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AI 의료기기, 기술혁신·규제준수 가능할까"
전종홍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박사
2024.12.02 08:02 댓글쓰기

우리나라는 최근 몇 년간 의료 인공지능(AI) 기술 발전과 함께 관련 규제와 표준화 작업을 강화하고 있다. 


2020년부터 시행된 ‘의료기기산업육성 및 혁신의료기기지원법’은 혁신 의료기기 개발과 시장 진입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 법안은 AI 기반 의료기기의 신속한 시장 출시를 돕기 위해 혁신의료기기 지정 제도를 도입했으며, 이를 통해 기업들이 개발 초기 단계에서부터 규제 기관과 협력해 제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또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AI 의료기기에 대한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의료기기 소프트웨어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은 AI 의료기기 개발과 평가에 필요한 절차를 명확히 규정하고, 개발자들이 준수해야 할 기술적 요구사항을 제시하고 있다. 


이 가이드라인은 AI 의료기기 안전성 평가에 있어 알고리즘 투명성 및 데이터 품질, 그리고 성능 검증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공하며, 국내에서 개발된 AI 의료기기의 글로벌 진출을 위해 국제 표준과의 조화도 고려하고 있다.


기술적으로도 한국은 다양한 의료 AI 혁신 사례를 통해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암 진단을 위한 AI 기반 영상 분석 소프트웨어, 환자 맞춤형 치료를 위한 AI 알고리즘, 그리고 전자의무기록(EMR) 데이터를 활용한 예측 모델 등이 있다. 


이들 기술은 이미 국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여러 병원에서 실제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국내 대형 병원과 AI 기술 기업 간 협업으로 개발된 솔루션들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향후 해외 진출이 기대된다. 


혁신의료기기 지정 제도의 성과도 눈에 띈다. 지난해 혁신의료기기로 지정받은 제품은 총 31건으로, 2022년 10건에 비해 약 3배 증가했다. 


2020년 7월 첫 인증을 시작으로 2021년 9건, 2022년 10건으로 꾸준히 증가하다 지난해 크게 늘어났으며, 제도 시행 이래 누적 인증 건수는 56건에 달한다. 


특히 전체 인증 기기 중 절반(28건)이 AI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다. 이는 혁신의료기기 지정 제도가 AI 의료기기의 신속한 시장 진입에 효과적임을 보여준다.


기술·제도 성과 불구 규제 산적, AI 학습데이터 등 구체적 가이드라인 필요 


그러나 이러한 기술적 발전과 제도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규제 측면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있다. 


AI 학습 데이터에 대한 규제·알고리즘 투명성과 설명 가능성·결과 재현성 등에 대한 더욱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정부는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산학연 협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의료 AI 표준화에 대한 국가 차원 연구와 개발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정부 지원 덕분에 인공지능 의료기기에 대한 성능 평가 프로세스 표준인 IEC 63521을 한국이 제안,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 표준화 경쟁력 선도 노력은 한국의 의료 AI 기술이 글로벌 시장에서 더욱 경쟁력을 갖추고, 안전하고 효과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해외에서는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이 의료 AI 규제와 표준화 작업을 선도하고 있다. 


미국은 식품의약국(FDA)이 AI 및 기계학습 기반 의료기기 소프트웨어 허가 절차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FDA는 인공지능/기계학습(AI/ML) 기반 의료기기의 급속한 발전에 대응하여 일련의 가이드라인과 규제 프레임워크를 발표해 왔다. 


2019년 ‘AI/ML 기반 SaMD(Software as a Medical Device)의 변경에 대한 제안된 규제 프레임워크’를 시작으로, 2021년 ‘AI/ML 기반 SaMD 행동 계획’을 통해 규제 방향을 구체화했다. 


이어 2022년 ‘적응형 AI/ML 기술을 포함한 의료기기 소프트웨어 기능에 대한 임상 결정 지원 소프트웨어에 관한 지침’을 발표했다. 


FDA 접근 방식은 ‘전체 제품 수명주기(TPLC)’ 관리를 강조하며 사전 시장 검토, 품질 시스템 요구사항, 실제 성능 모니터링, 사전 정의된 변경 프로토콜 등을 핵심 요소로 한다. 


특히 FDA는 AI/ML 기술 특성을 고려해 ‘적응형’ 및 ‘잠금’ 알고리즘 개념을 도입하고, 알고리즘의 지속적인 학습과 업데이트를 허용하면서도 안전성과 효과성을 보장하기 위한 규제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미국/영국/캐나다 식약처 간의 다자협력에 기반해 GMLP(Good Machine Learning Practices) 및 Transparency에 대한 글로벌 규제 조화와 표준화를 선도하기 위한 노력을 추진 중이다.


유럽연합(EU)은 2023년 이후 AI 의료기기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며, 의료기기 규정(MDR)과 함께 새로운 인공지능 법안(AIA)을 추진하고 있다. 


MDR은 의료기기 제조사들이 AI를 포함한 의료기기에 대해 엄격한 임상 평가와 인증 절차를 따르도록 요구하고 있으며, 이는 AI 알고리즘 투명성 및 설명 가능성, 그리고 성능 재현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MDR은 고위험 AI 의료기기에 대해 더욱 엄격한 평가를 요구하며 제조사들이 제품 출시 전에 충분한 임상 데이터를 확보토록 하고 있다. 


EU의 AI 법안(AIA)은 AI 시스템을 고위험군, 중위험군, 저위험군으로 분류하고 의료기기 분야 AI는 대부분 고위험군에 속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24년 8월 법안이 시행됨에 따라, 2025년 이후 제조사들은 AI 의료기기에 대한 투명성 보고서와 편향성 검토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하며, 고위험군 AI 시스템은 표준 기반의 적합성 검증 결과 제시 또는 인증 기관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이러한 규제 강화는 환자 안전을 보장하고, AI 의료기기 신뢰성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해외 국가, 혁신 장려와 동시에 시장 안전성 확보 주력 


일본은 AI 의료기기 시장 진입을 촉진하기 위해 ‘AI 활용 의료기기 평가 지침’을 도입했다. 이 지침은 AI 의료기기 성능 평가 기준과 함께, 데이터 신뢰성 및 안전성을 검증하기 위한 절차를 명시하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AI 의료기기 개발자들이 초기 단계부터 규제 당국과 협력해 제품의 상용화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일본은 AI 의료기기 혁신을 장려하면서도 시장에서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한다. 


중국은 AI 의료기기 특성을 고려해 ‘실제 세계 데이터(RWD)’ 활용을 장려하고, 알고리즘 투명성과 설명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지속적 학습’ AI 시스템에 대해서는 변경 관리 계획을 요구하며, 시판 후 성능 모니터링과 주기적인 재평가를 의무화하고 있다. 


데이터 보안과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엄격한 규정을 적용하며, 특히 중국 내 데이터 현지화 요구사항을 준수해야 한다. 


또 자국 AI 의료기기 산업 육성을 위해 ‘중국제조 2025’ 전략 일환으로 규제 완화와 혁신 지원 정책을 병행하고 있으며, 동시에 국제 기준과의 조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술적으로도 미국, 유럽, 일본 주요 기업들은 의료 AI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강화된 규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기술 혁신도 이어가고 있다. 


예를 들어, GE 헬스케어는 FDA의 새로운 규제 프레임워크에 맞춘 AI 기반 영상 분석 소프트웨어를 개발 중이며, 이 소프트웨어는 실시간 데이터 학습과 성능 개선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GE 헬스케어는 또한, EU MDR과 AIA에 따른 임상 시험 데이터를 강화하고 유럽 시장에서의 인증 절차를 신속히 통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필립스는 AI를 활용한 정밀 의료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으며 특히 환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맞춤형 치료 계획 수립에 집중하고 있다. 


필립스는 IMDRF의 GMLP 기준에 따라 AI 알고리즘 투명성을 강화하고, 글로벌 규제 요구 사항을 충족하는 동시에 제품의 신뢰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외에도 일본 후지필름은 고령화 사회를 겨냥한 AI 의료기기를 개발하고 있으며, 일본 후생노동성의 규제 기준에 따라 성능 검증을 강화하고 있다.


이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의 기술 동향은 강화된 규제 환경 속에서도 AI 의료기기 혁신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조사들은 규제 요구 사항을 충족하면서도, AI 의료기기의 성능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리고 있다. 이는 AI 의료기기의 글로벌 확산과 더불어 각국 규제 당국과의 협력 강화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미국 FDA와 EU의 강화된 규제 체계, IMDRF 규제 조화 노력, 그리고 주요 기업들의 기술 혁신은 글로벌 AI 의료기기 시장의 미래를 이끌고 있다. 


한국 의료기기 제조사와 규제 전문가들은 이러한 글로벌 동향을 주의 깊게 살펴보며, 규제 준수와 기술 혁신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 AI 의료기기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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