에 지났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은 의대에서 얼마나 많은 학습량을 공부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본인이 자질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진급이나 졸업하는 것에 대해 더 윤리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정부는 전혀 현장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학생들 몇 명만 인터뷰해봐도 금방 알 수 있는데, 왜 그렇게 넘겨짚고 상상 속에서 정책을 만들어내는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A교수도 "한 달에 한두 번 이상은 꼭 의대생과 만난다. 학생들은 현재 복귀 의향이 전혀 없다"고 전했다.
이어 "과거에도 전공의가 복귀 한두 달 뒤에 학생들이 돌아왔다. 이번에도 전공의 문제가 우선 해결돼야 학생들도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실제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설문조사에서 40개 의대 본과 4학년 3015명 중 2773명(95.5%)가 의사국시 응시를 위한 개인정보 제공 동의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B교수는 “내년 전국 의대 졸업생은 기존의 4~5% 정도밖에 될 수 없다는 것을 빨리 인정하고 다음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의대생‧교수 아닌 총장과 만들어낸 정책"
정부의 잘못된 상황 판단은 주요 소통 대상인 대학 총장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의대 선진화를 위한 총장협의회' 의견 반영을 시사한 반면 '의대생들과 소통이 진행됐느냐'는 질문에는 "다각적인 방식으로 진행 중"이라며 에둘러 답했다.
사립의대 C교수는 "40개 대학 총장 중 의대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분은 한두 명에 지나지 않는다. 교육부도 총장들이 의대 현실과 학생들 생각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모를리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신뢰할 만한 정보원 의견을 참고해야지, 학생들이 엄청난 반감을 갖고 있음을 알면서도 계속 총장들과 소통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도 상황은 크게 변할 것 같지 않다"고 덧붙였다.
B교수는 "이번 교육부 발표는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며 "학생들은 더 화가 났을 것이다. 냉소를 넘어 나라를 떠나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지 않겠나"라며 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