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 갖춘 ‘수술로봇의 역할·방향’ 주목
최재순 서울아산병원 의공학연구소장
2026.07.26 19:37 댓글쓰기



[특별기고 下]  피지컬 인공지능(AI) 시대, 휴머노이드 로봇 발전이 매우 놀랍다. 두 발로 걸어 다니며 스스로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인간 말을 이해하면서 하루가 다르게 복잡한 작업을 수행한다. 


환자를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기거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재활훈련을 돕고, 무거운 물품을 운반하는 등 휴머노이드 로봇은 미래 의료현장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고도로 전문화된 수술 영역에서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수술로봇이 앞으로 분명한 존재 이유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멀쩡한 세탁기를 두고 휴머노이드 로봇에게 손빨래를 맡길 이유가 없듯 말이다.


심장 혈관처럼 미세하고 복잡한 구조를 다루기 위해서는 인간의 손, 또는 그보다 더 작고 정교한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변화무쌍한 수술 상황에 정확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에 특화한 센서와 알고리즘이 해답이 될 수 있다. 범용성을 지향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이 모든 요구사항을 충족시키는 것은 오히려 비효율적일 수 있다.


현재로서는 수술로봇과 휴머노이드 로봇이 각자 영역에서 자신의 임무에 최적화한 형태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향 것이다.


흥미롭게도 전문성 대 범용성 논쟁에 실험적 근거를 제시하는 연구가 최근 등장했다.


고정밀 시술은 전문 수술로봇 담당, 범용 휴머노이드는 보조업무 수행 전망


지난해 7월,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 로봇공학자 마이클 입(Michael Yip) 교수팀은 산업용 휴머노이드 로봇의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수술실에 적용하는 연구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소개했다.


연구팀은 휴머노이드 로봇 ‘유니트리 G1’에 양팔 원격 조종 시스템을 접목한 ‘서지(Surgie)’를 개발하고 초음파 프로브 홀딩 및 응급처치, 정밀 바늘 시술 등을 원격 조종으로 수행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나아가 후속 연구인 ‘랩서지(LapSurgie)’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복강경 기구를 직접 잡고 수술을 수행하는 프레임워크를 최초로 제시했다.


입 교수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수술 자체를 수행하기보다는 초음파 프로브나 내시경을 잡아주는 일, 기구를 의사에게 전달하는 일 등 저위험·고빈도 보조 업무에서 먼저 활용될 것으로 전망했다.


고정밀 시술은 전문 수술로봇이 담당하고, 범용 휴머노이드는 보조 업무를 수행하는 방식이다. 이는 두 로봇이 경쟁이 아닌 상호보완적 관계로 공존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마이클 입 교수팀이 개발한 의료용 휴머노이드 로봇 ‘서지(Surgie)’가 청진, 임산부 복부 촉진, 백밸브 마스크를 이용한 인공호흡, 기관 내 삽관, 기관  절개, 매듭 봉합, 초음파 유도하 약물 주입 등 의료행위를 수행하는 모습.

원격 수술과 수술로봇: 미충족 수요 궁극적 해결


최근 원격수술이 전(全) 세계적으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로봇수술 네트워크와 보안 기술에 특화된 스타트업이 등장할 정도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도권과 대도시에 집중된 우수한 의료 자원을 취약지역 환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해결책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원격 수술에 대한 관심은 곧 수술로봇 가치에 대한 담론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인터넷, 휴대전화,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했을 땐 ‘없어도 사는 데 지장이 없는 비싼 신기술’이라고 평가받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사회’가 도래했다.


자율성을 지닌 수술로봇과 이를 활용한 원격수술이 일상이 될 어느 미래에는 수술로봇 효과와 가치에 대한 고민이 전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규제과학, 윤리, 그리고 산업화 장벽


자율수술로봇과 AI 기반 의료 의사결정 시스템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규제적, 윤리적 과제도 생겨나고 있다. 지난해 1월 FDA는 AI 의료기기에 대한 초안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다양한 인구 집단에 대한 테스트를 의무화해 투명성과 편향성을 관리하면서 제품 전 수명주기(Total Product Life Cycle, TPLC) 접근법을 통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는 최신 AI 소프트웨어를 새로운 승인 없이도 임상 현장에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간소화하는 것이다.


책임 소재 문제도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자율 수술 중 합병증이 발생했을 때 책임이 누구(인간 의사, 로봇 제조사, 또는 AI 알고리즘 개발자)에게 있는지에 대한 법적, 윤리적 프레임워크가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 의학, 공학, 법학, 윤리학 등 학제 간 협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많은 로봇 연구자들이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고도 인허가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서 좌절한다.


의료 로봇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사람 생명을 다루는 의료기기이기 때문에 규제 과학과 국제 표준에 대한 이해가 아주 중요하다.


ISO/IEC 국제표준 회의에서도 과거의 전기기계적 안전성보다는 ‘AI를 탑재해 자율성을 갖춘 의료 로봇’ 안전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활발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개발 초기 단계부터 잠재적 위험 요소를 예측하고 이를 설계에 반영하는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한 상황이다.


외줄 위 걸음, 그 끝에 있는 것


필자는 10년 전 게재한 기고문 말미에 ‘다가올 새로운 반세기에는 상상을 뛰어넘는 변화를 경험할 것이 분명하므로 잘 대비하고 준비할 필요만 남아 있다’고 적었다. 그런데 반세기도 아니고 불과 10년 만에 이미 상상을 뛰어넘는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인튜이티브서지컬 수술로봇 다빈치의 독점 시대가 끝나고 존슨 앤 존슨 오타바(OTTAVA), 메드트로닉 휴고(Hugo), 영국 CMR 서지컬 버시우스(Versius) 등 다수의 경쟁 플랫폼이 등장하며 다각화 시대가 됐다.


AI 기반 자율수술로봇은 실험실에서 복잡한 수술을 수행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AI 수술로봇이 언제쯤 출현할지 단언하기 어렵던 10년 전과 비교해 보면 우리는 훨씬 분명한 답을 알고 있다.


그것은 ‘언제냐’ 하는 문제이지 ‘가능성’ 문제가 아니라는 것다. 나날이 증가하는 의료서비스 수요와 심화되는 현장 인력 부족, 그리고 한정된 사회적 비용까지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는 지능을 갖춘 수술로봇이 필요할 것이다.


수술로봇 개발 길은 마치 허공에 놓인 외줄 위를 걷는 것과 같다.


한 걸음 앞에는 성공의 환희가 있지만, 한 걸음 뒤는 곧 실패의 낭떠러지다. 수많은 기술과 규제, 시장의 난관을 극복해야 하기에 참으로 험하고 어려운 길이다. 하지만 인류에게 반드시 필요한 길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 관심을 갖고 동참하게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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