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건복지부가 지난 7월 4일 예정됐던 ‘모두의 토론회’를 전격 취소하며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급여화와 관련해서 시간을 두고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일단 걸음을 멈추고 각계 우려에 귀를 기울인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번 취소 결정이 단순히 갈등을 잠시 덮어두는 임시방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지금, 이 시점에서 건강보험 제도가 나아가야 할 본질적인 방향과 우선순위에 대해 진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건강보험의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 국민의 소중한 보험료로 운영되는 한정된 자원이며, 그 재정을 어디에 먼저 쓸 것인지는 국가 의료체계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대한 문제다.
한정된 재정을 사용할 때는 반드시 명확한 순서가 있어야 하고, 그 기준은 오직 ‘의학적 필수성’과 ‘생명의 시급성’이어야 한다.
생사와 직결된 질환을 앓는 환자들과 그 가족들이 여전히 치료비 부담 앞에서 고통받고 있는 현실에서, 건강보험 급여의 우선순위가 정치적 표심이나 순간적 여론에 따라 흔들려서는 결코 안 된다.
우리가 탈모 급여화의 당위성을 논하는 동안, 정작 가장 먼저 채워져야 할 필수의료의 자리는 텅 비어 가고 있다.
아이들은 갈 수 있는 응급실을 찾지 못해 구급차 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소아과, 분만, 외과 등 국민의 생명을 직접 다루는 핵심 의료 현장에서는 인력이 빠른 속도로 이탈하고 있다.
건강보험 급여의 우선순위가 의학적 시급성이 아닌 정치적 가시성이나 표심에 의해 흔들리기 시작하면, 제도의 근간인 둑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필수성이 아닌 인기로 보장 범위를 정하는 순간, 건강보험은 국민의 생명 안전망이 아니라 선심성 복지 제도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생명을 먼저 지키는 건강보험
탈모로 고통받는 청년들의 아픔을 외면하자는 것이 아니다. 외모 불안과 탈모가 가져오는 심리적 고통 역시 지극히 현실적이며, 깊은 위로가 필요한 영역이다. 청년들 탈모 고통을 국가가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다만 건강보험 재정의 첫 번째 책무는 생명과 직결된 위험 앞에서 국민을 지키는 일이어야 한다.
갑작스러운 사고나 급성 질환으로 응급실에 갔을 때, 나를 즉시 받아주고 살려낼 수 있는 소아과와 필수의료 시스템이 단단하게 살아 숨 쉬는 나라야말로 청년들에게도, 국민 모두에게도 먼저 필요한 나라다.
청년들의 생명권과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국가가 행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의무다.
정부는 이번 토론회 취소를 계기로 우선순위가 뒤바뀐 접근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의료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제도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첫째, 건강보험 급여 우선순위를 결정할 때 의학적 필수성과 철저한 재정영향평가를 의무화하는 법적 절차를 확립해야 한다.
둘째, 고사 위기에 처한 소아 및 필수의료의 수가를 조속히 정상화하고,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가산 제도를 전폭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셋째, 필수의료 행위 중 발생하는 의료소송 책임 주체를 의사 개인에서 국가로 전환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모든 민간 의료기관을 건강보험 체계에 강제로 편입시키는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를 실시하는 나라다.
의료 공급과 가격을 국가가 독점적으로 통제하는 이상, 그 통제된 시스템 안에서 발생하는 불가항력적 사고에 대한 책임 역시 시스템을 강제한 국가가 짊어지는 것이 마땅한 법리적 귀결이다.
영국 등은 이미 공적 기구를 통해 의료진 개인에게 사법 리스크가 집중되지 않도록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국가가 법적 책임 방패를 자처할 때 비로소 의사들은 사법 리스크 공포에서 벗어나 오직 환자 생명을 구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
단순한 비난이나 반대를 넘어, 이제는 무너진 의료의 근본을 바로 세울 대안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건강보험은 인기에 따라 나눠주는 혜택이 아니라, 생명의 위기 앞에서 국민을 지키는 최후의 안전망이어야 한다.
정부와 의료계, 그리고 국민이 힘을 모아 ‘생명 중심’ 건강보험 원칙을 다시 견고히 다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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