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엘살바도르에서 보건부 국장을 비롯한 정부 연수단 20여 명이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 글로벌 연수사업의 일환으로 3년간(2024~2026년) 추진되는 '엘살바도르 보건전문인력 디지털 전환 역량 강화 사업'의 첫해 연수 프로그램으로 온 것이다.
몇 주 일정 가운데 나는 우리나라 건강검진에 대해 강의할 기회가 있었다. 내가 한국어로 발표하면 실시간으로 스페인어 통역 서비스가 제공됐다. 통역을 맡은 이는 축구선수 메시가 방한했을 때도 활약한 베테랑이다.
나는 건강검진 외에도 한국 디지털헬스케어에서 영상판독 등에 AI(인공지능)가 도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AI 도입에 따른 충분한 수가가 따르지 않아 업체들이 제 3국으로 수출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도 설명했다.
강의 후 엘살바도르에서 온 한 참석자는 의료 AI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개발자 출신으로 엘살바도르에 자체적인 의료 AI를 개발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당장 AI를 수입해 쓰기는 예산상 어렵다고 했다.
엘살바도르에 의료 AI를 도입하고 싶은 이유가 있었다. 엘살바도르에는 전문의 부족으로 유방암 검진 후 결과를 통보까지 6개월 이상 걸리는데 그 사이 암이 진행돼 생명을 잃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AI를 통해 고위험군이라도 우선 선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것이다.
AI 보조진단 정확성 향상 입증 진행
AI가 의료현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보라매병원 연구팀은 금년 흉부 방사선 사진 판독 시 AI 보조진단 도움을 받으면 정확도가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이 환자 329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AI 기반 보조진단 솔루션 도움을 받은 군의 흉부 방사선 사진 판독 정확도는 84.0%로 도움을 받지 않은 군(71.8%)에 비해 의미있게 높았다.
폐 병변 감지 민감도 역시 AI 도움을 받은 군이 87%로, 도움을 받지 않은 군(64%)에 비해 23% 더 높았다. 폐 병변 감지 음성 예측도는 AI 도움을 받은 군이 92%였는데 이는 도움을 받지 않은 군(75%)에 비해 17% 높았다.
AI 진단보조, 오히려 현장업무 '과중화'
그런데 현장 느낌은 다르다. 최근 한 학술대회에서 대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발표를 들었다. 의대 증원 문제로 촉발된 전공의 사직과 병원 내 영상의학과 전문의들 이직으로 그 병원에서는 호흡기내과에서 흉부영상 판독 일부를 맡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AI 판독에서 폐암 의심으로 나오면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어 결국 흉부 CT를 추가 시행하게 된다. 여기서도 의심 소견이 나오면 CT 유도하 조직생검을 진행해야 하는데 전공의도 없는 상황에서 중간중간 야간 당직까지 서는 마당에 금방 시행할 수도 없는 조직생검을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결국 이 과정을 건너뛰고 환자를 흉부외과로 보내 수술 겸 조직생검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료 경로가 뒤바뀌게 된 것이다. 더구나 이번 의료계 사태 장기화로 인한 피로 누적으로 인해 3, 4기 폐암 환자만 진료 예약을 잡고 1, 2기 환자는 다른 병원으로 전원을 유도하고 있다고 한다.
비교적 젊고 건강한 수검자들이 방문하는 건강검진센터의 경우 AI 영상 판독 결과도 대부분 정상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므로 업무 효율성이 증가했다고 반기는 분위기다. 그러나 연령대가 높은 환자들이 주로 방문하는 의료기관의 경우는 온도차가 느껴진다.
AI 영상 판독에서 이상 병변으로 의심되는 소견이 많다 보니 의사가 다시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이 늘면서 판독시간이 더 걸린다는 것이다. 급기야 일부 의료기관은 영상의학과에서 AI 도입을 취소해 달라고 한다고 들었다.
AI 발달로 자율주행 시대도 머지않은 것으로 보인다. 아니 이미 기술적으로 이미 완성 단계이지만 자율주행차가 보편화됏을 때 만의 하나 교통사고로 인명 피해가 생길 경우 책임 소재 때문에 전면 도입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제때 판독할 수 있는 의사가 부족해 암 진단도 받기 전에 목숨을 잃는 엘살바도르. 반면 의사도 놓칠 수 있는 병변까지 AI가 너무 많이 찾아내 부담(?)이 된다는 한국. 의료 AI 발전은 의료 격차를 더욱 심화시킬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