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강뷰 명소'로 유명한 서점이 있다. 서울 마포구 마포대로에 위치한 도서관형 책방인 '채그로'다. 책방 주인은 성형외과 전문의인 이안나 옵티마성형외과 원장[사진]이다. 한 건물에 병원과 서점을 같이 운영하며 사람들의 아픈 몸과 마음을 치유해주고 있는 이 원장을 지난 18일 진료실에서 만났다. 서점과 마찬가지로 병원 입구에 들어서자 유리창 밖으로 한강이 한눈에 들어왔다. 새소리와 함께 잔잔히 흐르는 음악에 긴장감을 내려놓고 이 같은 공간을 만들게 된 계기와 독서 가치 등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그의 진심어린 독서 예찬이 마음에 와 닿은 시간이었다.
Q. 뷰가 일품이다. 기존의 병원들과 사뭇 다르다
처음에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개원을 했다. 그런데 성형외과의 특성상 지방에서 찾아오는 환자들이 많다. 이들이 좀더 편하게 내원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고 싶었다. 삭막한 빌딩 숲이 아닌 하늘을 보며 숨 쉴 수 있는 공간 말이다. 이런 생각을 행동에 옮긴 것은 2012년경이다. 서울역과 가까우면서 탁 틔인 유리창으로 한강을 볼 수 있는 마포로 병원을 이전했다.
Q. 서점을 운영하게 된 이유는
사람들이 독서를 통해 성장하는 경험을 갖길 바랐다. 그러려면 책을 고르고 읽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서점을 열게 됐다. 서점 오픈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공공도서관 시설이 지금처럼 좋지 않았다. 도서관 같은 서점을 열면 보다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아와 책을 읽지 않을까 생각해 도서관형 서점으로 공간을 꾸몄다.
Q. 책 읽기는 왜 중요한가
누구나 인생에서 위기 순간을 갑자기 맞이한다. 친구와 전문가를 찾기도 하지만, 그런 방법들이 해결책이 되지 못할 때 절망에 빠진다. 그때 책이 좋은 친구이자 길잡이가 돼 준다. 밤낮을 함께 보내줄 수 있고, 시야를 넓혀주기도 하며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독서, 불안과 우울 직면 의사들에게 든든한 버팀목 될 것"
"의과대학 교육 과정에 인문 독서 프로그램 있을면 좋을 듯"
"좋은 책 발굴하도록 더 노력하겠다"
Q. 요즘 의사들도 심리적으로 많이 지쳤다.
자기 자신에게 가장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들이 의사가 아닐까 싶다. 기준점이 워낙 높다보니 조금만 부족해도 한없이 자책하고, 심하면 자살하기도 한다. 내 주변에도 황망하게 떠난 분들이 있다. 겉으로 티가 나지 않아 미리 알기도 어렵다. 독서는 절체절명 순간에 속단하거나 성급한 판단으로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나만 어려운 게 아니구나"라는 깨달음을 통해 말이다. 앞서 비슷한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의 지혜에 기대어 본인 내면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Q. 의학교육과정에 독서 프로그램이 있다면 좋겠다
그렇다. 교과목에 강제로 포함시킬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가능하다면 희망자를 모아 의사들을 위한 인문 독서 프로그램을 만들어,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이 책을 통해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이런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책을 통해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한 뼘 성장한다.
Q. 독서를 꾸준히 하기 어렵다
수년째 독서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책을 읽는 방법을 전하고 있다. 글을 제대로 읽고 뜻을 파악하며 문해력을 기를 수 있도록 말이다. 이런 노력이 축적돼 독서가 습관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의사들은 입시와 혹독한 수련 기간을 거치며 장기간 책을 손에서 놓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잃어버린 독서습관을 다시 되살리는 노력을 해보는 것을 권한다. 독서는 불안, 우울, 두려움을 항상 마주하는 의사로서의 삶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다.
Q. 성형외과만큼 정신건강의학과도 잘 맞았을 것 같다
사실, 의대에 다니는 동안 정신건강의학과를 희망했다. 하지만 인턴을 거치며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되는 일이 쉽지 않음을 알게 돼 외과로 방향을 전환했다. 신경외과와 흉부외과는 의사 개인의 능력보다 팀과 시설, 장비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깨닫고 마음을 접었다. 이에 반해 성형외과는 수술 전후가 드라마틱하게 달라지고, 바늘과 실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서든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는 점에서 택했다.
전문의로서 진료에 최선을 다하며, 책방을 꾸준히 운영할 계획이다. 독서가 어려운 분들에게 책을 쉽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일도 지속적으로 해나가고 싶다. 또 좋은 책 발굴에도 관심을 두고자 한다.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지만 국내 번역이 안 됐거나, 국내 책 가운데 해외에 소개하고 싶은 책이 있는지 등을 찾아보고 알리는 역할도 하고 싶다.